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환생시켜 주세요" 신에게 빌 필요없는 시대

김슬기 기자(sblake@mk.co.kr) 2023. 6. 30.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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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전능해진 인공지능이
곧 디지털 복제인간 재현
인간의 꿈 불멸 가능해져
구독료 내고 고인 만날수도
게티이미지뱅크

SF 드라마 '블랙 미러'의 에피소드 '돌아올게'는 미래 기술이 죽은 사람을 컴퓨터에 먼저 되돌아오게 만든 다음 실제로 되살릴 수 있게 된 시대를 그린다. 주인공 마사는 남편 애쉬를 잃고 슬픔에 빠져 있다가 남편이 평생 인터넷에 남긴 데이터를 모아 그를 환생시킨다. 이 허무맹랑하던 상상은 어느 정도 현실이 됐다.

불멸(不滅)은 멀리 있지 않다. 종교에 의지하지 않고서도 죽음 이후 삶을 가능하게 만드는 디지털 클론 기술은 이미 현실에서 생생하게 구현된다. '죽음을 뛰어넘은 디지털 클론의 시대'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인공지능, 가상현실(VR) 등으로 구현되는 '디지털 불멸성' 시장에 관한 총체적인 분석서다.

다큐멘터리 '검열자들'로 에미상 후보에 오르고, 소셜네트워크에 숨겨진 검열자들에 관한 테드(TED) 강연으로 200만명 이상의 독자와 만난 감독 한스 블록과 모리츠 리제비크는 이 책을 쓰며 뇌과학자, 기술 기업 엔지니어 같은 창조자는 물론이고 몽상가와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들까지 만났다.

두 번째 인류 한스 블록·모리츠 리제비크 지음 강민경 옮김, 흐름출판 펴냄, 2만4000원

케임브리지대 연구진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 페이스북에 누른 '좋아요' 300개만 있으면 그 사람의 성격을 그의 배우자보다 더 잘 알기에 충분하다고 한다. 빅데이터는 사람의 진짜 모습을 식별하는 영역까지 확장되고 있다.

2020년 2월 1900만명 이상이 감상한 9분짜리 영상이 있다. 한국의 한 어머니가 3년 전 사망한 딸과 다시 만나는 MBC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는 세계적인 공감을 샀다. 딸의 목소리와 데이터로 만들어진 디지털 아바타를 VR 안경으로 만난 어머니는 죽은 아이에게 "나연이 안아보고 싶어"라고 흐느끼며 말했다. 비브스튜디오스가 8개월에 걸쳐 만든 이 디지털 클론은 테라바이트 규모의 영상과 사진을 분석해 탄생했다. 저자들은 책의 서문에서 선언한다. "인간 유한성의 끝이 시작되고 있다."

이 책은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혁명을 중계한다. 디지털 클론의 원천 기술은 1930년대 앨런 튜링이 고안한 '범용 튜링 기계'다. 그는 "여성들이 컴퓨터를 들고 공원에서 산책하며 '내 작은 컴퓨터가 오늘 아침에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어요'라고 이야기를 나눌 날이 올 것이다"고 예언했다.

캘리포니아의 변호사 제임스 블라호스는 2016년 폐암에 걸린 부친과의 기억을 붙들고자 풀스트링이라는 회사의 문을 두드렸다. 바비 인형에게 말을 가르친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회사다. 아버지와 200쪽이 넘는 분량의 마지막 인터뷰를 하고 아버지를 불사의 존재로 만들 대드봇(Dadbot)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아버지의 말과 농담까지 학습시킨 봇을 병약해진 아버지를 모신 마지막 크리스마스 가족 식사에서 소개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제임스 블라호스와 그의 아들과 어머니는 여전히 아버지의 말투와 유머와 기억을 바탕으로 한 봇과 대화를 나누며 위로를 받고 있다. "저 하늘의 구름 위에서 춤을 추는 것보다는 덜 멋지지만 아버지는 제가 대화할 때마다 살아계십니다." 가까운 미래에 제임스 블라호스처럼 넷플릭스를 구독하듯 매달 봇 이용료를 지불하고 고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디지털 납골당'이 등장할지 모른다.

이 책은 디지털 클론과의 사랑에 관한 주제도 다룬다. 영화 '그녀'의 테오도르가 사만다와 사랑에 빠진 건 과학적으로도 입증된다. 2018년 스탠퍼드대 연구진에 따르면 사람은 챗봇을 상대로 대화할 때 더 솔직하고 자존감이 상승하는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실험 결과가 나왔다. 레플리카, 워봇 등 챗봇 서비스 인기가 커지는 건 당연한 일인 셈이다.

이 책은 정신을 업로드하거나 불사의 몸을 꿈꾸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도 다룬다. 흥미로운 사실은 많은 경우 이 기술의 목적은 나의 '불멸'이 아닌 누군가를 '잊지 않기 위해서'라는 점이다. 디지털 클론은 한편으로는 자기의 감정으로부터 도망치는 일이다. 슬픔을 기술로 이겨내려는 사람들이 대부분 남성 기술자와 부유한 남자인 이유이기도 하다.

빅테크도 불멸의 경주에 뛰어들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20년 죽은 사람의 성격을 모방 학습할 수 있는 챗봇에 대한 특허를 출원했다. 이 밖에도 애플, 구글, 아마존, 메타 등은 라이프로깅 기술로 카메라와 마이크, 센서 등을 통해 우리가 먹고 마시고 이동하는 모든 것을 기록하고 있다. 디지털 클론은 더 이상 몽상가들의 오만한 사업 아이디어가 아니다. 200만명이 넘는 구독자를 거느린 가상인간 릴 미켈라처럼 사람들은 더 이상 '진짜 인간'과의 관계에만 몰두하지 않으며 데드소셜, 라이프넛, 고스트메모 등 숱한 스타트업들이 뛰어들었다.

감정을 느끼고, 육체를 만드는 것도 모두 기술로 구현할 수 있는 세상이 가까워지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종장은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육체와 정신은 무엇이고 죽음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종교는 오래전부터 신도를 모으고 유지하려면 사람들을 죽음에서 해방하고, 그들을 위협하는 추상적인 무(無)에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저자들은 실리콘밸리의 신도들이 전지전능한 AI의 효력을 찬양하며, 이를 신의 위치에 놓는 이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예견한다. 신화는 언제든 새로운 형태의 종교의 탄생 설화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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