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이 수식처럼 증명이 되나요”
“대체복무 여부를 심사받는 과정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양심을 증명하는 일은 정말 어렵다’는 것입니다. 양심을 틀이 정해진 공식에 대입해 단일한 결괏값이 나와야만 그 양심을 인정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저는 이 사회에서 아예 존재할 수 없게 됩니다.”
나단씨(33)는 자신을 사회주의자라고 소개한다. 사회주의에 기반한 평화주의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다. 나씨는 2020년 10월 대체역심사위원회에 대체역 편입을 신청했지만 2021년 7월 기각됐다.
2020년 6월 30일 대체역 신청 접수가 시작된 이후 최근까지 약 3년 동안 ‘개인적 신념’에 따른 신청자는 31명이다. 나씨는 이 가운데 유일한 기각 사례다. 심사 당시 대체역심사위 내에서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고 논란은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나씨는 이후 법원에 기각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해 1심에 이어 지난 5월 항소심에서도 기각 판결을 받았다. 나씨는 대법원에 상고했다.
대체역심사위와 법원이 내린 기각 결정의 핵심 이유는 “나씨의 사회주의 신념은 모든 전쟁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며, 이 신념은 유동적이거나 가변적인 것으로 헌법에서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나씨는 이를 두고 ‘절대적인 물리적 비폭력’만을 대체역이 가능한 양심으로 한정했다며 “제도의 도입 취지를 무시했다”고 밝혔다. 나씨는 “양심의 내용을 판단한 것과 마찬가지”라며 위헌이라고도 말했다. 아울러 자신이 사회주의 신념을 추구하는 점이 기각 결정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봤다.
폭력의 정의는 맥락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폭력의 상대성’ 개념을 주장하며 ‘구조적 폭력’에 저항한다는 게 나씨의 신념이다. 그는 “심사 과정에서 나의 신념을 솔직하게 서술 및 진술했다”라며 “만약 사회주의자라는 점을 생략하고 절대적 비폭력주의를 주장했다면 인용 결정이 났을 것”이라고 했다.
헌법재판소의 판례를 보면 양심은 내용·대상·동기 등에 따라 판단할 수 없다. 특히 양심상의 결정이 이성적·합리적인지와 법질서·사회규범 등과 일치하는지 여부는 양심의 존재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 개인의 양심은 다수의 생각이나 가치관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나씨는 1심에서 기각 결정이 나온 뒤인 지난해 9월쯤 병역법 위반(병역기피) 혐의로 기소돼 형사 재판도 받고 있다. 향후 유죄가 나오면 수감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 6월 19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나씨를 만났다.
-본인이 추구하는 사회주의 신념이란 어떤 것인가.
“더 나은 민주주의라고 볼 수 있다. 자본주의는 형식적으로 민주주의를 띠고 있지만 또 다른 계급사회라고 본다. 생활하는 데 필요한 생산수단을 자본이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 살아가기 위해선 자본에 의존해야 한다. 사회가 움직이는 방향이 자본의 의견과 이익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 만연한 빈부 격차, 기후·생태 문제, 끊이지 않는 전쟁 등은 모두 자본의 이익에 따라 사회가 운영된 결과다. 사회주의는 그렇지 않다. 자본이 아닌 사회의 이익을 위해서 사회가 작동한다. 생산에 필요한 수단을 소수가 아니라 민주적으로 사회가 소유하는 데 기반을 둔다. 자본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의사결정이 민주적일 것이고 자유도 더 보장될 것이다.”
-사회주의 신념을 갖게 된 계기와 병역거부를 결정하게 된 과정은.
“10~20대에는 인권, 자유, 애국, 민족 등의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뛰었다. 대학에 들어가 학생운동을 했고, 2008년 촛불집회에 참여하면서 공권력의 폭력을 경험했다. 5·18광주민주화운동과 제주4·3사건 등 역사를 통해서도 이를 재확인하면서 국가폭력에 대한 거부감을 갖게 됐다. 2012년 병역거부자와 인터뷰한 것을 계기로 병역거부 운동을 알게 됐고, 평화주의를 더 자세히 공부하게 됐다. 이어 자본론을 학습하면서 국가폭력에 대한 막연한 반감이 구체적인 사상으로 발전했다. 즉 사회주의자로서 자본이 지배하는 국가의 폭력기구인 군대에서 복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병역거부의 기반이 되는 신념이 사회주의이긴 하지만, 병역거부와 사회주의의 발현이 딱딱 순서에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병역거부 생각을 가진 상태에서 사회주의를 접하면서 병역거부 신념이 점점 확고해졌다.”
