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모은’ 백과전서 시대 가고…이젠 나만의 것으로 ‘지식 흩는’ 시기[이은수의 아이겐밸류 - 인간의 고유함을 되묻다]

기자 2023. 6. 30.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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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지식수집의 미래를 그려보다
인공지능 핵심기술의 수학적 근간을 이루는 선형대수학에서 아이겐밸류는 행렬변환 후에도 변화가 없이 그 자신으로 남는 고유벡터의 고유값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인공지능의 파고가 모든 이들에게 다양하게 다가오겠지만 인공지능이라는 엄청난 변화를 겪고도 여전히 그 자리에 남을 인간의 고유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1704년 알파벳순 기술된 최초 백과사전 나온 이후 ‘지식 향연’ 시작

잃어버린 지식을 복원하기 위한 말의 수집과 호기심의 방을 채우던 사물의 수집으로 이어지던 지식의 수집은 백과사전적 수집에서 절정을 이룬다. 1704년 존 해리스가 알파벳 순서를 따라 항목을 나열한 영어로 기술된 최초의 백과사전 <Lexicon Technicum>을 내놓았고 에브라임 체임버스가 1728년 <Cyclopaedia>를 선보이면서 알파벳 순서를 따르는 기술 방식을 유지했다. 많은 이의 기억과 경험 속에 백과사전의 알파벳순 기술 형태가 너무나 친숙한 것이어서 당연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이 방식은 지식 수집과 관련한 편집자의 의도를 보여준다. 마치 촘촘한 그물망처럼 알파벳순으로 짜인 그물로 지식들을 빠짐없이 길어 올리겠다는 의욕으로도 읽을 수 있고, 백과사전을 이용하는 독자들이 쉽게 원하는 항목을 참조할 수 있게 한 배려로도 해석할 수 있다. 해리스의 백과사전은 1220쪽에 달했고 체임버스 백과사전은 2466쪽에 육박했다. 적어도 이 책들은 독자가 모든 항목을 다 읽고 마스터하길 기대하고 펴낸 건 아니었을 것이다.

어차피 전부 읽을 순 없는 책들을 펴냈다면, 이들은 어떤 구체적 목적으로 백과사전을 기획한 것일까? 이들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겠으나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을 드니 디드로(1713~1784)에게서 찾을 수 있다. 프랑스대혁명에 이르는 시기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달랑베르와 함께 백과전서를 출간했던 디드로는 “지구 표면에 흩어져 있는 모든 지식을 모아 우리와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 일반적인 체계를 보여주고, 우리 뒤에 올 사람들에게 전달하여 지난 세기의 업적이 다음 세기에 쓸모없지 않도록, 그래서 우리 후손들이 더 많이 배움으로써 더 덕스럽고 행복해질 수 있도록, 인류의 일부가 되는 누림 없이 죽지 않도록 하기 위함”으로 이 일을 한다고 밝혔다.

이 인용구절에만 기대어 해석하자면 디드로는 지식을 수집하는 사람으로서, 지식 체계를 전시하는 사람으로서, 다음 세대에 지식을 전수하는 사람으로서의 역할을 백과전서 편집자인 자신의 과업으로 여긴 것이다. 그리고 이 작업을 면면히 이어지는 인류 지성사의 일부가 되는 영예로운 일로 받아들이면서 이러한 지식 수집·전시·전달이 미래 세대의 덕을 함양하고 행복을 증진하는 데 기여할 것이란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물론, 백과전서를 만들었던 이들은 모든 지식의 수집을 표방했지만 문자 그대로의 모든 지식을 지면 안에 가둬둘 순 없다는 점을 분명히 알았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시시콜콜한 지식의 수집이 아니라 수집한 지식의 총화를 바라보는 시선을 기록하려 했는데 어쩌면 그것이 디드로가 말하는 지식의 체계였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이 프랑스 백과전서에서 집중해 보아야 할 건 그들이 제시한 인간 지식의 구조일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건 그들이 지식을 기억하는 것, 사유하는 것, 그리고 상상하는 것의 항목으로 나누어 분류했다는 점이다. 베이컨이 <학문의 진보>에서 말한 구분을 어느 정도 따르는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18세기 계몽주의자들이 생각한 인간 지식의 도식 체계. 기억, 이성, 상상력의 세 범주를 확인할 수 있다.

