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억 분양 강남아파트 이대로면 '깡통 로또'
토지임대부 아파트 장단점 대해부
서울 강남 생활권에 분양가가 3억원대인 전용면적 59㎡ 아파트가 나왔다. 분명히 매력적인 가격이다. 한국부동산원과 KB국민은행 등 시세 정보에 따르면 비슷한 지역에 같은 크기가 8억~9억원대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분양한 강동구 고덕강일3단지 얘기다. 이 단지는 땅은 SH공사가 갖고 건물만 분양하는 토지임대부 주택이다. 이 단지는 지난 3월 진행한 1차 사전청약과 이달 공급한 2차 사전청약 모두 수십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흥행했다.
10년 만에 선보인 '반값 아파트' 실험이 성공할 수 있을까. SH공사가 최근 공들여 진행 중인 토지임대부 아파트 분양이 관심을 끌고 있다. 땅값이 빠져 분양 가격이 저렴해 반값 아파트로 불렸다. 실제로 10년 전에 나온 단지들 중 일부는 '로또'였다.
SH공사는 앞으로 공공분양 물량을 토지임대부 위주로 공급할 방침이다. 서울 서초구 성뒤마을, 강서구 마곡10-2블록과 마곡 택시차고지 등 입지가 좋은 곳이 상당수다. 하지만 토지임대부 주택이 우리나라에서 생소한 개념인 만큼 낯설어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현행 법체계 아래서는 단점이 있어 저렴한 가격에 현혹돼 함부로 접근했다가는 낭패를 볼 위험도 있다. 매일경제신문사가 토지임대부 분양 주택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 자세히 알아봤다.
3억원대 가격에 일반 아파트 못지않은 품질
고덕강일3단지가 흥행한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싼 가격이다. 전용 59㎡ 추정 분양 가격이 약 3억5500만원, 추정 토지 임대료가 약 40만원으로 공지됐다. 분양 가격만 놓고 보면 근처 집값의 반도 안되는 가격으로 추정 분양가가 나왔다. 이 단지가 화제를 모으는 이유는 가격뿐만이 아니다. 품질이 일반 고급 아파트 못지않다. 마감재로 수성 페인트 대신 롱 브릭 벽돌을 적용한다. 친환경 자재인 데다 디자인 측면에서 우수하다. 개방형 발코니와 옥상 정원도 들어선다. 실내에도 꽤 높은 가격의 자재를 쓴다. 표면에 유약 처리를 하지 않은 포셀린 타일이 대표적이다. 보통 아트 월(art wall)에 쓰이는 자재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이 정도 자재에 낮은 분양 가격을 생각하면 SH공사의 토지임대부 분양 주택은 수요자 입장에선 관심을 가질 만하다"고 말했다.
이 아파트의 경우 수분양자가 낮은 이자의 전용 모기지를 이용할 수도 있다. 분양가의 최대 80%까지 5억원 한도로 지원하는데, 40년 만기로 소득에 따라 1.9~3.0%의 고정금리로 지원된다.
토지임대부 분양 아파트의 또 다른 강점은 후분양이라는 사실이다. 고덕강일3단지의 경우 공정을 90% 완료한 시점인 2026년에 본청약을 진행한다. 당첨자가 준공 아파트를 확인하고 계약 여부를 결정할 수 있고, 포기해도 청약 제한 등 불이익이 없다.
영국·싱가포르에서 공급…우리나라는 이명박 정부 때 실험
토지임대부 분양은 국내에서는 낯선 방식이지만 해외에선 도입 사례가 여럿 있다. 시작은 20세기 초 영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뉴타운 운동'을 주창한 에베니저 하워드 등 시민들은 1903년 제1전원도시주식회사 소유의 땅을 '차지권(leasehold)' 계약을 통해 빌렸다. 땅값의 40~50%를 권리금으로 지급하고 매년 차지료를 내면서 99년간 쓸 수 있는 권리를 받은 것이다. 이 도시가 바로 세계 최초 정원도시(Garden City)로 기록된 레치워스(Letchworth)다. 2003년 레치워스의 차지 계약이 종료되자 주민들은 소유권 대신 999년간 유효한 차지권을 선택했다.
