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보장 위한 대체역심사위 ‘괴롭힘의 장’으로 변질”

2023. 6. 30.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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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은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헌법에서 보호하는 ‘양심’은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인격적인 존재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다. ‘도덕적이고 정당하다’는 개념이 아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대체역심사위원회에 대체복무를 신청할 때 제출하는 ‘편입신청서’/ 정희완 기자



양심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다. 따라서 공동체 구성원 다수의 사고나 가치관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양심에 따른 결정이 이성적·합리적인지, 법질서·사회규범·도덕률과 일치하는지’를 기준으로 양심의 존재를 판단할 수는 없다. 특정한 신념 등이 양심으로 형성되면, 그 내용이 무엇인지와 상관없이 헌법상 양심의 자유가 보장하는 양심이 될 수 있다. 사법부의 일관된 견해가 이렇다.

이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2018년 인정했다. 이에 따라 정부와 국회는 2020년 1월 대체역법 제정 등을 통해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했다. 그간 병역법 위반죄로 처벌받았던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36개월·교정시설(교도소 및 구치소)·합숙’ 형태로 군복무를 대신하게 됐다.

개인의 대체복무 여부를 심사·결정하는 기구가 바로 ‘대체역심사위원회’이다. 심사위는 제도 개선을 위한 연구·조사와 개선방안을 제안하는 역할도 한다. 제도 운용의 중요한 한 축을 이루는 것이다. 병무청 산하에 있으며 위원장을 비롯해 위원 29명으로 구성된다. 위원들은 국방부 장관이 여러 기관의 추천을 받아 위촉한다. 국가인권위원장, 법무부 장관, 국방부 장관, 병무청장, 대한변호사협회장이 각 5명을, 국회 국방위원회가 4명을 추천한다.

심사위는 2020년 6월 29일 정식 출범해 이제 3년을 맞는다. 그런데도 심사위를 대상으로 한 사회적 인식은 낮은 편이다. ‘양심을 어떻게 심사하지’라는 의문을 갖는 시각도 많다. 구체적인 심사 및 회의 내용이 베일에 가려진 탓이 크다. 올해 6월 28일로 1기 위원들의 임기 3년이 만료됐다. 개정 대체역법의 시행으로 2기부터는 위원이 13명으로 줄어든다.

주간경향은 심사위 출범 3년을 맞아 심사위의 구체적인 역할, 심사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과 개선점을 짚어보기로 했다. 심사위원 4명을 대상으로 집담회를 진행했다. 류은숙 ‘인권연구소 창’ 활동가(국방부 장관 추천),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무부 장관 추천), 김인숙 민들레법률사무소 변호사(대한변호사협회장 추천), 양여옥 ‘인권재단 사람’ 활동가(국가인권위원장 추천) 등이다. 이들은 지난 3년 동안 심사위 내부에서 제도 개선을 적극 주장해왔다.

심사위의 대체역 인용률은 99%에 달한다. 수치만 놓고 보면 심사위의 논의는 대체로 매끄럽고 큰 논란이 없는 것처럼 비친다. 이들 4명은 그러나 심사위 내부는 조용할 날이 없었을 정도로 치열했다고 입을 모았다.

심사위가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하지만, 심사 과정에서 인권침해적 언행이 빈번하게 나왔다고 지적했다. “심사위가 외려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면서 “질문을 빙자한 괴롭힘의 장”이 됐다는 것이다. 집담회는 지난 6월 23일 서울 서대문구 인권연구소 창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와 ‘소통’하는 자리

대체복무를 희망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대체역심사위원회에 편입신청서 등 관련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그러면 조사관(병무청에서 파견된 공무원)들이 현장·온라인 등을 통해 사실조사를 진행한다. 이후 소수의 심사위원이 사전심사를 개최한 뒤, 심사위원 모두가 참석하는 전원회의에서 기각·인용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 출석 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심사위원들은 신청인을 상대로 질의응답도 할 수 있다.

-심사위는 양심을 심사하는 곳인가. 어떻게 내면을 심사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또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는 데 설립 취지가 있나, 아니면 ‘병역기피자’를 색출하는 데 방점이 있나.