-대체역심사위나 법원에서 양심의 진정성을 말과 글로 표현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어떤 사람도 양심을 입증하기 위해 살지는 않을 것이다. 양심을 온전히 전달한다는 게 상당히 힘들었다.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사람만 인용될 수 있는 구조라고 생각할 정도다. 특히 양심을 과거의 행적을 통해 증명해야 한다는 게 어려웠다. 양심은 그저 삶 속에서 행동으로만 드러나기 때문에 그간 마주친 사건이나 상황마다 얼핏 나타난 양심을 채집해야만 했다. 절대적인 종교의 교리 같은 게 있었다면 그 교리에 부합하는 행동을 했는지를 보면 될 것이다. 반면 나는 사회에서 여러 경험을 통해 양심이 형성됐다. 그 과정에서 양심에 대한 도전을 받기도, 확신을 갖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 쌓여 지금의 양심이 된 것이다. 대체역심사위는 그러나 과거 행적이 현재 나의 양심과 맞는지 이분법적으로 판단하려는 것 같다. 여러 행적의 결과로 지금의 양심이 형성됐다는 연속성을 이해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병역거부는 단순한 공식에 따라 도출된 결괏값이 아니다. 나라는 존재가 온존할 수 있게 하는 여러 생각과 행동의 수렴점이다.”
-대체역심사위나 법원의 기각 이유 중에 ‘사회주의 신념은 유동적이거나 가변적인 것으로, 대체역 편입신청의 이유가 되는 양심에 이르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모든 폭력에 반대하지 않는다’ 등의 내용이 있다.
“나의 폭력에 대한 태도가 유동적이고 가변적이기 때문에 양심 또한 그렇다고 결론 낸 것 같다. 나는 폭력의 상대성을 주장했다. 어떤 행위가 폭력인지 아닌지 여부는 상황과 맥락, 당사자의 위치 등에 따라 판단이 달라진다고 본다. 누가 상대방을 때렸다고 무조건 폭력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경우도 있다. 법에도 정당방위라는 개념이 있지 않은가. 또 상대를 때리지 않았다고 해서 무조건 비폭력인 것은 아니다. 차별과 억압이 만연한 사회구조를 두고 물리적 폭력이 없다고 해서 비폭력적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복합적인 구조를 봐야 한다. 경찰을 위협한 노동자의 행위가 구조에서 기인했다면 그것을 폭력으로 볼 수 없다. 경찰이 시위 중인 노동자를 때렸다면 경찰이 그런 행위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경찰에게도 폭력적인 것이라 볼 수 있다. 상황이 폭력적인 것이지 개인이 폭력적 행위를 했다, 안 했다 쉽게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대체역심사위와 법원이 병역거부의 절대 기준으로 물리적 비폭력만을 본다는 뜻인가.
“그렇다. 양심이 유동적이고 가변적이라고 규정하려면, 내가 상황에 따라서 사회주의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등 타협적·전략적으로 변해야 한다. 그러나 내 양심은 사회주의 신념이고 이를 기준으로 폭력 여부를 판단한다. 상황을 바라보는 기준에 따라 결괏값이 달라질 수 있지만, 결과를 도출하기까지 현상을 해석하는 인식의 틀은 사회주의로 고정적인 것이다. 결과가 유동적이라고 해서 양심이 유동적이라는 판단은 논리 오류다. 결국 폭력의 상대성이라는 양심의 내용을 심사·판단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본다. 이는 오히려 제도의 악용 가능성을 보여준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악용 가능성은 무슨 말인가.
“‘진정한 양심’이 아니더라도 비폭력으로 포장한다면 심사를 통과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심사 과정에서 끊임없이 받은 질문이 ‘그래서 폭력을 쓸 것인가, 안 쓸 것인가’였다. 나는 사회주의 신념을 기준으로 폭력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답하는 등 양심에 따라서 생각한 내용을 거짓 없이 솔직하게 밝혔다. 내가 제도를 악용하고 싶었다면, 폭력의 상대성을 주장하지 않고 ‘나는 비폭력주의자다. 누구도 안 때린다’라고 답변했을 것이다. 사회주의자라는 말도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인용됐을 수도 있다. 헌법이나 대체역법 등 어디서도 대체역에 복무할 수 있는 양심의 종류를 별도로 규정하지 않았다. 다양한 양심의 자유와 국방의 의무 사이의 조화를 위해 대체복무를 도입한 것 아닌가. 하지만 이번 심사와 재판은 물리적 비폭력주의만 대체역에 부합한다고 규정한 것과 다름없다. 양심의 종류를 협소하게 규정함으로써 제도의 도입 취지를 무시했다고 생각한다.”
-‘나씨가 군대가 국가폭력 기구라서 거부한다는 입장인데 교도소 또한 폭력기구이기 때문에 모순이다’는 기각 사유는 어떤가.
