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뇌과학] 뇌의 '회춘' 위한 새 단서 찾았다
가끔 트위터 피드를 보면 연구자들이 최근 연구결과에 대한 홍보 게시글을 자주 올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신의 연구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설명하거나 몇 년 동안 야심차게 수행하던 연구결과가 결국 좋은 결실을 맺어 기쁘다는 등의 내용들이 주로 담겨 있다. 연구 트렌드와 주요 의미,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 등을 알 수 있어 유용하기에 주기적으로 살펴보는 편이다.
이러한 연구 성과 홍보(?) 피드글 중 하나에 눈이 머물게 되었다. 늙어버린 뇌의 회춘(rejuvenation)에 성공한 연구 성과라는 것이다. 연구자는 사람의 나이로 따지면 70-80대에 해당하는 생쥐를 하나의 유전자 조작만으로 노화로 인한 신경세포의 퇴행을 되돌리고 기억력도 되살릴 수 있었다고 했다.
이 연구결과는 바이오아카이브(bioRxiv)라는 논문 사전공개사이트에서 공개됐다. 아마 어느 과학저널을 통해 동료검토(peer review)를 거치는 중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얼마나 신뢰성 있는 결과인지에 대한 검토가 완료되어야 제대로 된 연구결과로 인정받을 수 있을 듯 하다.
이 연구 결과가 맞다면 노화에 따른 인지기능 감퇴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제공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 된다. 노화가 진행됨에 따라 신체 여러 기능이 저하되기 마련이지만 가장 두드러진 기능 저하는 인지기능이다. 주변 환경의 정보를 인지하고 이에 반응하는 정도도 감소하지만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고 기억하는 능력이 꽤나 빠른 속도로 저하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이가 들어 신체능력이 떨어지는 것만큼이나 인지기능이 저하되는 것이 일상생활에 얼마나 불편할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따라서 뇌의 노화를 방지하거나 늦춰서 젊은 시절의 인지기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자 하는 열망은 오랫동안 있어왔다.
그런데 흥미를 느낀 또 다른 점은 이처럼 중요한 의미를 담은 연구결과가 뭔가 새로운 기술과 접근방법을 통해 얻어진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생물학자들이 선택한 연구 방식인 모델 생물을 활용하여 인체의 신비를 탐구하는 방식에서 도출되었다는 것이다.
모델 생물이란 무엇인가. 모델 생물은 말 그대로 연구하고자 하는 대상을 대신하여 여러 조작 및 실험이 가능한 선택된 생물종이다. 왜 필요한가. 연구하고자 하는 생명체 특히 인간을 직접 연구하게 되면 여러 윤리적 문제에 부딪히므로 이를 피하기 위해서다.
인간의 노화를 극복하기 위한 ‘무엇’인가를 개발하고 싶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사람의 노화가 어떻게 시작되고 진행되는지 그리고 그에 따른 문제점들을 파헤치는 것에서 연구는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 열망을 현실로 옮기기 위해 노인의 앞에 서게 된다면 역설적으로 이 연구는 시작하기 어렵다는 것을 바로 깨닫게 된다.
눈 앞의 노인들 뇌의 노화를 늦추는 약물을 개발한다고 하자. 처음에 그 약물 후보를 어떻게 선정할 것인가. 효과도 알 수 없고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을지도 모르는 약물을 사람에게 직접 투여하며 시험하는 ‘비윤리적 실험’은 과거부터 미래까지 용납될 수 없다.
설사 이 노인들이 자발적으로 모든 부작용과 피해를 자발적으로 감수하여 윤리적 문제가 줄었다 한들 문제점은 여전하다. 인간의 뇌는 약 1000억여개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는 다른 동물들보다 상대적으로 복잡한 뇌 구조와 신경회로를 갖추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풀어야할 문제가 너무 복잡해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감이 오지 않을 것이다.
문제가 너무 복잡하다면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할까. 과학자들은 ‘단순화’ 전략을 선택해 왔다. 엉켜있는 실타래를 풀어낼 때 한 가닥 실마리를 실뭉치에서 조심스럽게 분리해 나가면 실들이 어떻게 얽혀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
복잡한 인체의 신비를 풀기 위해서는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문제들부터 풀어야 한다. 단순한 문제들의 해답들을 모아 더욱 복잡한 문제들에 단계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이 방식은 환원주의(reductionism)의 한 방식이다.
변수를 가능한 줄인 단순한 모델로 기능을 설명하고 이를 복잡계에 적용하여 돌아가는 원리나 방식을 이해하려는 것이며 마치 숲을 보기 위해 나무를 하나씩 세어간다고 비유해도 좋다. 이 방법은 유용하지만 역으로 나무만 세다가 숲을 완성하지 못하는 단점도 있다.
