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법 “소수인종 우대는 위헌”... NYT “명문대에 백인·아시안 늘 것”
미국 연방대법원이 인종을 감안해 대학 신입생을 뽑는 ‘소수 인종 우대 정책(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에 대해 지난 29일(현지 시각) 위헌 판결을 내렸다. 1960년대 이후 약 60년간 지속돼온 대학의 소수 인종 우대에 종식을 고한 것이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시절 도입된 소수 인종 우대 정책은 ‘기회의 평등’만으로는 부족하며 적극적으로(affirmative) ‘결과의 평등’을 추구해야 한다는, 미 진보의 정신을 대표한다.
다수 의견을 집필한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하버드대의 인종을 감안한 입학 정책으로 아시아계 미국인 숫자가 11% 감소했다”며 “ ‘인종이 부정적으로 적용돼선 안 된다’는 헌법상 조항을 준수하는 데 실패했다”고 밝혔다. 흑인·히스패닉에 유리한 소수 인종 우대가 아시아인 등에겐 역차별로 작용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 정책에 대해선 일부 흑인들도 “스스로 이뤄낸 성과조차 특혜로 폄훼당하게 한다”(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며 반발해 왔다.
민주당 등 진보 진영은 판결에 대해 대법원의 보수화를 문제 삼고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이날 “(인종) 차별은 여전히 미국에 존재하며 오늘의 판결이 그 사실을 바꾸지는 않는다. 지금의 법원은 정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 대법원은 현재 보수 성향 6명, 진보 성향 3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이날 판결에서 보수파는 전원 위헌, 진보는 모두 합헌 의견을 냈다.
앞서 비영리단체인 ‘공정한 입학을 위한 학생들(SFFA)’은 하버드대와 노스캐롤라이나대의 입시 제도가 백인과 아시아계에게 불리해 ‘인종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 수정헌법 14조와 1964년 민권법에 어긋난다며 2014년 소송을 제기했다. 1·2심 법원은 대학의 손을 들어줬지만 연방대법원은 노스캐롤라이나대 소송에서 위헌 6 대 합헌 3, 하버드대 소송에선 위헌 6 대 합헌 2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대법관 9명 중 하버드대 감독이사인 커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은 하버드대 판결에 관여하지 않았다.
‘인종의 용광로’라고 불리는 미국에서 소수 인종 우대 정책은 60여 년간 사람이 인종이나 피부색 등에 따라 차별받지 않게 국가가 제도적으로 막는 최소한의 방파제 역할을 해왔다. 미 대법원이 ‘대학이 인종을 고려해 합격자를 정해서는 안 된다’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리면서 평등과 차별을 둘러싼 미 사회의 논란은 더 거세질 전망이다. 이날 판결은 대학에 대한 것이었지만, 같은 원칙이 채용 등으로 확대 적용될 가능성도 크다.
소수 인종 우대는 1950년대 시작된 흑인 민권 운동의 흐름을 타고 케네디 전 대통령이 1961년 처음 도입했다. 전 세계 개발도상국에 교육 등을 지원한 평화봉사단 출범과 함께 케네디의 대표적인 업적으로 꼽힌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전후(戰後) 경제 회복 과정에 미국으로 세계 각지의 이민자들이 몰려옴과 동시에 평등에 대한 사회 각계의 고찰이 이뤄진 것이 배경이 됐다. 애초엔 채용에 관한 정책이었다가 1968년 마틴 루서 킹 암살 사건 후 대학을 중심으로 흑인 인권 시위가 번진 것을 계기로 대학으로 일제히 확장됐다.
미 대학들은 가산점 부여나 인종별 입학 비율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방법 등으로 학업 성적이 낮은 편인 흑인·히스패닉 등 소수 인종이 입시에서 우대받도록 했다. 어린 시절 열악한 학업 환경이 대입의 성패로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취업 등 삶의 모든 단계를 끌어내려선 안 된다는 취지를 담았다.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 소수 의견을 낸 소니아 소토마요르가 자서전에 쓴, “좋은 교육이라는 ‘경주(race)’가 있는지도 모르는 학생들을 출발선상에 데려다 주는 것이 미국 제도의 힘”이란 말은 이 정책을 떠받치는 신념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문구로 꼽힌다.
실제로 소수 인종 우대는 흑인·히스패닉 등 상대적으로 낮은 성적을 보이고 있던 학생들의 대학 입학을 늘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뉴욕타임스는 “대학에 소수 인종 우대가 전격적으로 확대된 1969년 흑인 합격생 수가 전년 대비 두 배 수준으로 늘어난 대학이 많았다”고 전했다. 2017년 미 명문 하버드대에선 380년 역사상 처음으로 신입생 중 비(非)백인 비율이 50%를 넘는 등 정책의 가시적 효과도 나타났다. 지난해 미 대학 합격생 중 흑인 비율이 15%로 역대 최고를 기록하며 전체 인구 중 흑인 비율(약 14%)을 뛰어넘기도 했다.
이 정책이 시행된 기간에 대학에 들어간 소수 인종 중에서 미 사회 주류로 진입하는 사람들이 속속 생겨나면서 ‘성공의 사다리’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대표적인 정책 수혜자이자 지지자로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배우자 미셸 오바마가 있다. 미셸 오바마는 여러 자리에서 자신이 프린스턴대에 다닐 때 학교의 몇 안 되는 흑인 학생이었던 시절을 회상하며 “소수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이 정책을 지켜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는 대법원 판결 후 “자신의 (불투명한) 미래를 고민할 젊은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트위터에 올렸다.
고(故)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 에릭 홀더 전 법무장관 등이 이 정책의 혜택을 받아 엘리트 반열에 오른 사례로 꼽힌다. 이들은 모두 이 정책을 지지하는 입장을 보여왔다. 홀더는 이날 대법 결정에 대해 “괴물 같은 판결”이라고 비난했다.
소수 인종 우대 정책 반대자들이 소송을 제기해 대법원까지 온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78년, 2003년, 2016년에도 이 정책이 오히려 백인·아시아인 등에게 역차별을 유발한다며 헌법 소원이 제기됐었는데 그때마다 아슬아슬하게 합헌 판결이 났었다. 대표적인 판결로 꼽히는 2003년 ‘그로터 vs 볼린저’ 당시 오코너 대법관은 “25년 후면 (인종별 격차가 사라져) 이 법이 필요 없어질 것”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이 정책은 결과적으로 인종 격차 해소가 아닌, ‘과도한 결과의 평등은 부당하다’는 보수층의 집요한 공격과 대법원의 보수화로 인해 무너지게 됐다. 미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흑인 가구의 연간 소득(2021년 기준 중위 값)은 여전히 백인의 65%, 아시아인의 48%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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