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세조종은 안했다”는 라덕연...사전 공모 여부 입증이 관건

김민소 기자 2023. 6. 30.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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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투자였다”는 라덕연 측 주장
‘시세조종 담합’ 입증이 재판 핵심

“시세조종을 한 적도 없고, 할 의사도 없었습니다. 시세조종 부분은 무죄를 주장합니다.”

주식을 통정매매(사전에 가격과 시간을 정해놓고 매매) 하는 수법 등으로 삼천리·다우데이터 등 8개 기업의 주가를 조작해 부당이익을 취한 혐의로 기소된 라덕연 씨 측이 29일 열린 첫 재판에서 혐의를 부인했다. 라 씨 측은 “시세조종이 아닌, 저평가된 종목들을 골라 가치투자를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가치투자란 기업의 실적, 보유자산 등에 비해 주가가 낮은 주식을 산 뒤 고점에 매도해 수익을 내는 방법이다.

변호인은 라 씨의 행위가 시세조종이 아니었다는 근거 두 가지를 제시했다. ①주식 거래 형태가 대부분 ‘매수’ 주문이었고 투자자가 정산을 원할 때 ‘매도’ 주문을 넣었다는 점 ②호가 관여율이 낮다는 점이다. 호가 관여율이란 전체 주문 중에서 시세조종 주문 등이 차지하는 비율을 의미한다. 변호인 측은 라 씨 일당의 행위가 증권사가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도 했다.

법조계에선 라 씨 측이 통정매매 입증이 어렵다는 점을 이용해 변론 전략을 짰다고 본다. 통정매매를 입증하려면 통정(通情), 즉 사전에 시세조종을 공모했는지가 증명돼야 한다. 그런데 계약서나 대화 내역 같은 물증이 남지 않는 이상, 시세조종을 사전에 공모했는지 명시적으로 보여줄 근거가 없다. 검찰이 이 부분을 입증해야 시세조종 혐의까지 적용해 단순히 무등록 상태로 투자일임업을 한 것보다 강한 처벌을 받게 할 수 있다.

무등록 투자일임업을 하다 적발돼 유죄 판결을 받으면 3년 이하 징역이나 1억원 이하 벌금에 처해지지만 불공정거래로 인한 이득액이 300억원 이상이면 최대 징역 15년까지 처할 수 있다. 검찰이 주장하는 라 씨 일당의 부당이득액은 7305억원인데 법조계에선 이 금액이 전부 인정되기는 쉽지 않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라 대표 일당이 지난 2019년 5월부터 올해 4월까지 투자자들로부터 유치한 투자금 수천억원을 통정매매하는 수법으로 삼천리·다우데이터 등 8개 기업의 주가를 조작해 7305억원의 부당이득을 취했다고 보고 있다. 또 이들이 금융투자업 등록을 하지 않고 고객들을 유치하고, 고객 명의 차액결제거래(CFD) 계좌를 위탁 관리하며 1944억원의 부당이득을 취했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범죄수익을 법인 또는 음식점의 매출 수입으로 가장하거나 차명계좌로 지급받는 등 세탁·은닉한 혐의도 받는다.

라덕연(왼쪽부터) 투자자문업체H사 대표(42)·호안에프지 대표 변모씨(40)·전직 프로골퍼 안모씨(33) /뉴스1

◇ “‘호가 관여율 낮다’는 주장은 설득력 없어”

황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재판에서 통정매매로 처벌이 되려면 주식 매도 수량, 매매시간, 매매 금액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여 매매를 체결하였다는 사실이 인정되어야 한다”며 “이 부분이 입증이 안 될 경우 법원은 우연히 거래가 체결된 것에 불과해 무죄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다만 수년에 걸쳐 반복된 수상한 주문패턴이 사전 공모가 있었다는 걸 묵시적으로나마 보여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사전 공모가 그대로 나타난 자료가 없더라도 같은 시간, 같은 가격에 거래됐다는 거래소의 분석 자료가 방대하게 나올 경우 통정 여부가 간접적으로라도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호가 관여율이 낮아 시세조종으로 보기 어렵다는 라 씨 측 주장에 대해선 ‘부실한 주장’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호가 관여율은 시세조종을 판단하는 객관적인 기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호가 관여율이 높은 데 시세조종이 아닐 수도, 관여율이 낮아도 시세조종이 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유통 물량이 적은 주식의 경우 시세조종 의도가 없어도 호가 관여율이 매우 높고, 고가 매수를 반복적으로 하거나 시종가(시가·종가)에 관여하는 경우 관여율이 매우 적어도 시세조종으로 인정되기도 한다”며 “호가 관여율 자체를 통정매매를 하지 않은 근거로 내세우긴 어렵다”고 말했다.

시세조종을 판단하는 기준은 호가 관여율은 5%로 알려졌지만, 이 또한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는 게 관계자 설명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시세조종을 판단하는 기준은 ‘매매의 의도’에 있다”며 “5%가 넘는다고 시세조종으로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호가 관여율이 1%여도 고발 조치가 가능하다”며 “한 주를 거래하더라도 1초에 몇 번씩 반복적으로 주문해 100주를 넣어 시세조종으로 인정돼 법원서 유죄판결을 받은 경우도 있다. 이 경우 호가 관여율이 매우 낮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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