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살도 열외 없는 '사교육 광풍'…소외된 80%의 얘기[정다운의 뉴스톡]
방송 : CBS 라디오 '정다운의 뉴스톡 530'
■ 채널 : 표준FM 98.1 (17:30~18:00)
■ 진행 : 정다운 앵커
■ 대담 : 박희영 기자
[앵커]
정부가 발표했던 킬러문항 배제 등 사교육 경감 대책, 과연 사교육 시장의 폐해를 막을 수 있을까요?
CBS가 지난 26일부터 내일까지 사교육 대책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 시리즈를 내놓고 있는데요.
교육현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본 사회부 박희영 기자가 스튜디오에 나왔습니다. 박기자, 어서오세요.
[기자]
안녕하세요.
[앵커]
사교육 문제가 심각하긴 해요. 아직 초등학교도 다니지 않는 4살배기도 벌써 사교육을 받는다고요?
[기자]
네, 저희 취재진이 교육일번지로 유명한, 서울 강남 대치동의 한 영어유치원을 직접 찾아가봤는데요. 우는 4살배기에게 알파벳을 따라쓰게 하는 모습에서 유아 사교육의 현실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영어유치원 관계자입니다.
[인서트]영어유치원 관계자
"4살이…손 잡고 트레이싱만 하루 종일 한다고 하더라고요. 애기들이잖아요 4세 아이들 악력이 없으니까… 이걸 잡고 트레이싱 연습을 10번씩 울면서 울면서 한대요"
[기자]
이곳은 한달 수업료만 최소 170만원인데, 이조차도 자리가 없어 줄을 선다고 합니다.
[앵커]
초등학생 때부터 의대 입시를 준비하는 학원도 있다고요?
[기자]
네, 대치동에선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의대반도 이젠 흔한 풍경입니다. 안정적이고 높은 소득을 보장하는 의대 쏠림 현상이 심화된 대학 입시 현실을 반영한 듯 한데요. 이 곳에선 10살도 되기 전에 의대 입시를 준비한다고 합니다.
[인서트]초등의대반
"(초등학교) 2학년 3학년부터 달려가는 엄마들이 있는데 그때는 이제 달려가는 게 맞죠."
"(어떤 애는) 지금 4학년인데 막 수1해요, 수1"
[기자]
초등학생에게 고등학교 수학을 선행학습시키는 겁니다. 이른바 명문대와 의대 등의 입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학부모의 불안을 겨냥한 '사교육 마케팅'의 대상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초등학교 사교육비 증가율은 13.4%로 중, 고등학교를 제치고 가장 높았습니다.
[앵커]
그래서 정부가 사교육 경감 대책을 내놓은 걸텐데, 사교육 업계 반응은 어떤가요?
[기자]
정부가 수능을 5개월 여 앞두고 서둘러 대책을 발표한 일이, 정작 사교육 업계에선 학부모들의 불안마케팅을 자극해준 '호재'로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저희 취재진이 직접 대치동의 한 유명 입시학원에 학생으로 위장해 수업을 들으며 학원가 반응을 살펴봤는데요. 수업 도중 강사가 학생들을 안심시키며 한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인서트]
"불안해하지 않으셔도 된다고요. 시키는 것만 하세요."
[기자]
강사는 탄탄한 정보력을 앞세우며 출제 기조를 미리 예고하고, 자신의 수업만 따라오면 된다고 장담했습니다.
[앵커]
학생들 반응은 어떻던가요?
[기자]
수능이 150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 발표로 불안에 떨던 학생들도 사교육 업계의 발빠른 대응에 오히려 학원 강사들을 더 믿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인서트]
"아직도 학원을 똑같이 유지하고 있고, 새로운 문제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학원에서) 준비를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거에 맞춰서 대치동은 특히나 더 빠르게 변화해주니까 오히려 그냥 다니는 게 지금은 이점이 있지 않나"
[앵커]
사교육 경감 대책인데, 오히려 사교육 공포마케팅만 부추긴 셈이군요?
