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의 책과 지성] "뉴욕 자동차 속도는 100년전 마차 속도의 절반"
클라이브 폰팅
조선시대 부산포에서 서울로 과거 시험을 보러 오려면 최소 보름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한다.
테크놀로지에 힘입은 현대문명은 이 시간을 3시간으로 단축했다. 놀라운 발전이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나머지 14일21시간은 어디로 간 걸까. 우리는 그 시간을 소유했는가? 필자 생각에 우리는 더 많은 가짓수의 일을 하게 됐을 뿐 14일21시간이 우리의 행복에 쓰이진 않은 듯하다.
현대문명은 과연 우리를 진보시켰을까. 삶을 더 나아지게 했을까?
영국 웨일스의 스완지대학 정치학 교수이자 빅히스토리 전문가인 클라이브 폰팅 박사는 단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1907년 뉴욕의 평균 마차 주행속도는 시속 17.7㎞였다. 그러나 1980년 뉴욕의 평균 자동차 주행속도는 시속 9.6㎞로 오히려 느려졌다. 사람들은 테크놀로지가 인류를 편하게 만들었다고 맹신하지만, 뉴욕의 주행속도 추이에서 알 수 있듯 산업의 발전은 오히려 뉴욕 사람들의 이동을 느리게 만들었다. 더 나아가 폰팅 박사는 저서 '진보와 야만(Progress&Barbarism)'에서 눈부신 문명의 세기였다는 20세기를 '야만의 역사'였다고 판단한다.
우리는 보통 20세기를 평등과 민주주의가 정착된 시기였다고 믿는다. 정말 그랬을까. 슬프게도 몇 나라를 제외하고 20세기 대다수 국가의 가장 보편적인 통치 형태는 독재였다. 무력을 가진 집단이 돈을 가진 집단과 결탁해 권력을 독점하는 형태가 가장 일반적인 정치 구조였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20세기는 정치적 탄압과 학살의 시기이기도 했다. 폰팅 박사는 "중국 공산당은 20세기 동안 자국민 5000만명을 죽였고, 러시아는 1700만명을 죽였다"고 말한다.
국제사회는 지금도 많은 국가에서 반대자에 대한 구금과 협박, 독살이 벌어지고 있다고 증언한다.
또 하나. 우리는 20세기를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진 평등의 세기라고 말한다. 과연 그랬을까? 20세기 들어 거의 모든 나라에서 노예제나 인종차별은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하지만 곧 새로운 계급이 만들어졌고 그것은 새로운 귀족제로 세습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영국 통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버지가 고급공무원인 아이가 고급공무원이 될 확률은 그렇지 못한 아이들보다 73배나 높다. 부모가 전문직 종사자일 때 자식 중 40%가 전문직을 갖는 반면 부모가 육체노동자인 경우 단 7%만이 전문직 종사자가 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조손가정에서 자라는 청소년들이나 이주노동자의 자녀가 의사나 율사가 될 확률은 정보와 인맥을 독점한 상류층 자녀의 확률과 얼마나 차이가 날까? 아마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인류는 20세기 내내 도대체 무엇을 했는가? 현대판 카스트를 어떻게 할 것인가? 세상은 진보하지 않았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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