류은숙



류은숙 “개인의 양심은 고유한 것이다. 다만 개인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이들의 양심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게 대체역이다. 그래서 심사위원들은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양심은 심사할 수 없다’는 전제를 가지고 심사를 시작한다. 그렇다면 심사위는 왜 존재하느냐는 근원적인 질문을 할 수 있다. 심사라고 해서 점수를 매기는 게 아니다. 심사위원과 신청인이 대화를 통해 신청인에게 이 제도가 부합하는지, 대체복무 이행이 가능한지를 상호 확인하는 자리라고 본다. 또 신청인은 질문을 받으면서 자신의 양심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볼 수도 있는데, 이는 개인에게도 소중한 경험이 될 수 있다.”

오동석



오동석 “기본적으로 개인의 양심을 두고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는 없다. 대체역 심사는 헌법의 명령과 책무에 따라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공적인 차원에서 존중·확인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권위에 의한 인정이 아니라 그 자체를 수용한다는 의미다. 이를 수행하는 기구가 심사위다. 대체복무제도는 병역의무에 대해 국가가 신청인의 판단을 존중해서 양심의 자유를 지키면서도 사회에 복무하는 길을 마련한 것이다.”

양여옥



양여옥 “심사에는 3가지 ‘고려요소’가 있다. 양심 결정의 근거, 양심 결정의 실천, 대체복무의 이해와 의지 등이다. 우리는 이를 ‘기준’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심사에 필요한 하나의 나침반이다. ‘양심을 심사한다는 것 자체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고려요소를 참고해 신청인이 정말 병역거부를 진지하게 고민한 것인지, 대체복무를 잘할 수 있는지 등을 두고 대화를 하면서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김인숙



김인숙 “양심을 어떻게 심사할 수 있느냐는 지난 3년 내내 고민한 문제다. 처음 위원으로 위촉됐을 때도 ‘양심을 심사하는 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양심이라고 하면 조금의 흠이나 불법, 거짓이 없는 완전무결한 모습을 상정한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나 회의를 많이 갖기도 했다.”

심사위는 출범 약 4개월 뒤인 2020년 10월 19일 ‘인권보호헌장’을 제정했다. 헌장에 있는 다짐 가운데 첫 번째는 “우리는 인권존중의 가치를 따르며 인권보호의 책무를 이행한다”이다. 또 ‘인권보호 조사 준칙’도 마련했다. 이는 신청인의 삶을 조사하는 업무 특성상 인권침해 소지가 큰 점을 고려한 인권보호 장치다.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소통한다는 취지대로 심사가 진행됐다고 보나.

류은숙 “좋은 질문을 통해 심사했느냐는 부분은 낙제점을 줄 수밖에 없다. 지난 3년 동안 기각이 6건에 불과한데 뭐가 문제냐는 얘기를 심사위 안팎에서 한다. 하지만 그 밑에서는 엄청나게 치열한 토론이 이뤄졌다. 각자의 인생이 걸린 문제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렇다면 인용 결정을 받은 신청인에게는 순조로운 대화의 장이 마련됐을까? 아니다. 개인의 양심을 심사할 수 있다는 착각이 반영된 질문이 많이 나왔다. 신청인의 입장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말해보라는 순간이 많았고, 흠결을 꼬치꼬치 잡아냈다. 대체역 제도가 인권보장을 위해 마련됐다는 점을 망각하면서 심사위는 ‘괴롭힘의 장’이 됐다. 36개월 동안 교도소에서만 복무해야 하고 심사와 대기 기간도 길다. 대단한 각오를 하지 않으면 대체복무를 신청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심사 과정에서 가혹하게 몰아붙였다. ‘제도가 이런 데도 대체복무를 하겠냐’고 질문하는 것과, ‘병역을 기피하기 위해 제도를 이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점에서 나오는 질문은 다를 수밖에 없다.”

대체역심사위원회가 2020년 10월 19일 제정한 ‘인권보호헌장’ / 대체역심사위 홈페이지 갈무리



2020년 6월부터 2023년 5월 말까지 약 3년 동안 대체역 신청 건수는 모두 3078건이었다. 각하·철회·심사 중 등을 제외하면 인용은 2910건이다. 기각은 6건이다. 심사위에서 인용 결정을 받았지만, 복무가 가능한 교정시설이 부족해 대기 중인 이들이 1652명에 달한다.

