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툼 여지 있다” 박영수 영장기각 사유 보니···산 넘어 산 ‘50억 클럽’ 수사
대장동 개발 민간업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거액을 수수했다는 이른바 ‘50억 클럽’ 의혹을 받는 박영수 전 특별검사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이 30일 기각됐다. 법원은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혐의가 소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는데, 검찰은 “납득하기 힘들다”며 영장 재청구 여부를 검토 중이다. 검찰이 수사 착수 1년 9개월 만에 청구한 영장이 법원 앞에서 가로막히면서 ‘50억 클럽’ 의혹 수사는 지지부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유창훈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전날 박 전 특검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연 뒤 이날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유 부장판사는 “주요 증거인 관련자들의 진술을 살펴볼 때 피의자의 직무 해당성 여부, 금품의 실제 수수 여부, 금품 제공 약속의 성립 여부 등에 사실적, 법률적 측면에서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현 시점에서 피의자를 구속하는 것은 피의자의 방어권이 지나치게 제한된다고 보여 현 단계에서 구속의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형사소송법상 피의자가 구속이 되려면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법원은 “사실적, 법률적으로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검찰이 구성한 범죄사실에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첫째로 법원이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본 건 박 전 특검이 당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수재 혐의의 적용 대상(신분범)인 ‘금융회사 임직원’이 맞는지 여부다. 박 전 특검은 2014~2015년 우리금융지주(우리은행) 이사회 의장으로 활동했다. 박 전 특검 측은 전날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서 “박 전 특검이 재직했던 우리금융지주는 금융회사가 아니어서 박 전 특검은 해당 혐의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반면 검찰은 “우리금융지주와 우리은행이 2014년 11월 합병된 뒤 박 전 특검 측근인 양재식 전 특검보가 민간업자들에게 이익 제공을 요구하는 등 범죄가 발생했다”며 박 전 특검이 적용 대상이 맞다고 반박했다.
둘째로 법원은 박 전 특검이 8억원을 수수했는지도 불명확하다고 봤다. 검찰이 박 전 특검이 수수했다고 주장한 8억원 중 5억원은 2015년 4월 박 전 특검의 인척 이기성씨가 대장동 민간사업자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 지시로 박 전 특검에게 보낸 뒤, 박 전 특검이 화천대유로 송금한 것이다. 검찰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서 “박 전 특검이 민간업자들로부터 우리은행의 컨소시엄 참여, 프로젝트파이낸싱(PF) 여신의향서 발급 청탁 대가로 약속받은 50억원을 담보하기 위해 이들로부터 받은 5억원을 화천대유의 증자대금(지분투자)으로 넣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전 특검 측은 “김씨와 이씨간 거래일 뿐 박 전 특검과는 상관이 없다”고 맞섰다.
박 전 특검이 민간업자들로부터 대한변호사협회장 선거자금으로 받았다는 나머지 3억원 역시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린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검찰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서 대장동 민간업자들의 청탁과 거액의 대가가 약속된 시기에 약속 실현의 일부로 3억원이 전달됐다고 주장했다. 박 전 특검 측은 법원에 “3억원을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선거비용 사용 내역이 담긴 통장거래 내역을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박 전 특검과 민간업자들간 ‘약속 성립’ 여부를 두고 검찰은 ‘청탁 및 약속→우리은행의 여신의향서 발급→8억원 수수 등’의 구조로 약속이 실제 실현됐다는 점을 강조했으나 법원은 입증이 부족하다고 봤다.
검찰 내부는 당혹감이 역력한 분위기다. 구속영장 기각의 사유가 ‘범죄 구성요건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취지였기 때문이다. 법원이 언론에 공개한 영장심사 결과에는 증거인멸·도망 염려에 대한 판단이 포함되지 않았다. 게다가 한 달 전 ‘천화동인 6호’ 실소유주 조우형씨에 대한 영장이 기각된 뒤 잇따라 나온 기각이었다.
50억 클럽 의혹 관련자 중 가장 먼저 재판에 넘겨졌던 곽상도 전 의원의 1심 무죄에 이어 박 전 특검까지 구속에 실패하면서 50억 클럽 의혹 수사는 동력을 얻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특히 박 전 특검의 신병을 확보한 뒤 박 전 특검의 딸이 화천대유로부터 받은 자금의 성격과 추가 자금 수수 여부 등을 규명해 수사에 속도를 내려던 검찰로서는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서울중앙지검은 이날 입장을 내어 “다수 관련자들의 진술과 이를 뒷받침하는 객관적 증거들에 의하면 청탁의 대가로 금품을 수수 및 약속한 점이 충분히 인정되는 상황에서 법원의 영장기각 사유를 납득하기 어렵다”며 “검찰은 향후 보강수사를 통해 구속영장 재청구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이보라 기자 purp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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