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순간까지 피아노 선율처럼…암과 ‘싸우지 않고 살아간’ 음악가[책과 삶]
나는 앞으로 몇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류이치 사카모토 지음·황국영 옮김
위즈덤하우스 | 396쪽 | 2만원
마음을 달래주는 피아노 선율로 유명한 일본의 세계적 음악가 류이치 사카모토. 그는 차분한 피아노 음악으로 전 세계 사람들을 위로한 작곡가이자 연주자였으며 ‘탈핵·환경·평화운동’ 등에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 예술가였다. <나는 앞으로 몇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는 지난 3월 별세한 사카모토의 음악 여정을 따라가며 그의 세계관과 철학, 인간적 면모를 보여주는 유고집이다. 암 수술 이후에도 예술 활동을 열심히 이어간 그가 지난해 8월부터 올해 2월까지 일본 문예지 ‘신초’에 연재한 칼럼을 엮어 냈다.
책에는 ‘한국과의 인연’도 적혀 있다. 한·일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2000년 처음 공연을 했을 때, “일본에 배울 것이 많다”고 말하는 한국 음악 관계자들의 냉정한 균형 감각에 사카모토는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사카모토는 여러 차례 암 수술 이후에 한 인터뷰에서 암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암과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그는 “암과 싸운다가 아닌 암과 살아간다는 표현을 택한 것은 마음 한구석에 무리하게 싸워본들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라고 담담히 고백한다.
책 제목은 올해 1월 큰 수술을 마치고 지쳐 있던 그가 병실에서 “나는 앞으로 몇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라며 혼잣말을 했다는 데서 비롯됐다. 사카모토는 이 책에 덧붙일 에필로그 원고 집필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 대신 전 ‘GQ JAPAN’ 편집장 스즈키 마사후미가 그의 마지막 순간에 관해 기록했다. 특별부록으로 유족이 전한 그의 일기 일부도 수록됐다.
책 말미에서 스즈키 마사후미는 사카모토가 살아온 시간의 농밀함에 대해 말한다. “(그가 생애를 마쳤을 때) 가족 중 한 명이, 그래도 남들의 세 배는 살았어, 라고 말했다. (중략) 그가 살아온 시간의 농밀함을 떠올리면 향년 71세가 아니라 210세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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