오동석 “신청인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고, 왜 그런지 설명하는 과정은 필요하다. 그러나 신청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걸 심사위원들이 부정할 수는 없다. 기본적으로 양심은 이성적·합리적인지 여부 등 내용을 두고 따질 수 없기 때문이다. 심사위는 그런데 논리적 모순이 발생하거나 진술이 일치하지 않는 등의 흐름이 생기면, 이를 문제 삼아 양심 자체를 뒤엎어 버리려 했다. 양심에 따른 판단을 존중하는 게 아니라 의심하는 태도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이는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심사위원이 신청인의 세계관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소통이 이뤄지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질문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과정에서 소통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면 심사위원 입장에서는 인권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교도소를 갈지언정 군대는 못 가겠다’는 점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이 제도의 속성상 그래야 한다. 일부 심사위원은 ‘심사’라는 말에 갇혀 꼭 탈락자가 있어야 한다거나, 기피자를 색출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듯했다.”



-조금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김인숙 “신청인에게 ‘다른 사람들이 다 죽고 당신만 남았다. 당신이 총을 들지 않으면 모두 죽는데, 그래도 거부할 것이냐’ 같은 극단적인 질문을 하는 심사위원들이 있었다. 불리한 진술은 안 해도 된다고 고지해 놓고, 답을 안 하면 신청인에게 불리하게 판단할 것이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었다. 병역기피자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중고등학교 질풍노도의 시절을 거치면서 방황하고 부딪히는 경험은 누구나 한다. 그런데 ‘학창 시절에 왜 친구들과 싸웠냐’ 등 비난하는 식의 질문을 하는 걸 보면서 답답했다. ‘신청인의 권리’보다 ‘심사위원의 권한’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 이런 언행이 나오는 것 같다. 이렇게 하지 말자고 지난 3년 내내 싸웠다.”

류은숙 “기독교인 신청인이 있으면 ‘기독교가 왜 병역거부를?’이라는 인식이 있다. 다른 방식의 종교적 편향이다. 성소수자, 생태주의자, 비건 등의 주장을 듣고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그럴 역량도 없어 보였다. 그래서 극단적 상황을 제시해 사람을 당황스럽게 만드는 질문을 하기도 했다. 군대가 폭력의 도구라는 문제의식을 가진 신청인에게 ‘군대가 악하고 나쁜 곳이냐, 그럼 군대에 가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냐’라고 묻는 식이다.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신청인의 신념을 비하하는 표현이 빈번하게 나왔고, 국제인권규약의 중요성을 모르겠다는 발언도 지속됐다.”

양여옥 “범죄경력이 있는 신청인에게 자신의 양심과 배치되는 행동이었는지 확인하고 성찰 과정에 대해 질문하는 건 심사를 위해 할 수 있다. 예비군 거부자가 군복무 경험을 통해 자신의 병역거부 신념을 확인하듯이, 양심을 형성하고 다지는 계기는 다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확정판결을 받고 잘못의 대가를 치렀는데도, 심사위에서 다시 피고인 재판하듯이 당시 사건을 구체적으로 캐물을 때가 많았다. 신청인이 반성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과거 사건이 또다시 벌어지리라는 추측을 이유로 기각을 주장하는 사례도 있었다.”

대체역심사위원회 위원 4명이 지난 6월 23일 서울 서대문구 인권연구소 창 사무실에서 집담회를 하고 있다. 이들은 6월 28일 임기 3년이 만료된다. 왼쪽부터 김인숙 민들레법률사무소 변호사, 류은숙 ‘인권연구소 창’ 활동가,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양여옥 ‘인권재단 사람’ 활동가 / 김창길 기자



조사보고서에 여전히 ‘병역기피’라고 표현

-조사관의 사실조사 과정은 어떤가.

양여옥 “심사위 1년차 때 조사관이 신청인의 신념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거나 편견을 드러내는 식의 인권침해가 발생했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 심사에 불필요한 질문이나 조사관의 주관적 생각이 포함된 질문에 대해서는 사전심사 때마다 지적했고 대체로 수정됐다. 예를 들어 체육 시간에 요가수업에 참여한 걸 두고 종교적 갈등이 없었는지 묻는다거나, 축구를 잘한다는 신청인에게 몸싸움하는 것은 폭력이 아닌지 묻는 사례가 그랬다.”

