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수신료 분리징수가 '비중요규제' 대상이라고?
규제심사 절차 충분히 지키지 않은 채 입법예고 강행…내부서도 문제의식
KBS "회의 열어서 판단해주시길 요청"…방통위 "입장 말씀드리기 어려워"
[미디어오늘 노지민, 박서연 기자]
TV수신료 분리징수를 위해 방송법 시행령을 졸속 개정한다고 비판받는 방송통신위원회가 방통위 훈령에 규정된 방송통신규제심사위원회를 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KBS는 이제라도 규제심사위를 열어 방송법 시행령에 대한 심사대상 여부를 판단해 달라고 요청했다.
미디어오늘 취재 결과 방통위에는 30일 이에 대한 KBS 공문이 접수됐다. KBS는 공문에서 “방송법 시행령 일부 개정령안과 관련해 방송통신규제심사위 개최와 규제 대상 여부에 대한 판단을 요청한다”고 했다.
방송통신규제심사위원회는 민·관이 공동위원장을 맡아 방통위가 법령이나 행정규제를 제·개정하는 것이 적정한지 심사하는 위원회다. 국무조정실이 규제심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경우에 따라 해당 심사위가 규제 신설·강화에 따른 '규제영향분석서'나, 규제 폐지·완화에 따른 '규제비용분석서'를 작성하게 된다. 규제심사위 심사 결과에 따라 철회나 개선 등 권고 의견을 낼 수도 있다. 현재 규제심사위 정부측 위원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이상인 방통위원, 민간 위원장은 윤석년 광주대 신문방송학과 교수(현 KBS 이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번 방송법 시행령 개정 절차에선 규제심사위가 개최되지 않았다. 지난 13일 방통위의 검토 의뢰를 받은 국무조정실이 하루 만인 14일 해당 시행령 개정안이 '비중요규제'이기에 규제심사 대상이 아니라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국전력이 전기요금 고지서에서 수신료를 분리하면 수신료 징수·체납 등 어떤 영향을 미칠지, 통합고지 외의 징수방식을 취하면 어떤 비용이 얼마나 발생하는지 사전 분석이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일련의 과정은 '졸속'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방송통신 규제업무 운영규정의 '규제심사 절차'는 입법예고 2주 전에 규제심사 여부를 검토한 뒤 위원회에 이를 보고하고, 규제심사가 이뤄질 경우 입법예고 1주 전까지 규제 영향 또는 비용 분석서를 작성하도록 규정한다. 그러나 방통위는 위원회 회의 당일에야 국무조정실 검토 결과를 보고했고, 2주가 아닌 2일 만에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KBS는 수신료 분리징수 시행령이 '비중요규제'라는 국무조정실 결정에 대해서도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방송통신 규제업무 운영규정에 '중요규제'로 명시된 요건에 수신료 분리징수가 부합한다는 것이다. △직간접비용이 100억 원 이상이거나 피규제자가 100만 명 이상인 규제 △명백하게 진입이나 경쟁이 제한적인 성격의 규제 △기타 관계부처 또는 이해당사자간 이견이 있거나 사회경제적으로 상당한 부작용이 우려되는 규제 등이 중요규제에 해당한다.
KBS는 방통위 판단을 요청하는 문건에서 “KBS와 한전 간 위탁수수료는 매년 약 400억 원을 상회하고 수신료 분리고지 및 징수에 관한 시행령 개정으로 인해 분리고지가 될 경우 수신료 징수비용은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약 2000만 세대 이상 수신료 고지 및 징수 행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다. 이해당사자 간 이견이 크고 사회경제적으로 상당한 부작용이 우려되는 규제”라며 “예외를 허용하는 이해관계인간 이견이 없고 다른 규제대안이 없는 경우가 아님이 명백함에도 규제영향분석서가 누락되어 절차적으로 문제점이 높다고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KBS는 “규제심사 대상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행정청 내부의 의사결정 과정이나, 개정령안이 방송통신규제업무 운영규정 제9조 4항이 정하고 있는 중요 규제인 점을 감안하여 방송통신규제심사위원회에서 규제대상 여부를 판단해주시길 요청한다”고 방통위에 전했다.
이 같은 KBS 요구에 대해 방통위 행정법무담당관은 30일 통화에서 “(아침에 공문이 와서) 공문을 지금 받아서 보고 있다. 공문 내용을 파악해야 한다. 아직 입장을 말씀드리긴 어렵다”며 “KBS의 주장을 면밀히 보고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방송통신규제심사위 일부 위원들 사이에서 회의 개최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이날 “수신료보다 훨씬 작은 범위의 법령을 바꿀 때에도 영향 분석을 한다. 애초에 수신료 규모를 상당히 축소할 수 있고 공영방송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중요한 결정을 졸속으로 처리하는 게 문제”라며 “규제심사위원회도 그렇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다 졸속이다. 수신료 분리징수 논의를 할 수 없다는 게 아니라 처리 절차가 완전히 반민주적이고 부당하다. 모든 과정에서 정부가 합리성을 주장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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