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이 시끄러운 세상, 소음 민원 10년 새 3배 늘어…없앨 수 없다면 감각을 다스려라
소음과의 전쟁,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층간소음은 원래 있었지만, 갈등이 심해진 건 2010년대 이후다. 환경부 ‘층간소음이웃사이센터’에 접수된 민원이 2012년 8795건에서 2021년엔 4만6000건으로 5배나 증가했고, 국민 88%가 층간소음으로 스트레스를 느껴봤다는 국민권익위원회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소음, 인류 위협하는 3대 요소 중 하나
지난 5월 제주도 의회는 노키즈존 금지 조례안을 추진하다 영업권 침해 소지 탓에 심사를 보류했다. 국내 노키즈존 업장은 증가 일로고, 국민 여론도 우호적이다. 올해 리서치기업 엠브레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노키즈존 찬성 비율이 61.9%고, 찬성 이유로 ‘어린이로 인한 소음이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언급(61.1%)이 가장 많았다.
지금 우리는 소음과 전쟁 중이다. 세상이 기계화되면서 소음은 갈수록 커지는 추세고, 소음으로 인한 갈등도 커지고 있다. 국가소음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등 전국 주요 도시의 연평균 소음도는 61.57~70.57데시벨(㏈)로, 국내 기준치인 55㏈, WHO의 권고치 53~54㏈보다 훨씬 높았다. 환경부 조사에 따르면 소음 관련 민원은 2009년 4만2400건에서 2019년 14만3181건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최근엔 시위가 일상화하면서 100㏈이 넘는 집회 소음에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도 많다. 지난해 광화문 집회에서만 소음중지명령이 397건 내려졌고, 최근 시위 현장에는 소음 측정 전광판도 등장했다.
소음이 건강을 해친다는 얘기다. 실제로 한국환경연구원이 국민건강과 소음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주간 소음노출이 1㏈ 증가할 때마다 심장 및 뇌혈관 질환 발병률이 0.17~0.6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음은 난청 위험도 높인다. WHO의 ‘세계 청각 보고서’(2021)에 따르면 현재 세계 인구 5% 이상이 청력 손실을 앓고 있고, 이어폰·헤드폰 등 개인 오디오 기기의 잘못된 사용습관과 공연장·클럽 등 시끄러운 환경에 자주 노출되는 탓에 2050년까지 세계 인구의 약 25%가 청각 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란다.
난청은 치매와도 직결된다. 평생 소음에 노출되어온 결과가 쌓여 난청이 발생하면 세상으로부터 고립되고, 이런 사회적 요인은 치매로 이어지기 쉽다.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의 프랭크 린 교수팀 연구(2011)에 따르면 노인 집단에서 경도 난청이 있는 경우 치매 발병률이 2배, 중도 난청은 3배, 고도 난청은 5배까지 높아진다.
대한이과학회장인 최재영 세브란스병원 교수는 “생각할 때 언어를 사용하는데, 난청이 생기면 머릿속 단어 수가 점점 줄어든다. 무인도에 살듯이 오래 못 들은 단어는 잊혀지고, 그 단어로 생각하는 유추기능이 떨어져 치매로 이어진다는 게 일반적인 가설”이라면서 “WHO도 난청이 가장 큰 치매유발 인자라고 발표하는 등 세계적으로 난청 치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한국은 치료효과가 좋은 중등도 환자에 대한 지원이 전혀 없다. 국가적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악기 연주하거나 외국어 공부하면 효과
세상이 시끄러우니 사람들은 귀를 틀어막는다. 이어폰을 끼고 세상과 담을 쌓는 ‘노이즈 캔슬링’이 대세다. 노이즈 캔슬링은 전투기 조종사들이 엔진 소음에 방해받지 않고 소통하게 할 목적으로 1970년대 개발된 기술이지만, 2019년 애플의 에어팟 프로 출시 이후 대중화됐다.
MZ세대가 신체적으로 더 민감한 건 아니다. 조지선 연세대 심리학과 객원교수는 “통계상 소음에 대한 짜증은 오히려 중년에 정점을 찍지만, 기성세대에겐 불편한 환경을 좀 참는 것이 사회적 규범이었다면 요즘 세대는 공개적으로 표현하기를 꺼리지 않을 뿐”이라며 “기술 발달로 어느 정도 소음 차단을 선택할 수 있게 되니 조용함에 대한 욕구가 상향조정되어 공공장소에서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게 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소음의 특징은 기준이 애매하다는 점이고, 그래서 자주 분쟁이 생긴다. 사람마다, 상황에 따라 소리에 대한 반응과 민감성도 다르다. 한국소음진동공학회가 종로·여의도공원·명동 방문자들을 설문조사한 결과, 실제 소음도는 확성기와 발걸음, 주변 대화가 섞인 명동이 가장 높았지만, 소음에 대한 민감도는 교통소음이 섞인 종로와 여의도공원 방문자가 더 높았다. 절대적인 음량보다 소리의 종류가 소음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결정한다는 얘기다.