류은숙 “폭력적인 컴퓨터 게임 여부는 병역거부 신념과 직접적 관련이 없기 때문에 신청인이 먼저 얘기를 꺼내기 전에는 문제 삼지 않기로 전체회의에서 합의한 적이 있다. 하지만 장로에게 고백해서 게임 습관을 버렸다고 진술한 신청인이 있었는데, 조사관이 장로한테 접촉해 실제 그런 고백을 했는지 물어본 사례가 있었다. 가톨릭 신자가 신부에게 고해성사한 내용을 과연 물어볼 수 있을까. 국가권력이 이런 것까지 물어볼 권한은 없다고 본다. 몇 번 지적했는데, 이런 일은 최근에도 벌어졌다. 또 신청인의 아버지가 병역거부로 수감생활을 했다는 내용을 ‘병역기피로 수감’이라고 표현하는 일도 자주 벌어졌다. 조사관의 시각이 드러난 것이다.”

신청인이 제출해야 할 필수서류는 주변인(가족·친구 등)의 진술서, 중고등학교 생활기록부, 신도증명서 등이 있다. 초기에는 부모진술서와 가족관계증명서, 초등학교 생활기록부도 반드시 내야 했으나 이들 서류는 지난해 2월부터 제외됐다. 심사위가 이런 내용을 병무청에 제안했고, 국방부가 대체역법 시행규칙을 개정한 결과다. 또 심사위는 ‘종교적 신념’과 ‘개인적 신념’을 구분해 심사한다. 신념을 종교와 개인으로 나눌 근거가 없고, 구분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심사위 내부에서 제기됐다.

김인숙 “신도증명서를 빼자고 초기부터 주장했다. 특정 종파가 아닌 다른 교단에선 신도증명서를 발급받기가 어렵다. 이 때문에 이것은 마치 특정 종교를 대상으로 이 제도를 운용하는 것처럼 오인하게 할 수 있다. 또 신도증명서 없으면 제대로 양심이 형성되지 않은 것처럼 일단 의심하고 들어간다. 신도증명서를 발급한 교단에서 징계를 받았다고 하면 자연스럽게 ‘문제 있다’는 인식이 도출되기도 한다. 군대 문제와 무관한 사안으로 인해서 받은 징계인데도 말이다.”

양여옥“지난해 2월 대체역법 시행규칙 개정 전, 심사위 내부에선 신도증명서도 필수서류에서 제외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그런데 병무청과 국방부에서 개인적 신념과 종교적 신념은 구분되므로 신도증명서를 없앨 수 없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대체역법에 따라 독립적으로 운영돼야 하는 심사위의 결정 사항을 병무청이 거부한 건 심사위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고 본다.”

-개인적 신념에 따른 대체역 편입 신청 건수가 총 31건이다. 각하·철회 등을 제외하면 인용 14건, 기각은 단 1건이다. 유일하게 기각된 신청인을 심사할 당시의 상황은 어땠나.

류은숙 “심사 과정에서 아주 문제적인 내용의 질문이 나왔다. 신청인뿐 아니라 함께 자리한 심사위원들도 큰 상처를 받았다. 신청인이 국가폭력의 상처로 제주4·3사건, 베트남 및 이라크 파병, 세월호 참사 등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이를 신청인의 양심으로 인정하지 못하고 반박하는 질문을 했다. 오랜 세월 진상규명과 국가의 책임을 확인하기 위해 노력해온 사건들마저 공적인 자리에서 무시되는 모습이 충격적이었다. 심사 종료 후 위원들이 회의장 밖 복도에서 신청인의 답변 태도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도 들었다. 신청인이 가진 신념을 심사위원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두고 신청인이 심사위원들에게 되물었는데, 이 모습을 안 좋게 본 것 같다.”

양여옥 “특정 종교가 아닌 다른 신념에 따른 신청인의 경우 심사위원들이 그의 신념을 잘 이해하지 못해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사례가 많다. 당시도 마찬가지였다. 기각 결정 이후 심사위원들의 인권침해적 질문은 어떻게 해야 할지 논의가 촉발됐다. 심사위원들이 했던 그간의 질문을 모아 어떤 질문을 지양해야 하는지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워크숍을 통해 <심사위원용 가이드북>을 만들었다. 또 동물권(비거니즘) 등의 신념을 중시하는 신청인이 등장하면서 다양한 양심을 이해하기 위한 공부가 필요했다. 신청인의 양심과 관련된 주제로 특강을 여러 번 개최했다. 지난해 말 마지막 특강은 그러나 ‘국방인력 정책과제’가 주제가 됐다. 병력자원 확보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내용이라서 일부 위원들이 대체역제도와 관련 없다며 항의하기도 했다.”



