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결혼한거야, 말도 안 하고…근데 사실 우리 모르는 사이잖아[이진송의 아니 근데]
<대학일기>는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 연재되었던 웹툰으로, 대학생의 일상을 다룬 ‘일상툰’이다. 여느 일상툰처럼 주인공은 만화의 작가를 캐릭터로 조형한 ‘자까’이다. 2013년부터 누구나 자유롭게 만화를 올릴 수 있는 베스트 도전 만화(‘베도’)에 연재를 시작, 2016년부터 정식으로 연재되었다. 단순한 그림체로도 입체적으로 살려낸 표정이나 유머 감각, 재치 있는 대사가 강점인 <대학일기>는 인터넷 환경에 최적화된 ‘짤’을 대량 생산하기도 했다. <대학일기> 종료 이후 자까는 <수능일기> <독립일기> 등 후속작으로 일상툰의 계보를 이어가다 최근 <신혼일기>라는 신작을 시작했다. 독자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뒤집혔다’. 연재되었던 작품 어디에서도 연애나 결혼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상툰은 평범한 일상을 소재로 하는 만큼, 주인공의 주변인들이 자주 등장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까지 남자친구는커녕 썸남의 기미도 안 보이다가, 갑자기 결혼이요…? 그것도 ‘저 결혼합니다’가 아니라 이미 했다굽쇼? 이 만화를 추천해준 언니에게 곧장 <신혼일기>의 연재 소식을 알렸다. “진짜 충격적”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친한 친구의 결혼 소식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안 기분이라는 독자들의 비유가 웃긴다고 말했더니, 바로 그 느낌이라며 “이 정도밖에 안 됐어 우리 사이…? 나쁜 지지배”라고 말했다. 아니 근데… 언니… 언니도 자까에게 언니의 결혼 소식을 알리지 않았잖아?! 오늘은 일상툰으로 대표되는 일상의 예능화와, 그것이 구축한 새로운 시대의 ‘친밀감’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일상툰의 역사부터 짚고 넘어가자. 일상툰은 1990년대 후반 IMF 외환위기와 여러 사회문화적인 격변의 소용돌이에서 출판만화시장이 침체한 후 2000년대 초반, 작가들이 자신의 개인 공간에 일기를 만화로 그려 올리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장르이다. 일상툰에서는 작가를 반영한 캐릭터가 등장하며, 이는 작가는 물론 독자에게도 작가와 동일시된다. 만화의 소재는 모험이나 배신, 죽음, 성장 같은 극적인 요소나 거대 서사 대신 일상적인 세계에서 경험하는 이야기나 생각이다. 권윤주의 <스노우캣>, 심승현의 <파페포포 메모리즈>, 정철연의 <마린 블루스>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장르는 ‘다이어리툰’ ‘에세이툰’ ‘감성툰’ ‘생활툰’ 등으로도 불린다. 평범한 일상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가 인기를 얻으면서 단행본으로 출간되거나 캐릭터를 소재로 한 상품이 출시되었다. 이후 다음과 네이버가 웹툰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웹툰 생태계가 변화한다. 개인 홈페이지에 연재하다가 인기가 높아지면 포털 사이트로 옮겨가던 과정은 이제 처음부터 아마추어 작가들이 포털 사이트에 만화를 올려, 별점과 조회 수로 경쟁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일상툰의 대표작인 서나래의 <낢이 사는 이야기>는 작가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서 시작했지만, <대학일기>는 베도에서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러한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실제 작가의 삶을 그리는 일상툰
친밀함과 공감대 바탕으로 인기
서로 일면식도 없는 타인이지만
독자는 감정 공유하며 소통
시간 흐를수록 내적 친밀감 커져
위로·반가움·배신감·기쁨·실망…
독자들의 반응은 자연스럽지만
‘나’는 익명이자 집단일 뿐
적절한 거리두기는 꼭 필요하다
개인 공간에서 ‘일기를 만화로’ 그리는 것과, ‘베스트로 뽑혀야’ 하는 경쟁 공간에서 ‘만화로 일기를’ 그리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물론 전자 역시 ‘공개할 것을 염두에 두고’ 그렸지만, 홈페이지는 접근할 때 장벽이 있었다. 서사와 캐릭터의 중심은 자기 자신, 즉 개인이었다. 그러나 별점과 리뷰, 작품의 주간 랭킹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나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다른 기술과 감각을 요구한다. 기록을 넘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이나 캐릭터 조형이 필요하다. 삶의 어떤 것은 선별되고, 어떤 것은 탈락한다. 정보의 노출을 최소화하기 위한 가공이나 변형을 거친다.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작품은 선별된 콘텐츠이고, 자신의 일상을 소재로 삼는 만큼 창작자에게는 어떤 것을 드러내고 드러내지 않을지 선택할 권리가 있다. 다큐멘터리조차도 제작자의 의도와 편집이 개입하여 현실을 재구성한 ‘픽션’이다.