음향 전문가인 김경화 한양대 음악연구소 연구교수는 “소음은 외부적 요인이고 청각은 늘 열려 있기에 완벽히 통제할 수 없다”면서 “소리에 대한 반응은 데시벨보다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달라지고, 층간소음 갈등 같은 관련 분쟁도 단순히 소음 자체가 아니라 매너와 관계의 문제다. 성숙한 시민의식과 함께 거버넌스를 통해 원만한 해결을 끌어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음을 없앨 수 없다면, 소리를 처리하는 감각을 제어하는 게 도움이 된다는 관점도 있다. 신경과학자 니나 크라우스 노스웨스턴대 교수가 주장하는 ‘사운드 마인드’가 그런 개념이다. 그는 신간 『소리의 마음들』에서 듣기는 귀의 감각인 동시에 뇌의 감각이며, 뇌와 소리의 협업인 ‘사운드 마인드’에 따라 같은 소리를 다르게 듣는다고 주장한다. 저마다의 ‘사운드 마인드’는 각자의 소리적 경험으로 결정되며, 사운드 마인드를 향상시키면 소음을 스스로 차단하고 유의미한 소리만 걸러 들을 수 있다면서 악기 연주와 외국어 학습을 권장한다.
특정 소리와 의미를 연결하는 일이 사운드 마인드 향상으로 이어지고, 인지력 유지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음악가들이 소음 속에서 더 잘 듣고, 음악가의 뇌는 노년까지 젊은이와 비슷한 신경활동을 유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김경화 교수는 “외국어나 악기 습득은 다양한 소리를 인식하고 의미를 만들어내는 기술”이라면서 “소음에 성숙하게 대처하려면 뇌가 소리를 성숙하게 처리하는 능력을 발달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라고 풀이했다.
물·새·바람 소리 등으로 자연스레 차단
도시계획에서는 소음에 대한 예방적 관점이 뜨고 있다. 지난해 UNEP 프론티어 보고서는 소음에 대한 정부의 대응적 접근을 비판하면서, 도시 계획가와 환경 음향 전문가의 협업을 통한 긍정적인 음풍경(Soundscape) 디자인을 촉구했다. 음풍경이란 1970년대 캐나다 작곡가 머레이 셰이퍼가 제안한 개념으로, 시각 중심이던 경관 설계에 청각적인 측면까지 고려한다는 의미다. 방음벽 설치 같은 물리적인 소음 통제를 넘어, 물소리·새소리 등 듣기 좋은 소리가 소음을 자연스레 차단하는 소리 환경을 창조한다는 인지적인 해법이다. 이번 주 한영수교 140주년 기념전시를 위해 내한한 ‘영국의 다빈치’로 불리는 건축가 토마스 헤더윅이 서울시의 노들섬 디자인으로 제안한 것도 ‘사운드스케이프’ 모델이다.
소리의 문화적 가치에 대한 인식이 높은 유럽에서는 이미 음풍경을 중시하고 있다. 음풍경 전문가인 홍주영 충남대 건축과 교수는 “EU 환경 에이전시에서 도시의 정온한 지역 보존과 확장을 중요한 이슈로 다루고 있다”면서 “스마트시티로 넘어가면서 소리 종류를 판별하는 인공지능 시스템이 갖춰지고 공간 디자인에서 물리적으로 줄일 수 없는 소음을 인지적으로 해결하는 기술도 다양하게 개발되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 셰필드역 광장의 낙수 방음벽, 스위스 베른의 도로변 낙수커튼, 미국 록펠러센터 야외광장 분수대 등이 음풍경의 대표적 사례다. 네덜란드 스히폴 공항 주변 바위턴스호트 파크는 농사철 쟁기질을 할 때 소음이 줄어드는 원리를 이용해 비행기 소음을 분산시키는 거대한 삼각형 구조물을 마치 대지 아트처럼 펼쳐 세계적 명소로 떴다.
일본도 적극적이다. 1996년 환경성 주관으로 각 지역 일상의 소리들을 재발견하는 ‘남기고 싶은 일본의 소리’ 선정사업을 벌여 ‘교토 아라시야마 치쿠린 대나무숲의 바람소리’ 등 100선을 선정해 보존에 힘쓰고 있다. 일본 지하철 특유의 발차음도 주목할 만하다. 1989년 JR이 처음 도입했는데, 각 역의 지역적 특징에 따라 300개가 넘는 다양한 발차음으로 교통 소음을 가리고 있다. JR 다카다노바바역은 만화가 데즈카 오사무의 스튜디오가 있는 ‘철완 아톰’의 고향인 만큼 아톰 주제가를 쓰는 식이다.
우리 환경부도 제4차 소음진동관리 종합계획(2021~2025)에서 시범사업을 추진하는 등, 음풍경을 활용한 도시소음의 능동적 관리에 시동을 걸었다. 최근 ISO 국제 표준이 제정되면서 국가간 객관적인 비교 기준이 정립됐기 때문이다. 홍주영 교수는 “선진국에선 이미 AI를 활용해 소리 종류를 구별하고 소음이 발생하면 그 레벨에 맞는 최적의 자연음을 내보내는 소음 관리 시스템을 적극 개발하고 있다”면서 “한국도 선유도 공원 등 도시계획에 음풍경 개념이 도입된 사례가 있긴 하지만, 소리의 우선순위가 가장 나중이었다. 최근 관련 정책이 마련되고 있지만 아직 현실적으로는 도시 미관만 해치는 방음벽 설치 위주다. 좀 더 자연적인 방법으로 건물 배치 등 기초단계부터 음풍경을 적용하고 평가하는 노력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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