뇌의 신비를 풀려는 신경과학자들에게는 인간의 뇌가 너무 복잡한 나머지 필수적으로 간단한 문제를 푸는 것에서 시작할 수 밖에 없다. 연구자들은 ‘모델’이라 불리는, 인간을 대신해서 상대적으로 단순한 질문들의 답을 얻을 수 있는 대상을 정한다.
이 대상은 여러 비인간적일 수 있는 혹독한 실험들을 겪으면서 비교적 단순한 해답들을 산출한다. 학자들은 그 결과들을 분석하고 다시 새로운 실험을 통해 보다 안전하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복잡한 모델에 다시 적용해본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 궁극적으로 복잡한 인간의 뇌에서 벌어지는 현상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이다.
때문에 연구모델은 인간과 생물학적으로 유사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척추동물인 원숭이, 쥐 등을 많이 활용하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주요 모델동물인 척추동물들의 뇌신경계도 만만치 않게 복잡하고 어렵기에 단순한 문제를 풀기에 적당한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생쥐의 경우 뇌세포 숫자는 여전히 1000만개로 추산된다. 인간보다 많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생쥐 뇌 속 세포들의 특징 및 연결성은 모두 파악하지 못한 상태이며 당연히 생쥐 뇌의 작동 원리를 모두 이해하는 것은 앞으로 얼마나 걸릴지 모를 일이다.
따라서 더 문제를 단순화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내가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실에서는 동물의 학습과 기억의 분자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을 연구 목표로 삼고 있었지만 연구의 대상이 무척추동물인 ‘군소(Aplysia)’라 불리던 바다달팽이의 일종이었다.
군소는 약 1만여개의 세포들로 구성되어 있는 신경계를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억’을 할 수 있다. 외부 해로운 자극에 반응하여 기억하고 이를 위험상황에서 떠올리고 대처하는 단순한 행동이 그것이다.
따라서 단기 장기 기억이 형성되고 조절되는 동안 일어나는 분자 및 세포수준의 변화 관찰에 용이하다는 장점을 살려 콜롬비아대 에릭 켄델(Eric Kandel) 교수는 학습과 기억의 분자의 주요 메커니즘을 밝힌 업적을 인정받아 2000년에 노벨상을 받을 수 있었다.
비록 인간과 거리가 먼 무척추 동물에서 벌어지는 분자현상이더라도 기본적인 작동 원리가 비슷하다는 것에 착안하여 문제를 풀면 인간의 기억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바다달팽이의 1만여개의 신경세포도 꽤나 단순화 된 모델이지만 더욱 단순화된 모델을 활용한다면 기억의 분자적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을까.
이에 대한 예시로 예쁜꼬마선충(Caenorhabditis elegans; C. Elegans)을 들 수 있다.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미세한 지렁이처럼 생긴 이 선형동물은 크기는 1mm밖에 안되고 전체 몸을 구성하는 세포가 약 1000여개밖에 되지 않는데 신경세포는 300여개 밖에 되지 않는다. 사람의 뇌세포 수가 1000억개인 것에 비하면 엄청 단순화 된 모델동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도 먹이와 해로운 자극을 기억하여 이에 따라 반응하는 단순한 형태의 학습과 기억 기능을 갖추고 있다. 그동안 많은 연구자들이 예쁜꼬마선충의 학습과 기억도 포유동물과 유사한 분자적 수준의 기전들을 통해 조절된다는 것을 밝혀낸 바 있다. 특히 예쁜꼬마선충의 유전자 조작이 매우 손쉽다는 장점을 잘 활용하면 학습과 기억에 관련된 새로운 유전자들을 찾아내고 그들의 정확한 세포 내 기능을 파악하기에 유용한 강력한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
예쁜꼬마선충은 노화 연구를 위해 사용될 수도 있는데, 생물의 노화를 관장하는 주요 기전들도 역시 진화적으로 잘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빵과 술의 발효에 이용되는 효모균에서도 세포의 사멸 및 노화를 조절하는 기전이 인간을 비롯한 여러 포유동물과 비슷한 점이 많다. 이처럼 미생물부터 인간까지 여러 생명현상은 큰 줄기에서 유사한 면이 많기 때문에 모델생물은 복잡한 인간 생명현상의 원리를 풀기 위해 필수적인 도구가 될 수 있다.
다시 트위터 피드에 올라온 연구성과로 돌아오자. 올해 6월 7일에 바이오아카이브에 발표된 이 논문(10.1101/2023.06.06.543909)은 프린스턴대 콜린 T.머피(Coleen Murphy)교수와 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 캠퍼스의 사울 빌레다(Saul Villeda) 교수의 공동연구 결과이다.
