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하의 '그런데'] 민원에 멍드는 교권

2023. 6. 30.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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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하의 머릿수만 채울 자다"

중국 춘추시대 노나라 실권자인 계자연이 제자인 자로가 재상감이냐고 묻자, 공자는 대뜸 이렇게 깎아내립니다.

공자는 혈기 왕성한 자로를 자주 꾸짖고 다른 제자들 앞에서 망신을 주기도 하지요. 하지만 자로는 타고난 충성심과 용맹으로 예수의 베드로와 비견될 정도의 핵심 애제자가 되고, 그가 죽자 공자는 마치 세상을 잃은 듯 슬퍼하다 이듬해 세상을 떠납니다.

만약 공자가 21세기 한국에서 태어나 학생을 가르쳤다면 어땠을까요. 적어도 망신을 주는 건 상상도 못 했을 겁니다.

경기도 소재 모 고등학교에선 교사가 피곤해 보이는 제자에게 '하루 7시간을 자라'고 했다가 학생 보호자가 교장실로 찾아와 사생활 침해라고 항의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모 초등학교에선 교사로부터 칭찬 스티커를 받지 못한 학생의 부모가 '정서적 아동학대'라는 민원을 넣고 경찰에 신고까지 해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으며, 제주의 어느 학부모는 5년간 3개 초등학교를 옮겨 다니며 교사와 학교에 대해 교육청과 검찰, 국민권익위원회, 대통령실에까지 악성 민원을 천 건 이상 제기해 학교가 아예 쑥대밭이 되기도 했지요.

무차별적인 민원 세례에, 회의와 환멸을 느끼고 교단을 떠나는 젊은 교사도 늘고 있습니다. 최근 1년간 퇴직한 근속 연수 '5년 미만' 국공립 초중고 교원은 589명으로, 그 전 해 대비 2배 가까이 증가했거든요.

엊그제부터 시행된 개정 초중등 교육법은 학교장과 교사가 '학생생활지도를 할 수 있다'고 명시했지만 이 당연한 걸 법에 적시해야 한다는 것도 웃기지만, 아직 구체적인 지도방식과 권한 범위도 정하지 못했습니다.

미국은 '교사 보호법'을 제정해 명백한 과실 외에는 교사의 생활지도에 대해 면책특권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교권이 무너지면 결국 학교가 무너지고 그건 우리 세대는 물론 미래 세대에도 불행한 일이 될 테니까요.

대학입시에 맞춰진 교육개혁보다 더 중요하고 더 시급한 건, 바로 교권이 제자리를 찾는 거 아닐까요?

안 그러면 공자를 데려다 놔도 우리 교육은 제대로 가지 못할 테니까요.

김주하의 그런데 오늘은 '민원에 멍드는 교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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