[기자]
네, 입시제도의 급격한 변화는 풍선효과처럼 또 다른 사교육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사교육의 역설'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정부가 화끈한 한 방을 내놓아도 사교육 시장이 발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기존에 없던 사교육까지 더 생겨나는 부작용이 발생한단 얘깁니다.
더구나 교육부는 자사고·외고·국제고는 존치하겠다고 밝혔는데요. 이곳에 가려는 초·중학교 학생 사교육을 부추기는 판이니, 사교육 완화 정책의 진정성,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앵커]
정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킬러문항 배제' 논란인데요.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어요. 사실 킬러문항을 풀 수 있냐 없냐를 따지는 학생들은 정말 최상위권 뿐이잖아요. 이런 논란이 뿌리 깊은 사교육 문제 해법으로 충분할까, 우려가 들기도 하거든요.
[기자]
네, 애초 킬러문항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성적이 등락을 좌우하는 정시 전형을 준비하는 최상위권 학생들 사이 변별력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어서요. 3등급 밖에 있는 80% 이상의 절대 다수 학생들에겐 사실 와닿지도 않을 얘기이긴 해요.
예를 들어 지방에서는 서울 상위권 대학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라도 정시보다는 대입 수시 학생부종합전형을 준비하는 경우가 대다수 거든요. 또 특성화고처럼 아예 졸업 후 진로가 전혀 다른 학생들도 많죠. 이런 학생들에겐 지금의 논란이 과열된 모습 자체가 먼 나라 얘기처럼 들린다고 해요.
{앵커]
말씀대로 킬러문항을 넣냐, 마냐 같은 어떻게 보면 지엽적인 문제에 정부의 온 관심사가 꽃혀있는 셈인데요. 윤석열 대통령이 집권 초부터 교육 개혁에 공을 들이겠다고 강조했는데, 왜 이렇게 학생과 학부모들이 불안할 정도로 서둘러 입시 제도를 바꾸겠다는 건지 납득이 되지 않아요.
[기자]
그동안 이번 대책이 졸속으로 추진됐다는 지적이 나오니까, 교육부는 예전부터 윤석열 대통령이 '사교육 완화'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교육전문가들은 대체 언제부터 윤 대통령이 사교육 완화를 '교육개혁'으로 내세웠느냐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경기여고 교사인 교육을바꾸는사람들 김학윤 정책위원입니다.
[인서트]교육을바꾸는사람들 김학윤 정책위원
"교육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얘기만 있었지 어떤 내용인가 명확히 정리된 것을 못봤다.
입시 문제를 개혁하겠다는 대통령 발언도 지금까지 한 번도 무게를 싣거나 한 적이 없는데, 갑자기 (대통령이 언급하니) 무게가 실리고 엉뚱한 사람들이 질책받고 날아가고 있다"
[기자]
실제로 윤 대통령의 공약이나, 교육부 업무보고 등을 살펴보면 AI인재 양성, 디지털 스쿨 설치 같은 신산업을 위한 교육을 강화한다는 내용이 많았고요. 입시와 관련해서 대학 입시 제도 단순화나 정시 비율 확대 조정이 공약에 담기기도 했지만, 지금과는 다소 내용이 다르죠. 교육계 전반에서 이번 대책이 '갑작스럽다'고 말하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단순히 사교육을 때려잡겠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학생들과 교육이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인가,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인데요. 뿌리 깊은 사교육의 폐해를 해결하려면, 결국 대학 서열화에 따른 입시 문제 등 구조적인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선망하는 일부 직업군을 제외하고 다른 곳은 '루저'라는 사회 인식이 팽배하잖아요. 대학 서열화, 학벌주의, 노동시장의 구조를 보면서 결국 믿을 것은 입시 성적이라는 생각이 존재하는 한 근본적 해결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앵커]
네 여기까지 듣죠. 박희영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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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박희영 기자 matter@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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