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세 한국 원자력 대부의 불꽃인생 강연
'KLO 대원 및 원자력 1세대 삶'
한국전쟁 당시 비정규 첩보조직인 켈로(KLO·Korea Liaison Office) 부대원으로 활동하고, 한국원자력연구소(현 한국원자력연구원) 창설 멤버로 들어가 한국형 원전 개발에 기여한 한국 원자력 1세대 원전 공학자이자 대부인 이창건 전 한국원자력문화진흥원장(94·원자력 박사·사진)이 강단으로 돌아왔다.
이 박사는 지난 28일 인천시 중구에 있는 인천해역방어사령부에서 대한민국 통일건국회 회원 200여 명에게 'KLO 대원 및 원자력 1세대의 삶'을 주제로 강연했다. 지난해 전립선암 초기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인 그는 다소 수척한 모습이었지만 "암은 내가 건강하고 자신 있으면 쫓겨갈 것이고, 비실비실하면 공산군처럼 쳐들어올 것"이라고 눙치며 여유를 잃지 않았다.
올해 첫 강단에 선 이 박사는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 지원, 북파 대원 철수 장비 개발 등 켈로 부대원들의 활약상을 전했다. 그는 "북파 대원들의 암호 전문을 기다리는 시간 동안 약 50권의 책을 읽었다"면서 "그것이 일생에 뼈와 살이 됐다"고 했다. 인도의 시성(詩聖)이자 아시아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1913년)인 타고르가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인을 위해 쓴 것으로 알려진 '동방의 등불(The Lamp of the East)'은 너무 감격스러워 북파 대원의 소식을 기다리는 동안 책을 번역했다고도 했다.
이 박사는 "후배들이 개발한 한국형 SMR(소형 표준화 원자로)은 세계 최초·최고"라면서 "아직 실증시험을 못해 무궁무진한 경제성이 빛을 보지 못하는 점이 안타깝다"고 했다.
1994년 말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퇴임한 이 박사는 5년 전 한국형 SMR에 냉동 기능을 부가한 특허를 한국, 일본, 유럽연합(EU),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에 냈다.
강연 사흘 전인 지난 25일, 이 박사는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6·25전쟁 73주년 행사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즉석에서 쓴 쪽지를 전달해 화제가 됐다. '저는 KLO 출신 李昌建입니다. KLO가 인정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며 지난 2月엔 보상금과 6·14日엔 청와대 오찬에도 초청받았습니다. 북한에 침투했다가 휴전 때문에 못 돌아온 동지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라고 적었다.
이 박사는 "내 옆에 앉은 사람 중에 한 장관이 정부를 대표하는 것 같았고, 우리 아들과 동갑이어서 갑자기 친밀감이 생겨 부담 없이 썼다"고 했다. 이 박사는 뭔가 아쉬운 듯 한 장관에게 추가로 글을 보내고 싶어 했다. 귀띔한 내용은 이렇다.
'북한에 침투했다 희생당한 KLO 동지들의 무덤은 산이고 들이고 바다이고 아무 데나입니다. 찬 바람 부는 비탈에 버려진 동지들의 시신을 까마귀, 독수리, 여우가 장사 지냈을까요. 그들의 비석은 바위이고 나무일 것이며, 별이 밝은 밤이면 하늘을 향해 우는 바람이 그 비문을 읽어주겠지요. 목숨을 부지한 나머지 대원들은 계절 따라 흰 장갑을 끼고 국립묘지 중앙탑 돌벽에 새겨진 동지들의 이름 밑에 국화 꽃송이를 놓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저들에게 체포되어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고문당했을 동지들을 생각합니다. 그 울부짖음이 가슴을 찢습니다. 동지여. 나를, 우리를 원망해도 좋습니다. 침 뱉어도 괜찮습니다. 나는 샤워할 때면 그 모든 물줄기가 나를 향해 뱉는 침, 삿대질, 돌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습니다. 제발, 제발 살아만 주시오. 동지들….'
[인천 지홍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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