제시된 그림(사진)은 우리가 흔히 18세기 백과전서파로 부르는 계몽주의자들이 바라보았던 지식의 지평이고, 그들이 머릿속에 담고 있었던 지식의 구조이다. 디드로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그들은 이 지식 체계를 완성된 정적인 그림으로 바라본 것이 아니라, 무지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획득할 수 있는 지식의 영토를 역동적으로 확장하기 위한 일종의 전시상황도처럼 대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아무리 이성에 입각한 계몽주의자들이라 할지라도 이성에 속한 학문과 지식의 성취는 상상력에 담긴 성취에 비해 지나치게 불균형해 보이기 때문이다. 마치 고대의 순수했던 지식들을 잃어버린 것인 양 지식 복원에 몰두했던 시대가 지나고 나서 이제 그동안 수집한 지식들을 거시적 시각에서 조망해볼 수 있는 시간이 찾아오자 어느 영역에서 상대적으로 지식이 빈곤한지를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닐까?

‘브리태니커’ 발간 때 절정…대중적 수요 늘며 지식 수집 경쟁 불붙어

프랑스의 백과전서와 비슷한 맥락에서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시작된 브리태니커(Encyclopædia Britannica, 1768~)와 독일어로 쓰인 브로크하우스의 백과전서(Brockhaus Enzyklopadie, 1796~) 등 지식의 수집이 전성기를 맞이했다. 이제는 이 백과전서들을 활용하는 일이 현격히 줄어들었고, 또 개정판이 나오면서 이전의 서술을 들여다볼 일은 거의 없게 되었다. 지식에 대한 최신의 바른 설명을 제공하는 것이 한동안 백과전서들의 핵심 성과지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오래된 백과전서 전통의 맥락에서 생각해볼 지점들이 있다. 어떤 항목들에 대한 설명이 최신 지식을 반영하는 노력이 중단된 상황을 맞는다면, 백과전서에 이전부터 쌓여온 설명들은 무슨 효용을 갖겠는가? 비록 누적된 설명들이 때로 미흡한 점이 있다 하더라도 이것들은 해당 지식에 대한 이력서(curriculum vitae) 역할을 한다. 한 사람의 생애를 기록한 이력서가 있는 것처럼 지식도 인간에 의해 발견돼 탄생한 순간부터 새로운 지식으로 대체돼 소멸하는 순간까지의 기록이 있는 셈이다. 그래서 몇년도판 백과전서는 그 시대 지식의 풍경을 박제한 결과물로 남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지성사의 망망대해에서 항해를 시작해야 하는 연구자에게 백과전서는 일종의 나침반으로서 지식의 전승에서 각 시대마다 처음 살펴보아야 할 중요한 지위를 갖는다. 디드로는 매해 백과전서식 지식서술이 맞이할 시한부적 운명을 알고 있으면서도, 또 그 자신이 권위에 대한 도전을 이유로 여러 어려움을 겪고 비판받았음에도, 모으고(rassembler), 보여주고(exposer), 건네준다(transmettre)는 편집자의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면서 디드로와 백과전서파 편집자들은 이 각각의 행위들이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흩어져 있던 지식들을 모았기 때문에 지식의 체계를 보여줄 수 있었고, 지식의 체계를 가시화할 수 있었기 때문에 후대에 당대 지식의 핵심 요약본(비록 몇천쪽을 넘어간다 하더라도)을 건네줄 수 있었던 것이다.

디드로가 가진 미래 세대의 덕이 있고 행복한 삶을 향한 비전은 교육의 대중적 확산과 더불어 결실을 맺었다. 교양 있는 시민이 교육을 통해 알아야 할 지식의 거대한 저장고로서 백과전서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 대중적 확산 속에서 시간이 갈수록 편집자들은 더 좋은 지식의 총체적 수집을 위해 경쟁을 펼쳤다. 무엇이 더 좋은 지식의 수집으로 각인되었는가? 그들은 더 포괄적인 수집, 그리고 더 명쾌한 설명을 원했다. 그래서 편집자들은 방대한 표제어들을 수록할 수 있도록, 또 핵심을 짚는 간결한 설명을 제공하고자 다양한 분야의 탁월한 지식인들을 이 지식의 수집 프로젝트에 동참하도록 초청했다. 이런 지속적인 노력 덕분에 백과전서의 개정 및 편찬은 출판사로서도 꽤 많은 이익을 남길 수 있는 중요 사업이 되었고, 18세기에 본격화된 지식의 수집 노력이 최소한 20세기 후반까지는 하나의 큰 흐름으로 지속될 수 있었다. 이 글을 읽는 많은 독자의 기억에도 남아 있듯 이 매력적인 백과전서를 집 안에 들여놓으라고 권유하는 가정방문 외판원들이 있었다. 전집을 구매하기 위해 상당히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했음에도, 백과전서를 사는 것만으로도 그 안에 담긴 방대한 지식을 소유할 수 있을 것 같단 유혹에 집집마다 책장 한쪽에 이 지식의 오랜 유산이 한 자리를 차지하곤 했다.