머피 교수는 2018년 예쁜꼬마선충을 연구모델로 하여 노화에 의해 감소한 꼬마선충의 기억력을 되살리는데 성공한 유전자 조작 실험 결과를 Neuron지에 발표한 바 있다. (doi.org/10.1016/j.neuron.2018.03.039)
이 때 조작 대상이 된 유전자는 Gq 단백질 중 알파 subunit(Gαq)라 불리는 것이다. 이 단백질은 세포막에 존재하는 특정 G 단백질 연결 수용체(G protein coupled receptor; GPCR)가 활성화되면 순차적으로 역시 활성화 되어 여러 세포 내 다양한 신호체계를 통해 세포 내 칼슘 농도를 증가시킨다. 증가된 칼슘 농도에 의해 칼슘의존적 신호체계의 스위치가 켜지면 기억 형성에 도움이 되는 유전자의 발현 및 시냅스 가소성이 증가하는 효과도 일어날 수 있다.
예쁜꼬마선충은 성체가 된 후 4-5일이면 이미 노화 상태로 접어들고 기억력 감퇴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므로 이 나이 때의 꼬마선충은 후각신호와 먹이를 연동시켜 기억하게 하는 훈련을 시키면 그 수행도가 급격하게 감소하게 된다. 이와 유사하게 Gαq 신호체계는 꼬마선충이 나이가 듦에 따라 줄어드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늙은’ 꼬마선충의 기억력 회복을 위해서 Gαq 신호체계를 인위적으로 활성화 시키고 기억 형성 유전자 발현율을 높인다면 노화에 따른 선충의 기억 감퇴를 되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쉽게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Gαq 활성을 지속적으로 증가시키는 유전자 조작을 가한 후 노화 상태의 예쁜꼬마선충의 기억능력을 측정하면 거의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선행연구를 통해 ‘늙은’ 꼬마선충의 기억력 회복 효과를 확인한 머피 교수와 노화에 따른 동물의 인지기능 회복 연구에 관심을 갖고 있던 빌레다 교수 연구팀은 이제 인간과 조금 더 가까운 모델동물인 생쥐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 주목하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Gαq 및 관련 신호체계는 꼬마선충에서나 생쥐에서 유사하게 작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므로 생쥐의 Gαq 활성을 인위적으로 증가시키는 유전자 조작을 비슷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이 때 유전자 조작을 가한 생쥐의 나이는 무려 2살이었는데 일반적인 실험실 환경에서 사육하는 생쥐의 수명이 2년을 넘지 못하는게 일반적인 것을 감안한다면 인간으로 따지면 최고령대에 해당한다.
이 나이 대의 생쥐들은 청년의 나이에 해당하는 생쥐들과 비교했을 때 일반적인 기억력 시험에 모두 낮은 점수를 받는다. 또한 정상적 인지기능을 가진 생쥐들은 사육상자 안에서 주변의 재료들을 끌어다가 일정한 형태의 둥지를 만들기 마련인데 2살의 최고령대 생쥐들은 이 능력도 크게 떨어져서 제대로 된 형태의 둥지를 만드는데 실패하는 특징을 보인다.
그러나 Gαq의 지속적 활성이 가능한 유전자 조작을 받은 생쥐들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들은 거의 모든 종류의 기억력 시험에 청년 쥐와 유사한 정도의 능력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둥지도 정상적으로 만들 수 있었다.
예쁜꼬마선충 연구결과와 유사하게도 생쥐에서의 Gαq의 지속적 활성 유전자 조작은 학습과 기억을 조절하는 시냅스 가소성(synaptic plasticity) 관련 유전자 발현을 크게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노화과정에 줄어든 시냅스 숫자 및 신경세포 구조 퇴행도 회복된 것으로 관찰되었다.
마치 뇌만큼은 ‘회춘’한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이 연구결과가 아직 동료심사 진행 중이므로 Gαq를 잘 활용하면 노화성 기억 감퇴를 극복할 수 있다고 결론내리기에는 이르지만 최소한 모델생물을 잘 활용하여 ‘뇌의 회춘’이라는 커다란 비밀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환원론적 연구 방식의 유용함을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델생물을 이용한 기억 증강연구의 사례는 여러 건이 있지만 인간에게 적용해 볼 만큼 만족스러웠던 기억 증강 기술은 아직 발표된 적이 없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기억향상을 꾀한 연구 사례 중 가장 유명한 것 중 하나가 1999년 당시 프린스턴 대학에 조교수로 재직 중인 중국계 과학자 조 치엔(Joe Tsien) 교수 연구팀이 네이처에 발표한 연구결과(10.1038/43432)이다.
