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고작 열흘 왕림…‘복켓팅’을 준비하라[주식(酒食)탐구생활⑳]
겨울에 나는 딸기, 봄에 맛보는 수박과 참외가 낯설지 않은 과학 영농의 시대. 이를 무색하게 하는 자존심 강하고 꼿꼿한 작물이 있다. 복숭아다. 여름의 시작을 알리며 모습을 드러냈다가 더위가 사그라들면서 함께 자취를 감춘다. 많이 쟁여둬도 소용없다. 오래 두고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조직이 워낙 부드러운 데다 금방 물러진다. 제철에 수확하고 나서 잠깐 동안 아니고서는 먹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여름 내내 같은 맛의 복숭아를 즐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복숭아는 여름철이라도 시기에 따라 접하는 모양과 색깔, 맛이 다 다르다. 하얗고 아삭한 맛을 자랑하는 ‘딱복’, 부드러운 노란색 과육에서 과즙이 뚝뚝 떨어지는 ‘황도’, 분홍빛 껍질을 벗겨 베어물면 입안에서 녹는 듯 퍼지는 달콤한 풍미의 ‘백도’. 저마다의 취향에 따라 좋아하는 복숭아도 제각각일 터. 분명하고도 냉정한 현실은 나를 황홀하게 했던 그 복숭아는 맛보고 난 뒤 2주만 지나도 마트나 시장에 가면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재배되는 복숭아의 품종은 200여종에 이른다. 6월 중순에 시작해 9월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나오는 시기가 다르다. 각각의 품종마다 수확해서 맛볼 수 있는 기간은 고작 1주, 길면 2주 정도다. 자칫 한눈팔다간 연간 한번 만날 수 있는 복숭아를 놓치고 해를 넘겨야 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좋아하는 풍미와 질감의 복숭아 취향을 갖고 있다면 품종의 이름은 무엇인지, 어느 시기에 나오는지를 기억해 두는 것이 좋다. 황도, 백도, 딱딱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최근 몇년 사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신비’나 ‘대극천’처럼 당신이 사랑하는 복숭아는 모두 저마다의 이름이 있다. (그래픽 자료: 도움말 농촌진흥청 권정현 박사)
우선 복숭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털이 있는 복숭아(peach)와 털이 없는 복숭아다. 후자는 우리가 흔히 아는 천도(nectarine)다.
천도 계열에는 6월 중하순이 절정기인 신비 복숭아가 포함된다. 엄밀히 말하면 ‘신비’는 품종 이름이 아니다. 공식 품종이 되려면 국립종자원에 등록되어야 하는데 농가에서 붙인 뒤 유통되면서 굳어진 이름이다. 천도 계열은 대체로 과육이 노란색이 많은 편이나 신비는 속이 하얗고 달콤한 천도복숭아다. 백도의 맛을 내는 천도복숭아쯤으로 보면 된다. 신비복숭아의 산도는 0.3~0.4로, 기존 천도복숭아(0.8 이상)의 3분의 1 수준이다. 이 때문에 단맛이 부각되면서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품종으로 자리잡았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올해 신비복숭아의 출하 물량은 전년보다 30% 증가했다.
신비에서 더 발전한 품종이 엘로드림, 스위트퀸이 있다. 단맛과 부드러움이 더해진, 황도 과육 같은 식감을 자랑한다. SSG닷컴 과일바이어 우민성 부장은 “옐로드림, 스위트퀸 등은 좀 더 차별화된 맛으로 인지도를 얻어가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충분한 물량이 공급되는 상황은 아니다”라면서 “이 때문에 신비는 일반 천도보다 30~50%, 옐로드림 등은 2배 정도 비싼 값에 유통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털이 있는 복숭아는 다시 백도와 황도로 나뉜다. 부드러운 백도는 복숭아계의 주류다. 품종도, 출하량도 가장 많다. 대표적인 품종은 천중도백도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천중도백도는 단일로는 국내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품종이었지만 최근에는 출하량이 좀 줄었다. ‘홍수출하’ 되면서 값이 떨어지다 보니 이 품종을 재배하다 다른 품종으로 바꾼 농가가 늘어났다. 백도 중에는 일명 ‘딱복’이라고 불리는 종류도 있다. 단단하고 아삭한 과육을 가진 달콤한 복숭아로, 경봉(오도로끼)과 유명이 대표적인 품종이다.
달콤하고 깊은 향, 부드러운 단맛을 가진 황도 중에서는 장호원황도, 혹은 앨버트로 불리는 품종이 가장 많이 생산된다. 품종 이름에 ‘장호원’이라는 지명이 붙어 있지만 장호원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더 많이 생산된다. 이 때문에 장호원황도라는 명칭 대신 앨버트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들어 입소문을 타면서 유행하기 시작한 것으로 ‘납작복숭아’도 빼놓을 수 없다. 유럽 등지에서 많이 접할 수 있는 복숭아인데 달콤하고 아삭한 과육으로 인기가 높다. 백도를 납작하게 눌러 놓은 모양인데 공식적인 이름은 반도(蟠桃)다. 시장에서는 ‘거반도’라는 이름으로 주로 유통된다. 농촌진흥청 과수과에서 복숭아 등 핵과류 품종 육성을 맡고 있는 권정현 박사는 “수요가 늘어나면서 반도계 재배를 시도하는 곳이 많아지고 있지만 여름철 비가 많이 내리는 환경에서는 재배가 힘든 품종”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납작복숭아로 통용되는 ‘대극천’도 있다. 살짝 납작한 형태인 이 품종은 반도가 아닌 단단한 백도에 속한다고 보면 된다. 품종이야 어쨌든 아삭하고 달콤하고 맛있어서 인기가 높다는 점은 변함없다.
복숭아는 수확 시기에 따라서 조생종(6월 중~7월 중), 중생종(7월 중~8월 중), 만생종(8월 중~9월 하)으로 나뉜다. 일찍 수확하는 조생종이 새콤한 맛 위주라면, 수확기가 뒤로 갈수록 복숭아의 크기는 커지고 당도도 높아진다. 대신 값은 수확기가 이른 조생종일수록 비싸다. 경쟁 과일의 종류도 많지 않고 출하 물량도 적어서다. 조생종 신비의 인기는 비슷한 시기에 나오는 다른 복숭아에 비해 맛의 경쟁력이 높다는 점이 주요한 이유인 셈이다. 신비로 시작한 한 해의 여름은 9월 중순부터 출하되는 장호원황도와 함께 마무리된다.
지난해 국내에서 가장 많이 생산된 10대 품종(도매시장 물량 중량 기준)은 다음과 같다. 경봉(오도로끼), 선프레, 천홍, 천중도백도, 유명, 그레이트점보아카츠키, 장호원황도, 마도카, 대월, 환타지아.
박경은 기자 k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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