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없이도 사는법] ’가장 성공한 특검’의 재판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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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동 민간업자들을 돕는 대가로 금품을 수수한 의혹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가 기각된 박영수 전 특별검사는 한때 ‘가장 성공한 특검’으로 꼽혔습니다. 2016년 12월 21일 출범한 ‘국정농단 특검팀’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해 국정농단 관련자 50여명을 기소했습니다. 그 결과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는 징역 22년, ‘비선 실세’ 최서원씨는 징역 18년이 확정됐습니다.
그런데 박영수 특검팀이 기소한 사건 중 아직도 끝나지 않은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장관 등이 함께 기소된 ‘문화부 블랙리스트’ 사건입니다. 기소된 지 7년이 지났지만 아직 최종 결론이 안 난 상태입니다. 김 전 실장 등이 좌파 성향 문화계 인사들에 대해 각종 지원을 배제하도록 지시해 직권을 남용했다고 기소된 이 사건은 1·2심에서 유죄 판결이 났다가 2020년 1월 대법원에서 일부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됐습니다. 공무원들에 대해 지원 배제를 지시한 것은 유죄가 맞지만, 공무원들로부터 지원 배제 명단이나 관련 현황을 보고받은 것은 ‘업무 논의’ 성격이 강해 직권남용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입니다.
파기환송에도 불구하고 아직 결론이 안 난 이유는 특검법의 구조 때문입니다. 박영수 특검팀의 기반이 된 특검법의 정식 명칭은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입니다. 이 법에는 ‘특별검사는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퇴직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수사의 연속성을 위해 특검의 ‘직업 선택의 자유’까지 제한한 셈입니다.
박영수 특검은 ‘가짜 수산업자’로부터 포르쉐 차량을 무상으로 제공받은 일이 문제가 되자 2021년 7월 사임했습니다. 특검법은 특검이 사퇴서를 제출하는 경우 대통령은 이를 지체없이 국회에 통보하고 임명 절차에 따라 후임 검사를 임명하도록 돼 있습니다. 남은 사건들의 수사 및 공소유지를 위한 것입니다. 사임 당시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 사건, 그리고 국민연금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 찬성하도록 압력을 넣은 혐의로 기소돼 대법원에 계속중인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공단 기금운용본부장 사건이 있었습니다. 서류심리가 가능한 대법원 사건과는 달리 김 전 실장 사건은 특검이 없으면 재판을 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후임 특검은 임명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대법원 파기환송 이후에도 3년 가까이 서울고법에서 파기환송심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국정농단 관련자 대부분의 사법처리가 끝난 상황에서 후임 특검 임명은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힘든데도 법 규정상 특검이 아닌 일반 검사가 공소유지를 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김기춘 전 실장 사건은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되고도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작년 12월 특검법이 일부 개정됐습니다. 특검법 14조 ‘퇴직’ 규정과 관련해 ‘특검이 공소제기한 상고심 판결이 선고됐으나 확정되지 아니한 중에 특별검사와 특별검사보가 모두 궐위된 때에는 해당 사건은 관할 검찰청 검사장에게 승계된다’는 규정이 신설됐습니다. 바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특검이 아닌 일반 검사도 공소유지를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간단한 규정으로 3년 가까이 멈춰 있던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은 다음달 초에 드디어 파기환송심이 열릴 예정입니다.
법조계에서는 ‘재판 회부형에 처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형사사건 피고인이 되면 그 결과가 무엇이든 최종 결론이 날 때까지 불안정한 법적 지위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검사가 재판에 넘기는 것 자체가 형벌이 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김기춘 전 실장의 끝나지 않은 사건은 한때 가장 성공한 특검이었던 ‘국정농단 특검’의 알려지지 않은 그늘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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