불멸을 꿈꾸는 디지털 시대의 방식
한스 블록·모리츠 리제비크 지음
강민경 옮김
흐름출판
생명이 유한한 인간은 유사 이래로 불멸을 꿈꿔 왔다. 그래서 종교를 만들었고 사후에도 영생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살아왔다. 하지만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하면서 종교의 힘은 점점 약해졌고 지금은 대다수 문명권에서 인간의 유한성이 당연시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인간의 불멸성을 다시 찾아보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들이 영적·종교적 지도자들이 아니라 모든 걸 0과 1로 번역할 수 있다고 믿는 디지털 옹호자들이라는 점이다.
『두 번째 인류』의 지은이들인 독일의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은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디지털 불멸성’을 실현하려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스토리를 취재했다. 스스로 디지털 클론이 되거나 디지털 클론을 만든 사람들, 인간의 뇌와 영혼을 디지털 세상에 옮겨 놓으려는 사람들, ‘인간 유한성의 끝’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인터뷰해 사후(死後)에도 생존자들과 함께하는 경험을 탐구했다.
앱 개발자 유지니아 쿠이다는 자신과 함께 일하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친구 로만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생각에서 그의 메시지 데이터를 모아 인공신경망을 구축하고 로만의 챗봇을 만들었다. ‘고 로만(Go Roman)’ 앱이 공개되자 유지니아와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의 문의가 쇄도했다. 고민 끝에 유지니아는 고 로만과 유사한 챗봇앱 레플리카(Replika)를 만들었다. 현재 전 세계에서 600만 명 이상이 이 앱을 사용 중이며 유지니아의 회사 규모는 급격하게 성장 중이다. 죽음을 마주하는 새로운 방법이 먹혀든 것이다.
루마니아의 마리우스 우르자헤는 한때 미국 MIT와 함께 ‘영원히 살게 해 주겠다’는 모토 아래 ‘이터나임(Eternime·영원한 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고인의 데이터로 만들어진 아바타가 그 사람과 똑같이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포르투갈 기업가 엔히크 조르즈는 죽은 사용자들이 모이는 소셜네트워크 ‘이터나인(Eter9)’을 설립했다. 여기에서는 고인의 계정에 계속해서 글과 사진, 동영상이 업로드되고 다른 사용자들과의 채팅이 이어진다.
하지만 죽은 사람들을 이처럼 디지털 세상에서 되살리는 일이 항상 긍정적일까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죽은 사람이 아직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상상을 강화하고 슬픔을 지속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슬픔은 큰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는 법이다.
이 책에는 망자들과 계속 교류할 수 있는 방법을 실현하는 기술이 어디까지 왔는지에 대한 개발 이야기도 담겨 있다. ‘메멕스’는 고인과 관련된 모든 데이터를 저장하고 그 내용을 검색해서 다시 찾는 기술이다. 그라운딩 기술은 인공지능에 버추얼 신체를 부여해 가상 세계에서 감각 정보를 직접 얻을 수 있게 한다. 마인드 업로딩은 뇌 조각으로부터 추출한 정보를 직접 컴퓨터로 옮기는 기술이다.
21세기에 인간의 영생불멸성을 추구하는 노력은 어찌 보면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인간의 본성인 걸 어떡하겠나.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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