한순간에 덜컥 거금을 주고 백과전서를 구입한 경우라 하더라도, 또 사실은 그 방대한 양의 텍스트에 압도되어 정작 어디서부터 펼쳐 지식의 향연에 뛰어들어야 할지 엄두를 내지 못하던 경우에도, 한 가지 위안거리이자 초보자를 위한 시작점이 될 만한 것이 있었다. 바로 이 백과전서들에 수록되어 있던 많은 삽화였다. 대량의 그림을 인쇄본에 포함시킬 기술이 아직 정교하게 발달하진 않았던 15세기 후반에도 지식 수집에 읽는 행위뿐만 아니라 보는 행위도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는 선견지명을 갖춘 이들이 있었다. 선구적 노력 덕분에 수많은 목판에 새겨진 그림을 통해 일찍부터 백과전서에 삽화들이 포함될 수 있었고, 그에 따라 지식을 읽는 일은 생생하게 지식을 보는 일과 함께 발전되어왔다. 일례로 디드로의 백과전서에는 삽화 3129개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난번 살펴보았던 호기심의 방을 채우고 있던 그 많은 사물이 이제는 그것들을 묘사하는 그림들로 바뀌어 차곡차곡 백과전서 여백 공간 안에 채워지기 시작한 셈이다.

위키피디아의 출현으로 누구나 지식 ‘사용자’이면서 동시에 ‘수집가’

수집된 지식으로서의 막강한 권위를 자랑하던 백과전서에 큰 변곡점이 찾아온 것은 밀레니엄 언저리의 일이었다. 방대한 양의 지식들을 이제 종이가 아니라 시디롬 같은 전자매체에 넣기도 하는 등 여러 시도가 생겨나면서 큰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특히 인터넷이 보급되고 그로 인해 방대한 양의 정보에 접속하는 것이 획기적으로 간편해지게 됐을 때, 전통적인 전집 출판 형태의 백과전서는 거대한 규모 때문에 태생적으로 상호참조가 어렵다는 역설적 한계를 공격하는 새로운 도전을 받게 되었다. 2001년 전자 백과전서 시도들의 시행착오 끝에 위키피디아가 탄생한 것이다.

물론 디드로는 백과전서를 기획하던 단계에서부터 지식들의 상호참조가 가능한 방식을 고안했다. 다만 그의 탁월한 기획의도에도 불구하고 두꺼운 책을 이리저리 찾아가면서 일일이 관련된 지식을 참조한다는 것은 여간 수고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에 반해 텍스트와 이미지, 소리 등 다양한 형식의 자료를 하이퍼링크라는 참조고리를 통해서 손쉽게 넘나들 수 있게 한 위키피디아는 초기의 다소 부족한 서술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을 이 가볍고 간편한 지식의 수집무대로 불러들일 수 있었다.

그렇게 하나둘씩 모여든 사람들은 지식의 사용자이자 동시에 수집가들이기도 했다. 위키피디아 로고는 미완성인 지구본 퍼즐을 수많은 사람이 한 조각씩 서로 돕고 함께 채워 완성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구상에 흩어져 있는 모든 지식을 수집하겠다는 디드로의 말이 떠오르는 대목인데, 수집의 완성을 차별화된 소수 지식인들에게 위임했던 18세기 프랑스와는 달리 오늘날은 관심 있는 대중 누구에게나 참여를 독려하는 개방형 지식 수집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두 모델은 결정적 차이가 있다. 물론 위키피디아의 본래 좋은 목적에도 불구하고 소수 편집자에 의존하는 문제는 여전하고 그마저도 특정 계층에 편중되어 있다는 분석과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수집하기 위해 각양각색 사람들을 세상 구석구석 지식의 대변인으로 세워야 하는 미완의 과제가 남아 있긴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위키피디아가 지식을 작성하여 수집한 5800만건 이상의 문서들(2023년 5월 기준)은 지식 수집에 이미 관성이 붙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사실 매년 늘어나는 문서 개수를 생각해보면, 또 이제 생성형 인공지능(AI)으로 더욱 많은 사람이 지식 수집에 참여할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지식 수집은 단지 관성에 의해 흘러가는 등속운동이 아니라 점점 더 가속화되는 움직임이 될 것이다.

