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살인범 무기징역 감형… '뜨거운 감자' 사형제 존폐·시효 논란
재판부 "다른 중대 사건과 비교해야"
사형제 "효과 없어" vs "존재 자체 의미"
법무부 시효 30년 폐지 개정안 국회로
[더팩트ㅣ정채영 기자] 평소 알고 지내던 중년 남녀를 연달아 살해한 혐의로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권재찬이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실제 집행이 없는 사형제도의 존폐를 놓고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집행 시효 폐지 논란까지 더해지고 있다.
서울고법 형사7부(이규홍·이지영·김슬기 부장판사)는 지난 23일 강도살인 혐의를 받는 권재찬에게 원심의 사형 선고를 파기하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권재찬은 지난 2021년 12월 미추홀구의 한 건물에서 50대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는다. 시신 유기를 도운 공범 40대 남성을 살해한 혐의도 있다. 2003년 인천에서 전당포 업주를 살해한 혐의로 15년을 복역하고 출소한 지 3년 만의 재범이었다.
재판부는 살인죄의 유형을 적용해 양형의 이유를 설명했다. 살인죄의 유형은 △1유형 참작동기 살인 △2유형 보통 동기 살인 △3유형 비난 동기 살인 △4유형 중대범죄 결합살인 △5유형 극단적 인명 경시 살인으로 나뉘며 5유형으로 갈수록 무겁다고 판단한다. 재판부는 권재찬이 김 씨를 살해한 것에 대해서는 4유형, 안 씨에 대해서는 3유형에 해당한다고 봤다.
기획 살인 혐의는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다른 중대 살인사건과의 비교도 필요하다"며 "20년간 법원에서 사형이 선고된 사건은 18건인데, 피해자가 불특정 다수이거나 중대 범죄 결합사건으로 미리 계획한 살인죄에 해당해 원심의 사형 선고는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총 3명을 살해한 권재찬이 사형 선고가 무기징역으로 뒤집히자 사형 제도의 의미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 집행 없는 '사형 제도' 존재 의미 있나
30년 가까이 사형 집행이 중단된 상황에서 사형 선고가 의미가 있는지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한국의 마지막 사형 집행은 1997년 12월이었다. 사실상 사형 폐지 국가로 분류됐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형벌로서 갖는 일반적인 효과가 있을지언정 굳이 사람을 죽이면서까지 갖는 범죄 예방 등의 효과성이 없다"며 "사형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존재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로스쿨 교수는 "사형제도는 상식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며 "국민의 법 감정적인 관점에서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집행되지는 않지만 언제든 집행될 수 있는 상태라는 불안감을 준다는 측면에서도 응보의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 법무부 사형 '집행시효' 폐지, 공은 국회로
존폐 문제와 동시에 집행시효 폐지도 주목된다. 지난 5일 법무부가 추진한 사형 집행시효 30년을 폐지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해당 규정은 오는 11월 복역 30년이 채워지는 사형수 원언식 씨의 처분을 두고 논란이 시작됐다. 사형 집행시효를 채우면 더 이상 구금해 둘 근거가 없다고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집행시효가 지나면 '미결 구금 상태를 유지'한다는 해석과 '석방이 가능해진다'는 해석이 공존하게 된다. 이 교수는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상황에서 시효가 지나면 30년 후 석방을 해줘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며 "법은 피고인에 유리하게 해석하기 때문에 실제 석방되는 상황이 빚어질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의미에서 법무부의 사형 집행시효 폐지에는 의미가 있다는 의견이다.
만약 집행시효인 30년이 지난 후에도 계속 구금될 경우 사형수는 미결수의 신분이 된다. 이럴 경우 교정 교화 프로그램과 수감자 등급에서도 제외된다. 김 연구위원은 "교도소에서 교화를 위해 노력하는 정도에 따라 처우나 등급이 달라질 여지가 없게 된다"며 "수감 20년이 지나면 가석방의 가능성이 생기는 무기징역과는 또 다른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 열심히 살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법무부의 시효 폐지에 이어 추가적인 보완이 필요한 이유다.
법무부는 "수용 기간엔 시효가 진행되는지에 관한 명시적 규정이 없어 논란 소지가 있는 만큼 법 개정을 통해 모호성을 없애고 형사사법 절차의 공백을 방지할 것"이라고 집행시효 폐지 이유를 설명했다. 법무부의 사형 집행시효 폐지 개정안은 이제 국회로 넘어갔다. 김 연구위원은 "이참에 사형을 대체할 형벌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때가 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효성과 집행시효 논란에 이어 헌법재판소는 사형제를 놓고 세번째 심리를 진행하고 있다. 1996년에는 재판관 7대2로 일방적인 합헌 결정이었지만 2010년에는 5대4로 좁혀졌다. 세번째 판단의 향방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헌재 판단에 따라 사형제 논쟁은 격랑에 휩싸일 가능성이 크다.
chaezero@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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