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아이들과의 라포르(rapport)

2023. 6. 30.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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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조한 부모 질문 길어지고
아이는 몸 상태 표현 못 해
소아과 의사에게 필요한 건
눈길 한 번 더 줄 수 있는
충분히 여유로운 진료환경

흔히 소아과 진료실이라고 하면 공포에 질려 우는 아이와 아이를 붙잡고 진땀을 빼고 있는 엄마와 간호사, 그 난리통 속에서 아이를 달래가며 청진을 하고 있는 소아과 의사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대부분 어릴 적 소아과에 갔던 기억을 떠올리면 의사선생님이 목을 들여다보고, 가슴이나 배를 진찰해주신 다음 처방해주신 약을 받아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던 생각이 날 것이다. 한 번은 어머니께 '저는 어렸을 때 별로 안 아파서 병원 자주 안 갔지요?'라고 여쭈어보았을 때 어머니께서 무척이나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시며 "너하고 동생 병원 데리고 다니느라 정말 힘들었다. 거기다 네 누나와 형은 집에 놔두고"라고 말씀을 하셔서 깜짝 놀랐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엔 아플 때만 소아과에 가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나이에 맞게 잘 크고 있는지, 또래 수준으로 발달은 잘하고 있는지, 아이가 하는 요상한 행동을 그냥 지켜보다 보면 저절로 좋아질 것인지, 행여 미처 몰라 원칙에 어긋난 육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등 이렇듯 다양한 상담을 목적으로 소아과를 방문하는 경우가 점차 더 늘고 있다. 예전에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3대가 한집에 살면서 자연스럽게 아이 키우는 법을 배우고 익힐 기회가 있었지만 가족의 규모가 점점 작아지면서 육아책이나 인터넷에서 도움을 구하기도 했고, 최근에는 유튜브 등을 통해 육아 지식을 얻기도 한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소아과 의사를 따라올 육아 전문가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 같다. 근거 없는 육아 정보가 사방에 넘쳐나다 보니 올바른 정보를 선별하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영유아 검진도 시행 10년을 넘어서면서 수차례의 개편을 거쳐 점차 내실을 쌓아왔고 최근에는 신생아기까지 검진 시기가 확대되었다. 여기에 일차의료 심층상담 시범사업을 통해 부모님들에게는 영유아 검진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웠던 보다 심도 있는 육아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의사들도 상담에 대한 지원을 해주는 정부 정책에 호응해 육아 전문가로서 시시각각 업데이트되는 정보를 빠르게 습득할 자부심과 동기가 생긴 셈이다. 또한 취학 전 영유아 검진은 보건복지부에서, 청소년(학생) 검진은 교육부에서 관리하는 바람에 연계성이 부족했던 점도 통합을 거쳐 보완된다고 하니 여러 면에서 소아청소년을 위한 검진 시스템은 점차 개선이 되고 있다.

소아과 진료의 특성상 의사가 아이의 몸을 진찰하는 동시에 증상에 대한 정보는 주로 보호자를 통해서 수집해야 하기 때문에 어른에 비해 진료하는 데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상담도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 부모님도 부모가 처음이라 육아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고, 아이는 자기의 몸이나 생각에 대해 정확히 표현하지 못하니까 불안한 마음에 질문 리스트가 길어지기 마련이다. 이따금 사전 동의도 구하지 않고 녹음 앱부터 켜는 부모님들도 계신데, 당황스럽지만 궁금했던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을 그 심정도 이해가 가지 않는 바는 아니다. 의사와 환자 간의 신뢰를 라포르(rapport)라고 하는데 소아과 의사들은 의사 그림자만 봐도 질겁을 하는 아이들보다는 보호자들과 라포르를 쌓아야 하는데, 울어대는 아이 울음 소리를 뚫고 마스크로 가린 입에서 나는 서로의 목소리에 집중하며 급하게 질문과 답변을 하다 보면 상담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나 짧게 느껴진다. 앞으로는 소아과 의사들도 충분히 보호자들과 교감을 나누고 예쁜 아이들의 모습도 한 번 더 쳐다봐주면서 차분히 진찰을 하여도 얼마든지 서로가 만족스러운 상담이 이뤄질 수 있는 그런 진료 환경이 오기를 진심으로 기대해본다.

[정성관 우리아이들병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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