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 평생 이런 비 처음” 산은 무너지고, 다리는 끊어졌다

김현수·김창효 기자 2023. 6. 30.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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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주선 산사태로 14개월 아기 사망
단시간에 좁은지역 ‘물폭탄’에 피해 커져
30일 오전 4시40분쯤 경북 영주시 상망동 한 야산에서 빗물에 휩쓸린 토사가 주택가를 덮치면서 13개월 된 영아가 매몰돼 숨졌다. 사진은 산사태 피해를 본 주택. 영주시 제공

“평생 살면서 비가 이래 많이 오는 거는 처음이라, 처음.”

30일 오후 권남석 경북 영주시 상망동장은 영주에서 60년을 살면서 이번 같은 폭우는 처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권 동장은 2003년 대구·경북에 큰 피해를 준 태풍 매미가 내습한 당시에도 이 정도 폭우는 내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우리 동에만 수십채 집이 물에 잠겨 다들 경로당에 피신해 있다”며 “산사태로 이웃집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에 다들 초상집 분위기”라고 말했다.

상망동 한 야산에서는 이날 새벽 4시40분쯤 빗물에 휩쓸린 토사가 인근 주택을 덮치면서 14개월 된 영아가 매몰돼 숨졌다. 산 아래에 있는 이 주택은 산사태로 마치 폭격을 맞은 것처럼 지붕이 날아가고 벽이 허물어져 있었다.

영주소방서 관계자는 “빗물에 쓸려온 토사가 집 벽을 부수고 아기가 자고 있던 방으로 쏟아져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며 “굴착기 등을 동원해 2시간 만에 아이를 구조했지만 안타깝게 심정지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이 주택에는 숨진 아이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등 3대 일가족 10명이 살고 있었다. 성인 7명과 초등학생 2명 등 9명은 산사태 당시 자력으로 대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산사태로 15가구 주민 43명이 인근 경로당 등으로 대피하기도 했다.

30일 오전 4시40분쯤 경북 영주시 상망동 한 야산에서 빗물에 휩쓸린 토사가 주택가를 덮치면서 13개월 된 영아가 매몰돼 숨졌다. 사진은 산사태 피해를 본 주택. 영주시 제공

밤사이 집중호우가 내린 30일 전국 곳곳에서 주택이 침수되고 도로와 제방이 유실되는 등 크고 작은 피해가 잇따랐다. 최근 여름철 강수패턴이 짧은 시간에 좁은 지역에 쏟아지는 ‘물폭탄’으로 바뀌면서 피해도 커지고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전날인 29일 0시부터 이날 오후 5시까지 경북 영주는 누적 강수량 342.5㎜, 전남 신안 156㎜, 강원 춘천 140.9㎜, 충북 영동 120㎜, 전북 익산 108㎜, 충남 금산 105.1㎜를 기록했다.

전남과 경북 등지에서는 토사 유실, 사면붕괴·침수 우려 등으로 302가구 430명이 마을회관이나 친인척으로 한때 대피했다. 전남이 207가구 303명, 경북이 81가구 108명 등이다.

공공시설 피해는 오전 11시 기준 도로사면 유실 6건, 도로·교량 유실 6건, 하천제방 유실 2건, 상·하수도 관로 파손 10건 등이다. 사유시설 피해는 주택 매몰 1건, 주택 전파 1건(전북 1), 주택 침수 26건(경북 17, 전남 7, 전북 2), 상가 침수 4건(충남 1, 전북 3) 등으로 집계됐다.

시간당 20∼60㎜ 강한 비가 쏟아진 경북에서는 123건 비 피해가 접수됐다. 영주 시가지 도로는 밤사이 빗물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아파트단지와 주택가 등 골목길과 이면도로도 물바다가 됐다. 50대 주민 이모씨는 “온 동네가 물난리”라며 “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침수 피해 탓에 우리 아파트로 피난 온 집도 여럿 있다”고 말했다.

영주 봉현면에 있는 지방도와 마을을 잇는 다리는 집중호우로 불어난 하천물을 견디지 못하고 엿가락처럼 휘어져 부러졌다. 영주 아파트 건설 현장에도 토사가 밀려 들어와 안전펜스 옆에 주차된 차량 5대를 덮치는 사고도 발생했다.

봉화군 봉성면에서는 185가구가 장대비로 일순간 정전되기도 했다. 이 지역 4개 읍면에 주택과 도로 등 30여건 침수피해가 났고 법전면에서는 차량 5대가 빗물에 떠내려갔다. 선로 유실로 영주~동해 간 열차 운행도 중단됐다. 봉화군에서는 50가구에 54명이 침수나 산사태 등을 피해 일시 대피했다.

영주 봉현면에 있는 지방도와 마을을 잇는 하촌교가 30일 오전 집중호우로 불어난 하천물을 견디지 못하고 엿가락처럼 휘어져 부러져 있다. 영주시 제공

불과 며칠 전 하루동안 7월 한달치 강수량(274.6㎜)이 쏟아졌던 광주광역시에는 이날도 밤사이 폭우가 내렸다. 이에 동구 계림동의 한 아파트 단지 3개 동에서도 정전과 단수 피해가 발생했다. 펌프실 내부 설비에 누전이 발생하면서 전기 공급이 끊기고, 수돗물 공급도 중단된 것으로 추정된다.

동구 지산동 지산유원지 인근에서는 축대벽이 일부 무너져 주택과 식당으로 사용되는 건물의 계단과 난간이 파손됐다.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붕괴가 우려돼 일가족 4명이 친인척집으로 피신했다.

전남에서는 곡성군 고달면 한 주택의 벽체가 무너지면서 건물이 반파하는 피해가 났다. 사면 붕괴나 침수 우려 등으로 전남에서는 207가구 303명이 마을회관 등으로 대피했다.

전북지역에서도 폭우 탓에 주택과 논이 침수되는 피해가 잇따랐다. 익산에서는 전날 오후 1시27분쯤 영등동의 한 도로가 잠겼고, 오후 3시19분쯤에는 익산시 황등면 황등리의 한 창고가 침수됐다. 정읍·부안·남원에서는 주택 파손 1건과 침수 2건, 상가 침수 3건, 창고 파손 1건이 발생했고 부안 등에서는 농작물 2028ha가 물에 잠겼다.

충남에서는 지난 29일 오후 2시43분쯤 서산시 갈산동 지하차도에서 갑자기 불어난 물에 1t 화물차가 갇혀 운전자 A씨(54)와 동승자 B씨(55)가 고립됐다가 구조됐다.

수도권 대부분 지역에 호우주의보가 발령된 지난 29일 지난해 폭우로 침수 피해가 발생한 서울 동작구 남성사계시장에서 빗물받이로 세차게 빗물이 들어오고 있다. 조태형 기자

기상청은 7월1일 오전까지 사흘간 전남권·제주도는 100∼200㎜, 경남권은 50∼120㎜ 비가 내릴 것으로 예보했다.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김창효 선임기자 c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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