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 대신 ‘더 많은 기회’ 열어준 미 소수 인종 우대 전형, ‘역차별’ 논란 속 역사 속으로

정원식 기자 2023. 6. 30.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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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연방대법원 앞에서 대법원의 소수인종 우대 입학 정책 위헌 판결에 항의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입학과 고용에서 소수 인종을 우대한다는 뜻의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은 1961년 당시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연방정부 계약업체는 인종·신념·피부색·출신 국가에 관계없이 직원을 고용하고 그들을 공정하게 대우하기 위해 적극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시작됐다. 후임자인 린든 존슨 대통령은 1965년 차별 금지 적용 대상을 연방정부 전체로 확대하는 내용의 새 행정명령을 내렸다.

흑인 민권 운동이 활발하던 1960년대 초 시작된 어퍼머티브 액션은 애초 흑인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줘야 한다는 취지에서 출발했으나 이후 미국 원주민과 히스패닉 등 다른 소수인종, 나아가 여성으로까지 대상이 확대됐다.

대학 입시에서의 어퍼머티브 액션은 인종적 요소를 고려함으로써 다양한 배경을 지닌 학생들에게 고등 교육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특히 1968년 흑인 민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된 사건이 어퍼머티브 액션 확산의 전환점이 됐다.

킹 목사의 암살 직후 하버드대는 대학이 실제 사회의 인종적 구성을 더 잘 반영해야 한다는 학생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흑인 학생 비중을 크게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1968년 신입생 1202명 중 51명이었던 흑인 학생은 이듬해인 1969년 90명으로 76% 늘어났다. 이후 예일대, 프린스턴대, 컬럼비아대 등 다른 명문대들에서도 흑인 학생 비중을 늘리기 시작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1965년 5% 미만이었던 흑인 학생 비중은 35년 후인 2001년 두배로 늘어났다.

그러나 소수 인종 우대 정책은 그동안 끊임없는 ‘역차별’ 논란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한 논란을 증폭시킨 가장 큰 오해는 이 제도가 합격 정원에 흑인과 히스패닉 할당량을 정해놓고 자격이 없는데도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만으로 합격시킨다는 것이다.

인종 쿼터제는 1978년 연방대법원이 위헌 판결을 내리면서 폐지된 지 오래다. 대법원은 당시 캘리포니아대학 데이비스 의대가 입학 정원 100명 중 16명을 소수 인종에 할당한 것은 수정헌법 14조와 1964년 시민권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또한 2003년 미시간대가 소수 인종 학생들에게 자동으로 20점의 가산점을 주도록 한 입학 전형에 대해서도 위헌 판결을 내렸다.

이때도 연방대법원은 “특정 인종에게 할당제를 부여하거나 무조건 가산점을 부여하는 등 인종이 당락의 결정적 요소로 작용하는 것은 위헌이지만, 여러 입학 전형 요소들과 함께 인종을 하나의 요소로 고려해서 우대하는 것은 합헌”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현재의 어퍼머티브 액션은 인종만을 기준으로 학생을 입학시키거나 거부할 수 있는 제도가 아니다. 인종은 입학 전형의 여러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예컨대 대학 정보사이트 칼리지클리프에 따르면 메릴랜드대는 선발 전형에 수학능력시험(SAT) 점수와 내신 학업 성적, 삶의 경험, 지역사회 참여 등 다양한 요소를 평가하며, 인종과 민족은 전체 26가지 평가 요소들 중 일부다.

하지만 성적이 우수한 백인이나 아시아계가 역차별을 받을 수 있다는 공격이 지속됨에 따라 지난 수십년간 이 제도를 도입한 대학의 숫자는 계속 감소 추세를 보여왔다. 2014년에는 어퍼머티브 액션을 금지하는 것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에 따라 2022년 기준으로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플로리다 등 9개주 공립대 입학 전형에서 어퍼머티브 액션을 금지했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1996년 소수인종 우대정책이 금지된 뒤 2년 만에 명문대인 버클리대와 UCLA에서 흑인과 히스패닉 학생들의 입학이 절반으로 줄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그리고 ‘보수 쏠림’ 구도인 미 연방 대법원이 이번에 위헌 판결을 내림으로써 60여년간 이어져 온 미국의 어퍼머티브 액션은 결국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게 됐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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