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크와 저커버그의 결투 [만물상]
분쟁을 완력으로 해결하는 결투의 역사는 고대 바이킹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초기 기독교는 결투를 재판 방식으로 택하기도 했다. 하느님은 선한 자의 편이니 결투에서 이기는 자가 무죄라는 논리였다. 일본도 결투의 나라였다. 일본 아이들은 지금도 “사내라면 말로 싸우지 마”라는 훈계를 들으며 자란다. 분쟁을 칼부림으로 끝내던 시대의 흔적이 언어로 남았다. 실제로는 전국시대까지만 그랬고 도쿠가와 막부 체제가 성립된 17세기 이후엔 결투가 금지됐다. 유럽 교회들도 16세기 들어 결투 당사자뿐 아니라 결투를 단속하지 않는 관료와 군주, 결투 주선자까지 파문으로 다스렸다.
▶그런데도 결투는 19세기 넘어 20세기까지 이어졌다. 1967년 프랑스 사회당 대통령 후보와 마르세유 시장 간 결투가 진검을 쓴 마지막 결투로 남아 있다. 지식인과 귀족들이 악습을 지속했다. 상류층일수록 명예에 민감했고 자존심을 다치면 결투를 해서라도 회복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숱한 인재가 비명에 갔다. 러시아 국민작가 푸슈킨은 아내를 유혹한 남자와 결투에 나섰다가 37세에 목숨을 잃었다. 현대 대수학의 토대를 닦은 19세기 천재 수학자 갈루아도 다혈질 성정을 못 누르고 총을 들었다가 스무살에 죽었다.
▶무모한 죽음이 반복되자 결투자들 사이에 암묵적인 안전 합의가 도출됐다. 사람 없는 곳으로 총을 쏴 결투를 끝내는 식이었다. “목숨 걸고 명예를 지켰다”는 평판만 얻으면 되지 피를 볼 이유는 없다는 것이었다. 사람을 다치게 하면 사회적으로 매장됐다. 1804년 당시 미국 부통령 에런 버는 초대 재무장관을 지낸 알렉산더 해밀턴과 결투를 벌였다. 해밀턴이 엉뚱한 곳을 쏴 화해를 구했는데도 그를 정조준해 죽게 했다가 여론의 비난 속에 프랑스로 쫓겨갔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가 격투기 일종인 주짓수로 결투하겠다고 공언해 실현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메타가 출시 예고한 앱에 머스크가 조롱성 글을 단 것이 발단이었다. 머스크는 “싸울 준비가 됐다”고 했고 저커버그도 “(결투할) 위치를 보내라” 했다. IT 시대를 선도해 온 21세기형 지식인들 맞나 싶다.
▶완력을 써서 명예를 회복하겠다고 하지만 정말 대결이 이루어지면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그래서 싸우는 척만 하고 실은 새로운 서비스 홍보를 하려는 노이즈 마케팅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문명은 저커버그와 머스크 같은 천재들의 자존심을 건 기술 경쟁 덕에 발전했다. 그들의 싸움터는 격투기장이 아니라 연구소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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