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관찰] 과도한 호황보다 적당한 불경기가 나은 이유
부채 무서운 줄 모르고 투자
시장 쏠림이 종국엔 파멸로
나는 강연에서 '적절한 불경기는 오히려 경제에 좋다'는 이야기를 가끔 한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불경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그게 오히려 좋다니? 강연을 듣는 분들의 표정을 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는 표정을 짓는 걸 볼 수 있다. 내가 그렇게 주장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장기 호황이 지속된다고 가정해보자. 쉽게 말하자면 자산의 가격이 계속 우상향하면서 사람들의 소비심리도 활황인 상태다. 이렇게 되면 가지고 있는 자산 덕분에 나는 날이 갈수록 부자가 되면서 더 여유로운 소비를 할 수 있는 건데 아마도 모두가 바라는 이상적인 상황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인간은 리스크에 대한 감각이 마비되게 된다. 자산 가격이 내려가지 않으면 자산 가격이 내려갈 일이 없게 된다고 생각하면서 더 많은 리스크를 짊어지게 된다. 당장 내년에 20%, 30%씩 확실히 오른다면 이 자산을 내 돈만으로 산다는 건 기회를 날리는 일이다. 더 많은 빚을 지고서라도 꼭 더 많이 사야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으니까 당연히 부채를 늘리고 더 많은 리스크를 부담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과도한 리스크를 지고 있을 때 시장이 하락하면 정말 극단적으로 추락할 수 있다. 시장의 쏠림 현상은 시장의 붕괴로 이어지기 쉬운 법이다. 금리가 오르고 인플레이션이 생길 일이 없는 것을 암묵적으로 가정했다가 작년 하반기부터 곤욕을 겪은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을 생각해보라. 몇 개월 전까지 미국의 지방은행들이 부도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 기반해 있다.
음주운전을 했을 때 단속에 걸리지 않았고 사고가 나지 않았다고 괜찮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당장은 별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이를 반복하기 쉽다. 인간은 그동안 벌어지지 않은 사건의 발생 가능성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이다. 리스크의 문제도 이와 같다. 당장 리스크를 부담했을 때 별문제가 없다면 갈수록 대담해지고 나중에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이상의 리스크를 지게 된다.
적절한 불경기가 오히려 좋다고 주장하는 게 바로 그 이유다. 적절한 불경기를 겪고 자산의 하락과 리스크의 존재를 체감하게 되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리스크를 짊어지는 일은 주저하게 된다. 그로 인해 발생할 거대한 충격과 붕괴를 예방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나심 탈레브가 블랙스완적인 거대한 사건을 대비하기 위해선 자잘한 발생 가능한 문제를 예방하는 데 힘을 쏟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한 것이 바로 그런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미국 경제학 저널에 재미있는 논문이 실렸다. 버블이 투자와 경제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것이다. 지난 2년간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버블이 발생하면 가계는 더욱 부유해지고 자산 축적을 늘린다. 문제는 이러한 버블을 경험한 사람들은 미래에 다시 버블이 생길 것으로 예상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미래의 버블에 올라타면 그때 큰돈을 벌게 될 것이란 걸 알기 때문에 오늘 저축하고 일하는 것보다 당장의 소비와 여가를 즐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는 게 연구자들의 주장이다.
현재 자산시장의 광풍은 조금 잦아들었지만 그 여파는 아직도 존재한다. 모두가 더 많은 소비와 더 화려한 소비에 눈을 돌리고 있으며 소비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한쪽에선 식비를 아끼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다른 쪽에선 온갖 오마카세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소비시장의 측면에서 단기적으론 좋지만 장기적으로는 좋다고 하기 어렵다. 사람들이 당장의 노동과 저축에 소홀해지는 것은 성장에 역효과를 일으키고 이는 소비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2010년 이후 이어진 우리나라 경제의 풍요로운 성장 덕분에 우리는 지금 전에 없던 소비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호황에 너무 젖어든 모습에 걱정도 된다. 아직 불경기도 오지 않은 상태기에.
[김영준 '골목의 전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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