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의해 ‘선택’ 당하고, 인간을 위해 ‘인내’ 배우는, 이런 ‘반려’는 너무 가혹해[우당탕탕 귤엔터]
유기견이 가족을 만났다는 해피엔딩 이후에도 잘 살아가는 이야기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우리는 최근 ‘귤엔터 애프터 서비스’라는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많은 귤멍멍이 입양 가족이 개가 밥을 잘 안 먹는다고 고민하기에, 밥 잘 먹는 습관을 들이는 법부터 시작했다.
잘 먹는 것은 건강이나 관리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반려견 트레이닝의 기초가 되기도 해서다. 앞으로는 평생 밥 잘 먹는 개가 되도록 하자며 모두와 의지를 다졌다. 모임은 미국의 가족들까지 참여할 수 있도록 한국시간 기준 밤 10시에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는데, 한국 가족들은 퇴근과 산책을 마친 뒤에, 그리고 지구 반대편 미국 가족들은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모임에 함께하는 열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참여한 귤가족들은 그동안 개와 살면서 이해할 수 없었던 개의 여러 가지 행동에 대해 질문하고 답하고는 했다. 사람에게는 별것 아닌 일상적 자극이나 사소한 몸동작과 습관이 개에게는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졌을지 등 동물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방법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떻게 하면 더 잘 살 수 있을지 고민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나누며 서로 자극과 위로를 받아가는 시간이었다.
사람 중심 시선으로 평가 받는 개
짖고 부수는 건 ‘문제행동’ 규정돼
손·앉아·기다려 등 ‘펫티켓’ 훈련
공존 위해서라지만 개에겐 힘든 일
전학 온 친구를 안내하는 마음으로
동물 입장 생각해 사회 적응 돕기
교육이 필요한 건 사람들이 아닐까
유기견 없는 세상 꿈꾸는 우리들
나아가 ‘반려동물 없는’ 날 기다려
첫 모임을 앞두고 우리는 무슨 이야기로 시작하면 좋을지 고심했다. 보통 반려견 교육 관련 자료에선 개의 문제행동을 분류하고 행동별 솔루션을 내리는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방식으로 접근하고 싶지 않았다. 개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으면 제대로 된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에서였다.
문제행동 교정 위주의 교육에는 개가 어떤 존재인지, 어떤 것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불충분하다. 우리는 모임이 문제행동 교정 꿀팁을 얻어가는 시간이 아니라, 대도시의 자극에 적응하며 살고 있는 개들을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우리는 ‘문제행동’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짖거나 물건을 파괴하는 등 소위 개의 문제행동이라고 일컬어지는 것 대부분은 개들이 주어진 환경에서 두려움이나 스트레스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그 방식이 사람에게 불편함을 줄 때 문제행동이라는 이름표가 붙여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우리에게 친숙한 개 말고, 돼지를 반려동물이라고 한번 상상해보자. 돼지가 보호자와 함께 아파트나 빌라에서 지내는데 층간소음에 놀라 사람이 느끼기에 불편한 행동을 한다면, 예를 들어 초인종 소리가 들릴 때마다 큰 울음소리를 낸다면, ‘돼지가 문제행동이 있다’고 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일까? 돼지는 주어진 상황에서 돼지다운 행동을 했을 뿐이다. 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개들은 인간에게 친숙한 동물이라는 이유로 당연히 알아서 인간 사회의 규칙을 지킬 것이라고 기대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쉽게 문제행동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생각해보면 반려견 교육이나 훈련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인간 중심적일 수밖에 없다. 교육 자체의 목적이 개가 인간 사회 속에서 살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개 훈련의 역사를 짚어 올라가보면 전쟁이나 경비, 사냥 등 인간 편의를 위해 개들을 활용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인간의 이익을 위해 개와 동물을 체계적으로 훈련할 필요가 생겨났던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개들만 있는 세상에서는 배변 훈련을 하거나 ‘펫티켓’을 배워야 할 이유도, ‘손’ ‘앉아’ ‘기다려’를 알아야 할 이유도 없다. 그런 교육을 하는 것은 오로지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일 뿐이다.
반려견 교육이란 인간의 선택과 필요로 인간 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개들에게 꼭 필요한 최소한의 안내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학교에 전학생이 왔다고 생각해보자. 교내에 음악실은 어디 있는지, 매점은 어디에 있는지 안내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 안내를 받지 못해 수업 시간이 되어도 복도를 헤매고 있는 전학생에게 문제행동을 한다고 할 수 없듯이 개에 대한 교육도 비슷한 관점에서 접근하면 좋겠다. 어떻게 하면 전학생이 잘 이해하고 편안하게 적응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안내자의 마음으로 반려견 교육에 관해 생각해보면 어떨까?
