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변호인 배경 ‘부산양서협동조합’ 재출범 7년 만에 해산 절차

1978년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에 문을 연 옛 부산양서협동조합.

부마민주항쟁의 뿌리가 됐다는 평가를 받았던 부산양서협동조합이 재출범 7년 만에 다시 해산 절차를 밟게됐습니다.

원래의 정식 명칭이 ‘부산양서판매이용협동조합’이란 조금은 긴 이 단체가 처음 출범한 건 1978년입니다. 지금은 잘 쓰지 않은 말인 ‘양서’, 그러니까 ‘내용이 교훈적이거나 건전한 책’을 판매하고 이용하기 위해 설립한 곳이었죠.

그런데 이듬해 박정희 정권 독재에 항거한 부마항쟁이 일어나자 계엄세력은 이 양서협동조합을 강제로 해산시켜버렸습니다. 양서협동조합이 부마항쟁의 배후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강제해산 36년만에 다시 출범했던 양서협동조합

1978년 4월 부산양서협동조합 창립 소식지.

강제로 문을 닫게 된 이후에도 양서협동조합의 회원들은 독서모임을 계속 이어 나갔습니다. 1981년 공안 당국은 이 독서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을 무더기로 기소합니다.

불법 서적을 읽으며 공산주의 혁명을 꾀했다는 누명을 씌운 건데, 뒤에 ‘부림사건’으로 불리게 된 이 일은 2013년 개봉한 영화 <변호인>의 배경이 되기도 했습니다.

유죄를 선고받았던 양서협동조합 회원들은 33년이 지난 2014년에야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동시에 문을 닫았던 양서협동조합을 다시 시작해보자는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과거 회원들을 주축으로 2015년 양서협동조합은 재창립하게 됩니다. 강제해산된 지 36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해운대구에 북카페를 연 양서협동조합은 책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를 공유하는 활동을 이어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88명의 조합원으로 재출범한 조합은 조합원이 210명 넘게 불어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양서협동조합은 그 실험의 막을 내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 도래...한계 부딪혀"...8월 해산 총회

2015년 재창립하며 해운대구에 문을 연 부산양서협동조합.

양서협동조합은 해산총회 공고문을 통해 "디지털 시대 도래 등 변화하는 환경에 알맞은 독서문화 운동 모델을 정립하지 못하고 어렵게 이끌어 오다가 마침내 한계에 부딪혀 이제 겸허하게 모든 활동을 내려놓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KBS와 만난 현정란 양서협동조합 이사장은 그 결정이 쉽지는 않았다고 했습니다. 현 이사장은 "직접 와서 책을 사기보다는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집까지 배달되는 서비스를 많이 이용하면서 책방은 독서모임이나 인문학 모임, 강독모임으로 운영을 해왔는데 이것도 코로나가 오면서 점점 없어졌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공간을 운영하는데 들어가는 돈이라든가 예산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며 "과거에는 젊은 친구들이 매우 많았지만, 지금은 대부분 50~70대로 그 차이가 대단히 컸다"고 덧붙였습니다.

양서협동조합은 오는 8월 해산총회를 열고 본격적인 청산 절차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전국 각지의 양서협동조합 설립에 큰 영향을 끼쳤고 지역의 민주화 운동사에도 발자취를 남긴 하나의 역사는 그렇게 역사의 한 페이지로 기록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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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규 기자 (hi@k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