그들은 시냅스 가소성을 조절하는 주요 분자 중 하나인 NMDA 수용체의 일부를 생쥐의 전뇌(forebrain) 영역에 유전자 조작을 통해 과발현 시키면 생쥐들이 대부분의 기억 행동 측정 시험에서 놀랍게도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을 발견하였다. 미국 TV 쇼의 천재 소년 배역 이름을 딴 “두기(doogie)” 생쥐라 불리던 이 유전자 조작 생쥐를 보고 과학자들과 평론가들은 오랜 시간동안 인류가 희망했던 ‘머리가 좋아지는 기술’의 개발을 드디어 완성한 듯 흥분했다.
하지만 후속 연구에서 두기 생쥐의 여러 단점이 발견되고 나서야 그 흥분이 점차 가라앉게 되었다. ‘두기 생쥐’에게 고통스러운 자극을 가하고 얼마나 오래 기억하는지 측정하면 역시 고통과 관련된 기억도 정상 생쥐보다도 높았는데 이는 두기 생쥐가 모든 종류의 정보를 무분별하게 모두 잘 저장하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당연히 인간이 원하는 ‘머리가 좋다’는 것의 의미는 원하는 정보들을 선별적으로 잘 저장하고 오래 유지하는 것이므로 두기 생쥐의 연구 결과로는 제대로 된 기억증강기술이 개발되었다고 보기 힘들다.
따라서 인지증강에 관심을 갖고 있는 후속 연구자들은 ‘두기 생쥐’의 교훈을 잘 살려서 인지 증강을 위한 생물학적 조작의 다양한 장단점을 세심히 고려하여 진정한 뇌기능 증강기술을 개발하고 싶어 한다.
위에서 언급된 Gαq 유전자 조작을 통한 노화성 기억 감퇴 회복도 조심스러운 면이 존재한다. Gαq 신호체계는 얽혀있는 세포내 신호체계가 너무 복잡하고 다양하기 때문에 기억이 증진시키는 것의 반대급부로 어떤 기능이 저하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또한 Gαq 단백질이 세포 분열을 촉진하고 이 단백질의 유전적 돌연변이는 암세포 발병과 연관성이 높기도 하므로 Gαq 신호체계를 건드려 뇌의 회춘을 유도하는 것에 대한 안정성은 오랜 연구를 통해 검증해야할 것이다.
Gαq와 같은 새로운 인지증강기술을 다양하게 검증하기 위해서는 결국 다시 모델생물로 돌아와 부작용과 안정성을 시험하게 되는 필연적 반복이 생겨난다. 그 과정은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 수 밖에 없다. 그것을 지켜보는 일반인들은 답답해 할 수도 있겠다.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왜 인간을 대상으로 연구하지 않고 쓸모없는 예쁜꼬마선충이나 생쥐만 다루는 것인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연구자들에게는 예상할 수 있는 혹은 예상치 못한 위험성과 문제점들을 모두 고려하여 진정한 인지증강기술을 찾아내기 위한 ‘빌드업’ 시간을 차근히 밟는 중이다. 그러므로 절대로 어려운 문제를 회피하고 무책임하게 현실과 거리를 두고자 하는 것은 아님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연구자들도 자신의 연구에 너무 매몰된 나머지 자신의 연구가 어떤 의미에서 중요한지 설명하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약 20여년 전 박사과정 학생으로서 바다달팽이 신경계의 작동원리를 이해하여 학습과 기억의 비밀을 풀 수 있다는 막연하지만 어렴풋한 신념을 갖고 학위과정 연구를 수행하던 그 시절 같은 연구실 선배의 박사학위연구심사 공개 세미나에 참관한 적이 있었다. 긴장이 가득했지만 깔끔했던 발표가 마무리되고 질의 응답 시간이 이어졌는데 어느 심사위원이 던진 간단한 질문에 당시 머리가 멍해졌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바다달팽이에서 발견한 그 결과로 어떻게 사람의 기억을 설명한다는건가요.”
쉽고 단순하지만 중요하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그 심사위원은 우리처럼 모델생물을 가지고 연구하는 사람들이 항상 잊지 말아야할 교훈을 우회적으로 전달한 것 아닌가 싶다. 그 심사위원의 질문은 연구실 책임자가 되어 연구원들과 학생들을 지도하는 입장이 된 지금에도 가끔 스스로에게 묻고 대답을 되뇌이게 할 정도로 아직 큰 울림을 주고 있다.
※필자소개
박형주. 한국뇌연구원 신경혈관단위체 연구그룹에서 근무 중이며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뇌인지과학전공 겸임교수다. 현재 생쥐 모델을 활용해 학습과 기억을 조절하는 세포간 상호작용의 분자 기전을 연구하고 있으며, 뇌 속 기억 형성 및 변화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일반인들에게 소개하는 저술 작업도 같이하고 있다.
[박형주 한국뇌연구원 한국뇌연구원 신경혈관단위체 연구그룹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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