개들에게 인간 사회란 전학생에게 새로운 학교보다 더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세상일 것이다. 우리는 모임에 참여한 보호자들이 이후 전문가에게 반려견 교육을 받게 되더라도 어떤 계획과 목적의 교육이 진행되는지 판별할 수 있는 눈을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반려견 교육 방법에 대해 찾다 보면 어떤 훈련사는 개들이 서열 동물이기 때문에 음식으로는 훈련이 불가능하다 하고, 문제행동이 있을 때마다 밀치거나 옆구리를 찌르는 방식을 추천하기도 한다. 또 인터넷을 조금만 떠돌다 보면 반려견이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 적힌 팻말을 몸에 맨 채 벌 서고 있는 영상도 쉽게 볼 수 있다. 영상 속 팻말을 매고 있는 개는 정말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있는 것처럼 주눅 들어 보이기도 한다. 그 개는 자기 잘못을 정말 알고 있을까? 인터넷에 떠도는 다양한 교육 방법 중에 도대체 어떤 것이 맞는 걸까?
오랫동안 반려견 훈련에서 사람이 서열 우위를 획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믿음이 있었다. 최근에는 서열 이론이 잘못 설계된 늑대 연구에서 비롯된 오류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며 보호자가 리더십을 획득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대체되는 추세 같다. 우리는 조금 더 엄밀하게 이야기해보고 싶다. 과연 인간이 어떤 동물을 상대로 서열 관계나 리더십을 가질 필요가 있을까? 책임감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돌고래 쇼를 당연히 관람하던 시절을 지나, 돌고래가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점프를 하고 수족관에 갇혀 있는 것이 이상해 보이는 때가 되었다. 돌고래가 좁은 수족관에 잘 적응하게 하기 위해 사람이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이상한 발상이다. 좁은 수족관에 갇혀 정형행동을 하게 된 돌고래에게 문제행동이 있다고 하는 것 또한 이상한 말이다.
아직 많은 돌고래와 동물이 동물원에 갇혀 살고 있지만, 머지않아 동물을 가둬두고 관람하던 이상한 시대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동안 우리는 종종 유기견 없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라는 수식어를 듣곤 했다. 하지만 이제야 밝히지만, 우리의 꿈은 더 원대하다. 우리는 유기견 없는 세상이 아니라, 반려동물이 없는 세상을 꿈꾼다.
아주 오랜 시간 인간은 개와 함께했다. 하지만 그 이유로 인간이 개를 꼭 앞으로도 영원히 ‘반려’해야 하는 걸까? 동물은 반려동물이 되기를 선택할 수 없다. 오롯이 인간의 선택으로 어떤 동물들이 반려동물로 선택돼왔다. 반려의 선택권은 인간에게만 존재한다. 동물은 자신에게 주어진 인간 곁이라는 환경 안에서 그저 살아왔을 뿐이다.
반려동물이 없는 세상은 쉬이 오지 않겠지만, 인간의 필요와 수단으로써 반려동물로 선택당한 개들을 혼낸다는 일이 얼마나 기이한 일인지 이야기되는 날이 오길 고대하고 있다. 그리고 반려동물이 존재하는 날까지는 인간에 의해 버려지고 방치되고 고통받은 개들을 구조하여 최선을 다해 함께 반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이유로 반려하는 개가 인간 사회에 잘 적응하며 살 수 있도록 반려견을 교육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지 않을까. 그것이 개를 보호하고 책임감을 갖는 일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문제행동이라는 말은 반려견 말고도 여러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문제행동이 있다는 엄중한 판단은 어떤 이들이 사회의 일반적 규범을 따르지 않을 때 내려진다. 그들은 주로 어린이나 정신질환자, 성소수자 등이다. 이들은 주로 평가하기보다는 평가당하는 위치에 놓이는 존재들이란 공통점이 있다. 어른이나 교사, 부모나 직장 상사가 규범에서 어긋나는 이상행동을 한다고 해도 ‘문제행동이 있다’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개의 보호자가 잘못된 행동을 한다고 해도 문제행동이라 하지는 않지만 개에게는 쉽게 말한다. 많은 경우 문제행동이 있다는 말은 다른 존재에 대해서 수용하고 이해하고 싶지 않다는 편협한 선언과 다름없다. 사실 우리는 어디를 가든 무얼 하든 문제행동이 있는 사람으로 취급받아왔다. 말투나 옷차림, 행동거지, 개인적인 신념과 생각들까지 언제나 수정하길 권고받으며 살아왔다.
그럼에도 그를 따르지 않고 계속해서 문제 덩어리로 살아온 이유는, 사회의 일반적인 규범이 우리 기준에는 납득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혼 안 하고 큰 잡종개나 끌고 다니는 머리 짧은 여자가 뭐가 그리 대수란 말인가? 우리처럼 어딘가에서 문제적이라는 오명과 싸우고 있을 존재들에게 이 글을 통해 심심한 위로와 응원의 말을 보내고 싶다.
▶귤엔터 이사진 : 구낙현·김윤영·금배
MBTI가 ENFP인 사람, INTJ인 사람, 그리고 말이 없는 강아지 금배로 이루어진 팀이다. 매일 산책하는 금배와 더 행복하게 걷기 위해 최근 제주로 이주했다. 걷다가 만난 마당개와 들개의 새끼들을 길거리캐스팅하며 ‘제주탠져린즈’라는 반려견 연습생 그룹을 꾸렸다. 지금은 이들의 소속사 귤엔터로서 반려견으로 데뷔시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 강아지 금배와 걸으며 만난 제주의 자연과 개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한다.
귤엔터 이사진 : 구낙현·김윤영·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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