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자 낙인’ 퇴직, 무섭죠? 대신 해드려요!”…‘퇴사 대행업체’ 인기 [여기는 일본]
[서울신문 나우뉴스]
다양한 대행 서비스가 존재하는 일본에 또 하나의 신개념 서비스가 호황을 누리기 시작했다. 이른바 ‘퇴사 대행 서비스’다.
AP통신의 30일(이하 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기업에 대한 충성심과 ‘평생 고용’으로 유명한 일본에서는 이직자 또는 이직을 고려하는 행위 자체를 부끄러운 일로 간주한다.
특별한 문제가 있어서가 아닌, 단순한 이직을 위한 퇴사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 업체는 지난 몇 년 동안 수십 곳이나 생겨났다.
퇴사를 원하는 사람은 해당 전문 업체에 2만~5만 엔(한화 약 18만 3000~45만 7000원)을 지불하면, 회사 측에 불편하고 어색한 시간 없이 퇴사 절차를 밟을 수 있다. 퇴직금 등 퇴사를 위한 절차도 포함된다.
일본 재팬포스트의 25일 보도에 따르면, 현재 일본 포털사이트에서 ‘퇴사 대행 서비스’를 운영하는 업체는 40곳 이상이며, 이중 상위 다섯 업체의 누적 이용자 수는 10만 명에 육박한다.
‘민폐’ 끼칠까 두려워하는 일본인에 맞춤 서비스
퇴사 대행 서비스가 태생한 것은 2010년대 중반이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이용자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재택근무가 활성화되고 감염 우려로 접촉을 최소화하는 분위기 속에서 이직자 수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특히 팬데믹 기간에 입사한 사원들은 회사 동료 및 상사와 대면할 시간이 적었기 때문에, 퇴직 의사를 전달하는 것을 더욱 어려워한다. 친해질 시간도 제대로 갖지 못한 채 퇴직 의사를 밝히는 것이 ‘민폐’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20대 신입사원들에게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퇴사 대행 업체 엑시트(EXIT)가 지난 1~3월 조사한 결과, 이용자의 72%가 20대였다. 근속 연수는 3개월 미만이 38%로 가장 많고 3개월~1년 33%, 1~3년 20%였다.
“함께 몸 담은 회사를 그만두는 것은 배신이라고 생각”
도쿄에서 퇴사 대행 업체를 운영하는 하세가와 요시히토는 AP통신에 “일본 사람들은 회사에서 종종 자신을 더 큰 이익을 위해 희생하는 ‘가미카제’(일본군 특공대의 자살 공격기)로 비유한다”면서 “젊은이들에게 노인을 공경하도록 가르치는 것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일을 처리한다. 그래서 (함께 몸 담은 회사를) 그만두는 것은 ‘배신’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020년부터 이 업체를 운영해 온 하세가와 대표에 따르면, 해당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은 대부분 20대다. 직장에서 ‘덜 고통스럽게 탈출’하려는 30대도 도왔다. 치과와 법무법인 등 전문직 회사부터 편의점과 음식점 등 서비스 업체까지 다양한 직종의 1만 3000여 명이 이 회사를 이용했다.
하세가와 대표는 “우리 업체의 고객 절반은 여성이며,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많다. 물론 때때로 대기업 직원이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면서 “일본의 회사가 만성적인 노동력 부족을 겪고 있다는 걸 감안할 때, 직원이 떠나는 것을 거부하는 회사도 있다”고 말했다.
아키코 오자와 변호사는 AP통신에 “일본 헌법상 기본적으로 퇴직의 권리를 보장하지만, 구식 계층 구조에 익숙한 일부 고용주는 훈련시켜놓은 사람이 떠나고 싶어한다는 걸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일본 문화의 ‘순응주의적 일 중독’, 고통스러울 정도로 무거워
AP통신은 “일본 문화의 ‘순응주의적 일 중독’에 대한 스트레스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무겁다”면서 “근로자는 말썽꾼으로 보이길 원치 않고,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을 꺼려하며, 발언 자체를 두려워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어떤 이는 퇴사 후 괴롭힘을 두려워할 수도 있다. 퇴사 후 주변 친구들이나 가족에게 비춰지는 모습을 걱정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하세가와 대표는 이를 입증하는 한 사례를 소개했다. 남성 A씨는 과거 회사에서 판매 실적에 대한 비판을 받고 퇴사를 생각하지만 뜻대로 하기 어려웠다. 이에 매우 우울해 하며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다 해당 업체에 도움을 요청했고, 업체의 도움으로 단 45분 만에 퇴사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어 “이직은 일본에서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큰 도전”이라면서 “일본의 인력 부족 현상을 감안할 때, 대체 인력을 찾고 새로 교육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그래서 누군가 퇴직할 때 상사는 때로 분노를 터뜨린다”고 전했다.
또 “이러한 일본식 사고방식이 존재하는 한 ‘퇴직 대행 서비스’에 대한 필요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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