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번역가 7인이 말하는 ‘번역이란…’[책과 삶]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
은유 지음
ITTA | 264쪽 | 1만8000원
“진은영의 ‘달팽이’라는 시를 여러 명이 번역했는데, 다른 번역가들의 번역을 보면서 엄청 충격받았어요. 저는 원문을 따라야 된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런 다양한 방식들이 있고 유연해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한국어에서 영어로, 때로는 영어에서 한국어로 옮기는 번역가 호영은 이렇게 말했다. 번역에는 정답이 없고, 시 번역은 더욱 그렇다. 번역가들은 단순히 주어진 텍스트만 옮기는 것이 아니라 직접 작품을 발굴하고 출판을 제안하기도 한다. 적극적으로 텍스트를 만나고, 텍스트에 감탄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 텍스트가 가닿기를 바라며 번역을 한다. 시 번역가 7명을 은유 작가가 만났다. 한영 번역가 호영·안톤 허·소제·알차나·새벽, 한일 번역가 승미, 한독 번역가 박술이 주인공이다.
은유는 이들이 “이민자나 유학파로서 언어와 학력 등 문화자본을 가진 주류에 속했지만 인종과 젠더 등의 측면에서는 근원적인 억압과 차별을 경험했다”고 썼다. 지난해 부커상 후보에 오른 정보라 작가의 <저주토끼> 번역가 안톤 허가 시상식장에 갔을 때, 그는 번역가 중 유일한 비백인이었다. 그는 해외 독자가 한국에 피상적으로 기대하는 작품을 번역하지 않으려 한다. 그는 말한다. “장르문학을 원한다, 퀴어문학을 원한다, 여성문학을 원한다, 이런 것들을 다 내보내서 한국 사람들도 다양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편견을 깨기 위해서죠.”
이야기를 들을수록 이들의 시선과 마음이 녹아있는 일을 누군가가 대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이 번역하면 다른 작품이 될 것이다. 하물며 AI가 한 번역가를 대체할 수 있을까.
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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