일상툰은 다큐멘터리와 리얼리티 예능의 특징을 모두 띤다고 할 수 있다. 예능화가 필연적으로 수반된다. 그런데도 기준은 엄격하다. 일상을 되도록 있는 그대로, 그러니까 ‘진정성 있게’ 그려내되 재미있어야 한다. 하지만 가공했다는 티가 나거나 민폐를 끼쳤다는 사실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일상툰 작가들은 종종 해명이나 사과문을 올린다. 공감을 사기 위해 적당히 부족하고 허술한 매력을 드러내야 하지만, 그것이 개념 없거나 독자에게 ‘진실하지 않으면’ 안 되는 아슬아슬한 경계. 어떨 때는 극적 재미를 위한 약간의 변형조차 ‘괘씸죄’와 ‘팩트 체크’의 그물에 걸릴 때가 있다. <낢이 사는 이야기>에서 낢은 엄마가 비 오는 날 반찬 덮는 덮개를 우산 대신 잘못 가지고 나갔다가, 펴고 나서야 알았다는 에피소드를 그린 적 있다. 반찬 덮개는 그렇게 팡 펴지지 않는다는 집요한 이의 제기 끝에, 낢은 엄마가 펴기 전에 알았다고 말했는데 뒤늦게 알았다고 해명한 적 있다. “우산인 줄 알고 가지고 나갔다”는 사실을 듣고 ‘팡 펴는 장면’을 그린 것은 거짓이자 기만이 아니라 창작물의 연출에 해당하는데 말이다.
일상툰의 가장 큰 매력이자 인기 요인은 바로 공감과 친밀함이다. 공감을 사려면 보편성을 확보해야 하고, 친밀함은 공감을 다리 삼아 작품을 그리는 ‘나’(혹은 ‘너’)와 작품을 읽는 ‘너’(혹은 ‘나’) 사이에 있는 물리적 거리나 개별적 차이를 뛰어넘게 한다. 보편성은 주로 익숙함에 호소한다. 그래서 인기를 끄는 많은 일상툰에서 주인공의 가족은 중요한 관계로 등장한다. 엄마는 주로 자식인 주인공과 대립각을 세우며 ‘등짝 스매시’를 날리는 인물로 등장하며, 여성 주인공에게 오빠가 있다면 이들은 ‘K남매’로 상징되는 관계성을 띤다. 아웅다웅하고, 서로 골탕 먹이지만 그래도 일상툰의 소재로 등장했을 때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정도로 관계가 좋다. 이 문법을 깬 것이 가족 내 폭력을 다룬 레진의 웹툰 <단지>인데, 일상툰이 ‘평범한 일상’을 다룬다고 했을 때 평범한 일상이라는 것이 어디에 치우쳐 있는 표현인지 함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일상툰의 주인공은 대부분 비장애인의, 대학을 다니거나/다녔고, 소위 정상가족 안에 있으며, 서울에 거주하는 이성애자이다. 완자 작가의 <모두에게 완자가>처럼 레즈비언 커플이나 나유진의 <일상날개짓>처럼 싱글맘의 육아기를 다룬 웹툰도 있지만, 소수이거나 인기를 끌기 어렵다. 일상을 전시한다는 것, 전시된 일상을 소비한다는 것은 곧 그만큼 안전하게 ‘길들여진’ 이야기에 국한된다는 의미이다. 욕먹을 만한 짓이나 소수자성, 정치적 성향처럼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 만한 소재 역시 작가의 일상이지만 채택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일상툰에서만 얻을 수 있는 위로와 안도는 묵직하다. 일상툰을 다룬 선행 연구의 분석처럼 오늘날의 일상툰은 ‘명랑만화’ 세계관과 흡사한데, 그곳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져도 그럭저럭 잘 수습되며 웃음으로 승화한다. 주인공이나 주변인에게 (대체로) 큰 비극은 일어나지 않고 일상은 주 단위로 소소하게 굴러간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는 시시콜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 같다. 때로는 나조차도 외면했던 못난 감정을 멋지게 혹은 불완전해서 더 찡하게 그려낸다. 인터넷 특성상 작가와 독자는 밀접하게 상호작용하고, 연재 동안 시간이 흐르면 작가와 독자의 상황이 함께 변한다. 이러한 감정의 공동체에서 느끼는 내적 친밀감은 그 자체로 온전한 진실이다. 케이툰에 <즐거우리 우리네 인생>을 연재하다가 작품이 사라졌던 작가 현이씨가 네이버 웹툰으로 돌아왔을 때 댓글에는 작가와 친구들의 근황을 그리워하고 반가워하는 내용이 가득했다. 그래서 대학 생활부터 함께했다고 믿었던 독자들이 자까의 결혼 소식에 놀라는 것도, <신혼일기> 1화의 베스트 댓글에서 많은 독자들이 장난스러운 배신감으로 툴툴대는 것도 자연스럽다. 자까 또한 독자들의 서운함을 고려한 듯, <대학일기>를 연재하던 당시에는 현재 남편과 헤어진 상태였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그럴수록 새로운 시대가 만들어낸 ‘일방적인 친밀감’을 다루는 법이 필요하다. 친밀함은 기본적으로 상호작용을 전제로 하며 물리적인 한계가 있는 감정이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친밀함의 비대칭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관계에서는 불특정 다수의 집단으로 존재하면서도 개별화된 감정을 느끼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따라서 ‘나의 친밀함’을 내 것으로 소중히 하면서도, 상대에게 ‘나’는 익명이자 집단에 불과하다는 낙차를 학습하는 경험이 중요하다. 요즘처럼 일상을 판매하고 전시하는 세계에서 이런 인식은 타인을 대하는 태도 전반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가족조차 모르는 내 안의 비밀의 숲처럼, 얼마나 친밀하든 얼마나 오래 봤든, 나만의 영역은 있는 법이니까.
참고논문 : 김예지, ‘일상툰의 대중화와 감정 재현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15.
이진송 계간 ‘홀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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