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성착취물 소지했다가 처벌받아도 '공무원' 될 수 있다?
[한예섭 기자(ghin2800@pressian.com)]
아동성착취물 소지죄로 처벌받은 이를 공무원으로 임용할 수 없게 하는 법조항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왔다.
헌재는 29일 열린 헌법소원 심판에서 국가공무원법 제33조 및 지방공무원법 제31조 등에 대해 재판관 6대 2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해당 법률 조항들은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및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를 영구적인 공무원 임용 결격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헌법소원을 제기한 A 씨는 지난 2019년 텔레그램 성착취(N번방) 사건 당시 소위 '박사방' 등에서 성착취물을 제공받아 소지한 혐의로 2021년 벌금 700만 원형을 선고 받은 이다. 9급 국가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그는 국가공무원법 제33조 등으로 임용자격을 박탈당하자 해당 조항이 자신의 공무담임권, 직업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며 지난해 9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재는 해당 조항이 규정하는 '광범위한 공무 영역에서의 영구적 임용 제한'이 헌법에 위반한다고 봤다. "(해당 조항은) 아동·청소년 관련이 없는 직무를 포함해 모든 일반직공무원에 임용될 수 없도록 하므로 제한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고 포괄적"이며 "상당 기간 임용을 제한하는 덜 침해적인 방법으로도 입법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헌재는 "이는 과잉금지원칙을 위배해 공무담임권을 침해한다"고 결정했다.
다만 헌재는 "(아동 성착취물 소지죄 전과자가) 일반직 공무원으로 임용되는 것을 어느 정도로 허용할 것인지는 입법자가 충분한 논의를 거쳐 결정할 사항"이라며 문제가 된 조항들에 대해 2024년 5월31일까지 개정 시한을 뒀다. 이에 따라 국회가 개정 시한까지 개정안을 의결하지 못하면, 조항은 마땅한 대체 조항 없이 효력을 잃게 된다.
반대 의견도 있었다. 소수 의견을 낸 이은애·이종석 재판관은 "공무수행 중 아동·청소년과 접촉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거나 시간이 경과했다는 이유만으로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소지죄를 저지른 사람이 공직에 진입하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는 행위자의 습벽에 의해 저질러지는 경우가 적지 않아 단기간에 교정되지 않고 재범의 위험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성폭력 피해자 지원 현장에서도 난색을 표한다. 김수정 한국여성의전화 공동사무처장은 30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성범죄는 다른 강력범죄에 비해 기소율이 낮아 형이 확정될 확률이 작은 범죄에 속하고, 불법촬영 범죄 등 성착취물 관련 범죄는 더욱 그렇다. 현실적으로 기소되고 벌금형이 확정될 정도면 이미 상당한 중범죄"라며 "헌재의 이번 판단은 성범죄에 관한 수사·사법 기관 내의 (온정적인) 현실을 고려하지 못한 안이한 판단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성착취물 소지죄 등 '디지털성폭력' 범죄는 매년 그 발생 건수가 급증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가해자의 처벌은 대부분 집행유예, 벌금형 등 가벼운 처벌에 그쳐 사회적 논란을 야기해왔다. 법원은 지난해 9월에도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당시 아동 성착취물을 소지하고 이후 피해자 2차가해에까지 동참한 20대 남성 B 씨에 대해 "단순한 소지·방조"라는 이유를 들어 집행유예를 선고한 바 있다. 범죄의 처벌 자체가 미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 나온 헌재의 이번 결정은 '역행'에 가깝다는 것이 김 사무처장의 지적이다.
김 사무처장은 아동성착취물 소지죄로 처벌 당했더라도 '아동·청소년 관련 업무가 아닌 일반직 공무원에 대해서는' 임용에 제한을 둘 수 없다는 헌재의 판단에도 의아함을 내비쳤다. 그는 "공무원은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이들이다. 자신의 행위가 아동이나 청소년, 여성들에게 미칠 영향 등을 세심하게 고려하고 살필 수 있는 기본적인 역량을 가져야 한다"라며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를 저지른 이들이 그런 자질을 갖춘 이들인가" 꼬집었다.
2020년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당시에는 한 사회복무요원이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에게 무단 조회한 개인정보를 넘기면서 조 씨의 가해행위에 기여하기도 했다. 평범한 대민 업무에 투입된 이라 할지라도 성폭력 범죄에 관여할 수 있다는 점을 이미 보여준 사례다.
김 사무처장은 "아동·청소년과 직접 대면하지 않더라도 업무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은 너무나 많다. 현실적으로 (범죄자가 공무원이 됐을 때) 아동·청소년과의 업무 관련성을 완전히 분리시킬 수 있을지도 의문이 든다"라며 "(헌재의 헌법불합치 판결은) 공무원의 신뢰성, 국민 불안감 등을 고려하지 않은 부적절한 판결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헌재는 지난해 11월에도 '아동 성학대 전과자의 공무원·직업군인 임용'을 영구 제한하는 국가공무원법 조항을 헌법에 위반한다고 판단했다. 당시에도 헌재는 "범죄의 경중, 재범 위험성, 직무 관련성 등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임용을 제한한 것은 공무담임권 침해"라는 논리를 차용했는데, 이때에도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의 죄질을 고려할 시 사법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반대 의견이 일었다.
[한예섭 기자(ghin2800@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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