병무청 산하 아닌 독립 기구가 돼야

-심사위는 병무청 산하에 있다. 제도 설계 초기부터 병역을 담당하지 않은 곳에 설치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위원장과 사무국장은 상임위원으로서 국방부 장관이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런 구조는 어떻게 평가하나.

류은숙 “심사위는 합의를 통해 기각 결정문에는 기각과 인용(소수) 의견을 모두 기재키로 결정했고, 그렇게 해왔다. 그런데 최근 기각 결정 건에 대한 결정문 초안에는 소수의견이 빠져 있었다. 소수의견을 알려줘야 신청인이 행정심판·행정소송 등을 제기할 때 방어권을 보장할 수 있지 않나. 지난 3년 동안 심사위 내부에서 논쟁을 거쳐 합의한 내용이 한순간에 뒤집힐 위기에 놓이는 것을 보며, 위원장과 상임위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김인숙 “위원장과 사무국장은 기본적으로 대체복무제도에 대한 이해를 가진 사람이 와야 한다. 제도에 대한 고민이 없거나, 대체복무를 병역기피로 바라보는 인물이 위원장이 돼선 안 된다.”

오동석 “병무청 산하에 있다 보니 심사위가 문제를 제기해도 병무청이나 국방부에서 덮어버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독립 기구였다면 자체적으로 국민, 국회, 정부기관 등을 상대로 발표를 하거나 제안할 수 있었을 것이다. 대체복무 신청 접수, 배치 업무, 복무형태 결정, 복무 점검 등을 통할하는 별도의 기구 설치가 필요하다.”

-앞으로 과제와 개선 방향은.

양여옥 “6월 말부터 2기 심사위가 시작되면 위원이 29명에서 13명으로 축소된다. 국방부와 병무청이 추천하는 위원이 40% 가까이 차지하는 구조가 된다. 국방력과 징집의 관점에서 대체역 심사를 하다 보면 지금보다 더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질문이 많아질 우려가 있다. 또 신청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절차가 유지되지 못하고 후퇴할까 걱정이 된다. 직접적 이해관계자라고 할 수 있는 국방부와 병무청이 추천하는 위원 숫자를 줄이거나 없애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류은숙 “제도는 한 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맥락과 상황에 따라 계속 점검하고 수정해야 한다. 그런데 심사위의 논의가 폐쇄적으로 이뤄져 시민이 그 과정을 알 수가 없다. 심사와 회의 내용을 어느 정도 공개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또 심사위 출범 초기에는 심사위원과 직원들이 합심해 ‘인권기구’를 만들어 간다는 의식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흐릿해졌다. 위원장이 2번 바뀌면서 공백이 컸다. 소수자를 위한다는 기관에서 벌어지는 일은 보통 시민의 인권과도 무관하지 않다. 여성, 노인, 장애인 등의 인권과 다 관련돼 있다. 대체복무라는 제도를 통해 보편적 인권이 연결되고 같이 작동케 할 수 있도록 관련 계획을 세워야 한다.”

오동석 “기각된 신청인이 택할 수 있는 건 두 가지다. 양심대로 병역법 위반 혐의로 수감되는 것과 억지로 군대에 가는 것이다. 수감을 선택했다는 건 그 자체로 자신의 양심을 입증한 것이기 때문에 일정 기간 수감 이후에는 대체복무를 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전과도 말소해야 한다. 억지로 군대에 갔더라도 양심상의 이유로 군 생활을 못 하겠다는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그러면 달라진 상황을 반영해 심사위의 재심을 받게 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정부와 국회는 제도만 생기면 끝인 줄 안다. 제대로 작동하는지 점검을 안 한다. 대체복무제도를 선택하기 어려운, 하나의 시험대처럼 만들어 놓아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역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국가는 인권보장을 위해 시민을 끊임없이 설득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반대 여론에 휘둘려 부화뇌동하고, 정치적 이념에 따라 흥정의 대상으로 여긴다. 헌법이 보장하는 인권의 가치를 함부로 부정하는 행태다. 이런 현상은 한국사회의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국회, 행정부, 사법부 등 사회 전체가 특히 헌법을 지킨다는 게 무엇인지, 인권이 무엇인지를 다시 고민하고, 나아가 명확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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