가속화는 단지 위키피디아와 같은 거대한 지식의 덩어리를 더 크게 만드는 효과뿐 아니라 각 전문영역으로 세분화되어 각 영역 지식들에 대한 백과전서의 서술로도 나타나고 있다. 스탠퍼드의 철학 백과전서나 A.D.A.M사의 의학 백과전서가 좋은 예시를 보여주는 것처럼, “무엇의 백과전서”들이 계속해서 분기하여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디드로가 지식 수집에 착수하면서 그 핵심요소로 다루었던 “모으고, 보여주고, 건네준다”는 행위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충분히 많은 지식을 모은 것은 아닐까? 또 우리는 그 수집품들을 엮은 다양한 형태의 지식 전시를 꽤 많이 관람하지 않았는가? 결정적으로 지금까지 우리가 전해 받은 지식의 형태 그대로 후대에 넘겨주는 일만으로도 충분할까?

그래서 요즘은 지식 수집과 관련해 보다 적극적인 행동에 착수할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커지고 있다. 이제 단순히 지식을 모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모은 지식들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에 더 많은 관심을 쏟는다. 예를 들면 지식그래프(Knowledge Graph)는 그래프 이론에서 노드라고 불리는 정점들을 간선으로 연결하는 구조적 지식표현의 한 형태인데, 한데 모은 지식을 알파벳순으로 나열할 것이 아니라 지식들의 관계망 속에서 역동적으로 특정 지식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기술이다. 지식그래프를 통해서 우리는 지식 체계를 디드로의 백과전서에서 보았던 지식의 도식적 체계보다 더 다양한 관점에서 조망하고 있으며, 분명히 지식의 연결이 있어야 하는데도 끊어진 곳을 잇는 지적인 탐구도 수행하고 있다.

앞으론 ‘매력적 지식 전시’에 주목…맞춤형 지식 큐레이션 부상 예상

또 이제 누군가가 멋들어지게 엮어놓은 지식의 전시를 관람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전통적인 백과전서가 나열하고 있는 각각의 항목들은 관련 지식에 대한 하나의 모범적인 전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지식이 발견될 때마다 이 전시물에 대한 개정 작업이 지속적으로 진행되어야 하겠으나, 이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나만의 지식 수집이다. 누군가가 정리해주는 모범답안과 같은 지식을 머릿속에 넣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지식 체계 안에서 소화 가능한 나만의 지식 수집과 서술이 더 중요한 가치로 평가받고 있다. 누가 더 많이 알고 있는가를 중심으로 학습능력 우열을 가리던 평가를 폐기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이제는 지식에 접근하고 활용하는 일에서 누가 자신의 고유한 목소리를 담아 더 매력적인 지식의 전시를 기획하는가가 중요한 때가 되었다.

결국 우리가 지성사를 이루는 일원으로서 감당해야 할 작업은 군더더기 없이 정리된 어떤 정연한 지식을 미래 세대에 남기는 것 이상의 일이 될 것이다. 흩어졌던 지식을 모으기 위해 백과전서 방식의 서술이 필요했다면 이제는 모은 지식을 다시 흩는 작업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물론 무질서하고 무의미한 흩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몇백년 동안 백과전서를 통해 잘 구축해온 구획 안에서 질서 있는 흩어짐이 필요할 것이다. 지식을 다시 흩는 과정에서 개인에게 맞추어진 지식 큐레이션이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에, 나를 대신하여 AI가 그럴듯한 생각을 만들어주도록 맡길 수는 없는 일이다. 내 생각을 AI 기술이 대신해주기를 기대하는 순간 이미 나는 생각하는 나로서의 주체성은 잃고, 기계가 산출한 생각은 더 이상 내 생각, 그리고 내 지식의 취향과 큐레이션은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나만의 생각을 갖기 위해 따르는 여러 귀찮은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다면, 머지않은 시점에 각 개인들의 지식 수집과 큐레이션 자체가 지식 수집의 대상이 되는 메타적인 형태도 나올 것이다. 누군가의 서재를 방문하여 그의 지적 관심사와 취향을 살펴보는 것이 유행인 때가 있었던 것처럼 누군가의 지식 수집을 탐방하는 것이 또 하나의 중요한 지적 행위로 자리매김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은수



서울대 철학과 교수. 서울대학교와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수학, 서양고전, 과학사를 공부하였다.

카이스트에서 수행했던 인문학과 기술의 상호 발전에 대한 연구 및 강의를 바탕으로 서울대에서 디지털인문학이란 이름으로 인문학의 미래에 대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서양 고대로부터 과학혁명 시기에 이르기까지 수학 및 과학적 지식의 생성과 발전 및 혁신 과정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

이은수 서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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