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벅 인사하는 로봇 지휘자에 웃음꽃…"매끄러운 지휘에 놀라"
대체로 신선하다는 반응…인간지휘자 대체 가능성엔 의견 엇갈려
(서울=연합뉴스) 최주성 기자 = 바닥에 꺼져있던 무대 전면이 올라오며 로봇 지휘자 '에버(EveR)6'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자 객석에서는 "어머, 어머"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난생처음 보는 모습의 지휘자에 멋쩍은 박수를 보내던 관객들은 에버6가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하자 힘찬 박수와 호응을 보내기 시작했다.
30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국립국악관현악단의 공연 '부재'에서 에버6는 관객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관객들은 곡이 끝날 때마다 허리를 180도 돌린 뒤 꾸벅 인사를 건네는 에버6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에버6가 단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청중에게 인사하도록 손짓하자 객석 곳곳에선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 제작한 에버6는 사람 지휘자의 동작을 '모션 캡쳐(몸에 센서를 달아 인체 움직임을 디지털로 옮기는 것)'하는 로봇이다. 공연 전에 입력된 프로그램을 토대로 지휘를 시연하는 로봇으로, 음악을 듣거나 실시간으로 변화를 주지는 못한다.
이날 공연의 1부에서 에버6는 샤라브의 '깨어난 초원'과 비르바의 '말발굽 소리'를 홀로 이끌었다. 인간 지휘자처럼 악보를 넘기거나 연주자와 눈을 맞추지는 않았지만, 단원들은 지휘봉을 쥔 에버6의 오른손에 시선을 맞추며 경쾌한 분위기를 표현했다.
에버6는 왼손을 사용해 타악기가 연주를 시작하도록 지시하거나, 셈여림에 따라 지휘봉을 머리까지 치켜올리는 등 섬세한 동작을 보여줬다.
2부가 시작되자 에버6는 최수열 지휘자와 나란히 무대 밑에서 올라왔다. 무대에서 어색한 듯 곁을 몇 차례 흘깃 살핀 최수열 지휘자와 달리, 에버6는 동료 지휘자에게 시선을 주지 않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두 지휘자는 이번 공연을 위해 손일훈이 작곡한 '감'을 함께 연주했다. '감'은 음표를 그린 악보 없이 어떻게 연주하라는 설명만 적힌 작품으로, 곡의 빈 곳은 무대에 오른 약 20명의 연주자가 자율적으로 채워나갔다.
에버6가 일정한 속도와 박자로 지휘봉을 흔들면 지휘자 최수열은 눈짓과 몸짓으로 연주자들과 실시간으로 교감하며 곡을 이끌었다. 관객들은 무대 양쪽에 설치된 스크린을 통해 두 지휘자의 동작을 동시에 지켜볼 수 있었다.
지휘봉을 에버6에게 맡긴 최수열은 자유로운 두 손을 십분 활용했다. 손으로 네모를 그리며 타악기의 연주를 세세하게 지시했고, 클라이맥스에서는 에버6보다 더 큰 몸짓으로 단원들을 이끌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최수열과 '감' 연주를 마친 에버6는 관객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 뒤 무대 밑으로 내려갔다. 미동도 없이 무대 밑으로 사라져가는 모습은 흡사 영화 '터미네이터 2'의 용광로 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줬다.
이날 최수열은 황병기의 가야금 협주곡 '침향무'와 김성국의 '영원한 왕국'을 맡아 단원들과 끈끈한 호흡을 선보였다. 국가무형문화재 가야금산조 이수자 이지영과 협연한 '침향무'에서는 의도적으로 연주의 속도를 늦추며 가야금 독주가 돋보이게 만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관객들은 데뷔 무대를 마친 에버6에 신선했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로봇이 인간 지휘자를 대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상반된 의견이었다.
구현서(34) 씨는 "로봇이 지휘한다는 생각에 뻣뻣하고 딱딱한 모습을 상상했는데 매끄러운 지휘에 놀랐다"며 "템포를 풀었다 당기는 등 세밀한 부분은 아직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앞으로 인간을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세연(45) 씨는 "에버6는 어디까지나 정해진 프로그램대로 지휘하는 것"이라며 "연주자와 지휘자 사이에 오가는 소통을 볼 수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고 밝혔다.
국악을 전공하는 이인서(15) 양은 "확실히 사람의 지휘가 더 낫다"며 "감정이나 몸을 활용한 섬세한 표현은 로봇이 따라가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평했다.
손일훈 작곡가는 "'감'은 매번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곡이라 무척 재밌게 들었다"며 "리허설 단계부터 곡의 콘셉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던 최수열 지휘자의 공이 크다"고 말했다.
cj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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