“국가나 권력기관이 행사하는 힘은 기본적으로 폭력적 성향이 있다. 꼭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어도 그렇다. 어떤 폭력을 어떤 방식으로 용인할 것인지는 대체로 사회적 합의에 의해 결정된다. 다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회적 합의 역시도 거시적이지만 분명히 자본의 이익을 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주의자인 나에게 자본주의 사회 자체가 폭력인 것이다. 그중에서 군대는 폭력의 최전선에 있다고 보기 때문에 병역을 거부하는 것이다. 내가 국가폭력으로 규정한 것 가운데 군대처럼 내 존재를 파괴할 만큼 강력한 것들을 거부하는 행위는 민주사회에서 나의 권리라고 생각한다. 임금노동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임금노동을 거부하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적어도 자본가나 건물주가 되지 않기로 다짐할 수는 있는 것 아닌가. 이 사회에서 군대 외에 다른 모든 폭력 또한 거부해야만 ‘진지한 양심’으로 인정한다면, 내 양심은 내가 존재하지 않을 때만 진지할 수 있다. 내가 교정시설을 적극적으로 선택한 것도 아니다. 군복무를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이 교정시설밖에 없는 게 현행 제도다. 아니면 감옥이다.”
-한국사회에서는 사회주의에 부정적인 시각이 많은 것 같은데, 이런 분위기도 기각 결정에 영향을 끼쳤다고 보나.
“그렇다. 사회주의자라서 기각됐다고 판단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모순을 드러내려는 사람에게 양심의 자유까지 허락한다면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우려가 반영된 것 같다. 왜냐면 나와 아주 비슷한 맥락의 얘기를 했지만, 자신을 사회주의자라고는 지칭하지 않은 다른 신청인은 인용된 사례가 있다. 꼭 ‘자본의 지배’라는 표현을 쓰지 않더라도 국가폭력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런 지적을 하고 비판하는 사람도 실제 많지 않은가. 그 신청인이 심사 과정에서 사례로 언급한 사건과 사상을 형성하게 된 배경 등의 내용은 나와 비슷했다. 나는 국가폭력에 반대하는 명확한 근거로 자본의 지배와 사회주의를 주장한다.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라는 표현을 대체역심사위에서 쓰는데, 사회주의는 헌법에서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라고 보지 않는 듯하다.”
-심사위원들에게 많은 질문을 받았을 것 같다.
“기각 의견을 낸 위원들이 주로 질문을 했다. e메일 진술서에 폭력의 상대성을 예를 들어 서술했다. ‘A가 B의 뺨을 때렸을 때 B가 이에 대항해 A의 뺨을 때린 것을 무조건 폭력이라고 부를 것인가’라는 내용을 썼다. 그러자 한 심사위원은 전원회의에서 이를 ‘뺨따귀론’이라고 이름 붙였다. ‘뺨따귀론’이라는 표현을 계속 쓰면서 비하하는 듯이 대했다. 그러면서 ‘뺨따귀론에 따르면 제주4·3사건의 경우도 무장봉기대가 먼저 공격을 했으니 경찰이 행한 건 폭력이 아니지 않느냐’라는 취지로 물었다. 이 질문은 일단 사실관계가 왜곡됐다.”
-또 다른 사례가 있나.
“나는 과거에 공군에 지원한 적이 있다. 당시 면접을 진행하던 공무원이 고성과 반말을 하면서 다시금 국가폭력을 확인했다고 진술했다. 그러자 심사위원 중 한 명이 ‘대체역 복무 과정에서 같은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했다. 나는 똑같이 대체역도 거부하겠다고 답했다. 이를 근거로 대체역 복무 의지가 빈약하다고 대체역심사위는 판단했다. 그런데 내가 ‘그래도 계속 대체복무 하겠다’고 말했다면 내 양심과 어긋나는 것 아닌가. 함정 같은 질문이다.”
-현행 ‘36개월, 합숙, 교정시설’ 복무형태는 어떻게 평가하는지.
“과하다고 본다. 가장 큰 문제는 교정시설로만 국한된 점이라고 생각한다. 또 합숙 형태로 36개월은 어지간해선 버티기 힘든 기간 아닌가. 나는 이미 병역 문제로 3년을 보냈다. 만약 대체복무를 하게 되면 또 3년이 지나간다. 대기 기간까지 고려하면 마흔에 가까운 나이가 된다. 그런데도 대체복무를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한때는 대체복무를 기다리는 시간이 아까워 병역법 위반으로 감옥에 가는 것도 고려한 적이 있다. 보통 징역 1년 6개월의 형을 받아 수감생활을 한다. 대체역이라는 제도가 있기 때문에 그럴 수는 없다.”
-앞으로 개선됐으면 하는 점은.
“대체역심사위가 단심제여서 상당히 아쉽다. 재심이 가능하면 좋겠다.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문제다. 대체역심사위와 법원이 진정한 양심이 아니라고 판단해 기각하면 형사처벌을 받아야 한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단지 법과 제도에 따라 처리되는 서류상의 존재로 대하지 말고, 심사 결과에 따라 인생의 경로가 바뀔 수 있는 하나의 인격체라는 사실을 부디 알아줬으면 한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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