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발전=진보’?···투쟁 뒤에 진정한 진보가 온다[책과 삶]
기계 발명의 노동 착취
IT 기술의 시민 감시···
진보의 이름으로 생겨난 고통에
눈감지 않는 사회가 중요
·
노동자 반발 뒤 도입된 최저임금제도
‘투쟁 뒤 진정한 진보’ 주장
맹목적 낙관론에 반대하지만
미래 향한 ‘낙관적 자세’ 강조
권력과 진보
대런 아세모글루·사이먼 존슨 지음 | 김승진 옮김 | 생각의힘 | 736쪽 | 3만7800원
당신의 삶은 풍요롭다. 물론 상대적으로 그렇다. 당신 부모 세대와 비교하면 높은 확률로 그럴 것이고, 부모의 부모 또는 부모의 부모의 부모 세대와 비교하면 확실히 그럴 것이다. 현대 국가의 빈곤층은 100년 전 중산층보다 잘 먹고, 당시 지배 계급보다 훨씬 오래 산다.
이것은 모두 과학기술이 진보한 덕분이다.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간 과학기술은 번영의 씨앗이 되어 풍요를 꽃피웠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기술 발전=진보’라는 등식에 열광한다. 무인 자동차가 생기면, 생성 인공지능(AI) 기술의 일종인 챗GPT가 대중화하면, 공장의 자동화가 이뤄지면 인류 모두가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믿는다.
정말 그럴까. 여기 이 등식에 반기를 든 두 학자가 있다. 세계적인 경제학자 대런 아세모글루 미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교수와 사인먼 존슨 MIT 슬론 경영대학원 교수다.
국가 성장과 관련한 역사적 사례를 분석한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2012)로 잘 알려진 아세모글루는 지난 25년간 번영과 빈곤의 역사적 기원, 그리고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경제 성장과 고용,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왔다. 그런 그가 그간의 연구 내용을 총망라해 <권력과 진보>를 내놨다.
<권력과 진보>의 기본 전제는 인류가 이제까지 경험한 ‘공유된 번영’이 기술 진보 자체에 내재된 요인에 의해 자동적으로 보장된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공유된 번영은 기술 진보의 방향과 사회적으로 이득을 분배하는 방식이 협소한 이익에만 복무했던 제도적 배열에서 멀어졌을 때, 오로지 그랬을 때만 생겨날 수 있었다”고 두 저자는 말한다.
아세모글루와 존슨은 위와 같은 전제를 설득하기 위해 지난 1000년의 역사를 꼼꼼하게 훑는다. 중세 유럽에서 윤작 기법 발달로 식량 생산이 증가했지만 과실은 봉건귀족들의 몫이었다. 산업혁명기 기계의 발명은 공장의 생산량을 대폭 늘려주었지만 노동자들은 착취만 당했다. 기술의 발달은 이 착취가 국경을 넘어서까지 이뤄지게 했다. 아시아, 아프리카 대륙의 많은 나라들은 유럽의 식민지가 되어 천연자원을 싼값에 공급했다. 2020년대에도 이 구조에는 변함이 없다. AI를 비롯한 정보기술(IT)은 시민사회를 감시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두 저자는 근대 과학기술이 태동하던 250년 전과 4차 산업혁명과 함께 IT가 세상을 지배하는 지금 유사한 담론이 공유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우리는 제러미 벤담, 애덤 스미스, 에드먼드 버크의 시대보다 테크놀로지에 대해 더 엘리트주의적이고 더 맹목적으로 낙관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듯하다.”
풍부한 사례를 통해 기술 발전이 곧 진보라는 통념을 차근차근 반박한 두 저자는 시민과 노동자의 쟁투가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진보가 이뤄진다고 말한다. 그리고 기술 향상의 이득이 더 평등하게 공유되는 방식을 강제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산업혁명 당시 열악한 노동 여건을 견디다 못한 영국의 노동자들이 결집해 테크놀로지 기득권에 맞서자 정부의 비전이 다시 설정됐다. 그제서야 모두에게 이득이 분배되는 방향으로 담론이 만들어졌다. 20세기 초 미국 포드컴퍼니의 헨리 포드는 공장에 대량생산 기법이 도입되면서 노동자 이탈이 잦아지자 최저임금 제도를 도입하고 새 기술에 대한 노동자 교육 훈련을 실시했다.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길항권력을 가지고 정치·사회·경제 권력이 기술 발전의 방향을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730여쪽에 달하는 이 책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가 ‘선택’인 이유다.
두 저자는 마지막 장 ‘테크놀로지의 경로를 다시 잡기’를 통해 더욱 구체적인 해결 방법도 제안한다. 무한 확장을 통해 힘을 키우고 있는 거대 테크 기업을 분할하거나 사회적으로 더 유익한 테크놀로지에 정부가 보조금을 주는 것, 기업이 노동자 재교육에 투자할 수 있도록 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 등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권력과 진보>의 가장 큰 미덕은 기술(진보)을 향한 무조건적인 낙관에 반대하면서도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자세마저 잃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들은 지난 50년 동안 이어진 환경운동이 ‘탄소세 도입’이나 ‘재생에너지 생산 비용 절감’ 등의 성과를 이뤄온 것을 높이 평가하면서 “여전히 테크놀로지의 경로가 아직 고정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테크놀로지 변화의 방향은 다시 잡을 수 있다”고 단언한다. “진보의 이름으로 생겨난 고통에 눈감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데 독자의 힘이 필요하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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