인구의 86%가 공공주택에 사는 싱가포르도 토지를 99년 이상 장기 임대해주고 집만 분양하는 방식을 많이 채택하고 있다. 전체 공공주택 중 토지임대부 분양 주택이 90%를 차지한다. 일본도 공급 실적이 많지는 않지만 여러 형태의 토지임대부 주택이 공급됐다. 50년 이상 땅을 임대하는 일반 정기 차지권 계약으로 분양된 단독·공동주택이 4만여 가구다.
우리나라에선 1970년에 지어진 용산구 중산시범아파트가 '1호 사례'다. 1970년대 초반에 일부 단지가 공급됐는데 이후로 유명무실하다 2000년대 후반 이명박 정부 때 부활했다. 이후 군포 부곡B2블록과 서울 LH서초5단지, 서초 LH브리즈힐 등 3개 단지가 공급됐다. 하지만 2010년대 초반에 닥친 부동산 불황으로 명맥이 끊겼다.
문제는 투자 가치, 시장서 되팔 수 없어
토지임대부 분양 주택은 분명히 여러 장점이 있다. 하지만 우려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과거와 달리 상당한 시세차익은커녕 남는 게 없는 '깡통 로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10년 전 이명박 정부의 토지임대부는 일반 아파트 못지않은 집값 상승률을 보였다. 5년 전매제한이 끝나면 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도 가능했다. 하지만 고덕강일3단지는 다르다. 현행 토지임대부 관련 법령에 따르면 전매할 수 없다. 시장에서 거래할 수 없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팔아야 한다.
문제는 LH의 환매 가격이 사실상 분양가 수준이라는 점이다. 분양가에 1년 만기 정기예금 이자율을 적용한 이자를 합친 금액 정도다. 집값이 아무리 올라도 고덕강일3단지를 팔아 손에 쥘 수 있는 차익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숨은 비용으로 토지 임대료 부담도 만만치 않다. 아파트에 딸린 대지 지분에 대해 임대료를 내야 한다. 택지를 만드는 데 들어간 조성원가에 은행 3년 만기 정기예금 이자율을 적용한 돈이다. 본청약 때 임대료가 정해지는데, 지금보다 금리가 올라가면 임대료가 뛰는 구조다. 금리 외 토지 임대료를 높일 다른 변수도 있다. 국토교통부가 토지 임대료 산정 기준을 조성원가에서 감정평가 금액 이하에서 자치단체가 정하는 것으로 개정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감정평가 금액은 일반적으로 시세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토지 임대료가 확 뛸 수 있다는 뜻이다. 결정적으로 토지임대부 주택이 공급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을 때 대책이 없다. 주택을 반환할 때 살고 있는 사람과 거주권을 놓고 민원이 발생할 위험이 있다. 재건축이 어렵다는 단점도 있다. 재건축하려면 토지 소유자(서울시)에게 땅을 사야 하는데 거주자 의견이 갈리기 때문이다.
관련 법 개정해야 하는데 불확실
결국 토지임대부 주택이 성공하려면 어느 정도 자산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과거 토지임대부처럼 시세 차익의 70%를 주는 이익 공유형 환매 가격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시와 SH공사도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관련 법 체계를 만드는 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국회에 토지임대부 제도를 손보려는 주택법 개정안이 3건 올라와 있다. 환매 기관을 현재 LH에서 SH공사 등 공공주택 사업자로 확대하고, 이름을 토지임대부 분양 주택에서 건물 분양 주택으로 바꾸는 내용이다.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은 10년 이하 범위에서 전매를 제한하고, 전매제한이 풀린 뒤에는 자유로운 거래를 허용하도록 돼 있다. 매달 내는 토지 임대료를 일정 기간을 두고 한 번에 내도록 해 일종의 할인 혜택을 볼 수 있는 '선납제도' 도입도 추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서둘러 토지임대부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렇지 않으면 예전처럼 주택 수요자만 혼란스럽게 하는 실험에 그치고 만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앙정부는 주택 공급 확대에 열을 올리면서도 토지임대부 분양과 관련해서는 서울시에 맡겨두고 뒷짐을 지고 있는 모양새다. 유선종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환매 가격, 토지 임대료 등 분양 조건이 3년 반 뒤 본청약 때 어떻게 확정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청약 대기자는 난감하다"며 "토지임대부 주택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제도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손동우 부동산·도시계획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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