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신고 안 해 지워진 아이들, 국가가 ‘출생통보제’로 찾아낼까
의료기관 ‘출생통보제’와 함께 ‘보호출산제’도 거론돼
2023년 6월, 경기도 수원의 한 집에서 냉동 보관된 아기 주검 2구가 나왔다. 각각 2018년과 2019년에 태어나 살해된 아기다. 친모는 자녀 3명을 두어 추가로 아이를 낳는 데 부담을 느꼈다고 진술했으며 친부는 몰랐다는 입장이다. 이 사건은 4년이 지나서야 경찰 조사로 세상에 드러났다.
경남 창원에선 2022년 3월 생후 76일 된 아기가 영양결핍으로 숨진 사건이 뒤늦게 확인됐다. 친모가 친부로부터 양육비를 받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출생 직후 베이비박스(영아를 임시 보호하는 간이 보호시설)에 유기된 아기도 있었다. 세 아이는 모두 출생신고가 되지 않아 국가가 그 존재를 몰랐다.
출생신고 안 된 아동들이 유기되고 사망한 사례가 알려지자 정부가 출생 미신고 아동의 생사를 확인하는 전수조사를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아동의 출생신고를 의료기관이 함께 맡는 ‘출생통보제’도 주목받는다.
과태료 단 5만원으로 ‘그림자아동’ 못 구해
전수조사의 발단은 감사원의 보건복지부 감사였다. 기존에도 아동학대 등으로 출생 미신고 사례가 간간이 드러났지만 정부가 출생 미신고 아동만을 따로 추려 대대적으로 조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감사원은 2023년 3월 복지부 감사 도중 출생신고 되지 않은 인원 2236명을 찾아냈다. 병원이 예방접종시 부여하는 ‘임시 신생아 번호’를 토대로 산모를 추적해 출산 기록만 있고 출생신고 기록은 없는 이들을 따로 추린 것이다. 복지부도 이런 정보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개인정보 침해 논란을 우려해 따로 추적하진 않았다는 입장이다.
감사원은 2236명 가운데 부모가 출생신고를 거부하는 등 학대 위험이 있는 23명을 따로 추려 생사를 확인했다. 그 결과 3명은 사망했고 1명은 유기된 사실을 확인했다. 나머지 19명은 파악 중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복지부도 남은 이들을 전수조사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 출생 미신고 아동 현황을 파악하고 있다.
2236명에 ‘병원 밖 출산’은 포함되지 않는다. 병원 쪽 자료로 파악한 인원이라서다. 복지부가 연간 100~200건으로 추산하는 병원 밖 출산 인구를 더하면 그 규모는 더 불어날 수 있다.
출생신고는 모든 아동 기본권의 첫 단추로 여겨진다. 아동이 사회에 존재를 공식적으로 알린 뒤에야 의료, 교육 등 기본권을 보호받을 수 있어서다. 유엔(UN) 아동 권리에 관한 협약 제7조 1항은 “아동은 출생 후 즉시 등록돼야 하며, 출생시부터 성명권과 국적취득권을 가진다”고 규정한다. 출생신고가 안 된 아이들은 방치되거나 학대받아도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한국에서 출생신고 의무는 주로 부모에게 맡겨졌다. 부 또는 모는 아이가 태어나면 가족관계등록법에 따라 1개월 안에 출생신고를 해야 하지만, 이를 어겼을 때 제재는 과태료 5만원이 전부다. 이마저도 신고·적발로 발견돼야 물릴 수 있다. 2022년 적발된 출생 지연 신고 건수(법원행정처 집계)는 7589건에 이른다. 부모 외에 검사나 지방자치단체장이 출생 미신고를 인지해 직권 신고를 할 수도 있지만 민원 등을 우려해 실제 신고한 사례는 드물다.
유기해서, 혼인 외 출생이라서 미신고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동은 사회안전망에 들어가지 않아 아동복지법상 권리를 보호받기 어렵다. 2021년 12월 제주도에선 우연히 주민센터를 방문한 세 자매(발견 당시 15살·22살·24살)가 모두 출생신고가 안 된 사실이 알려졌는데, 셋 다 정규교육을 받지 않았고 병원에도 간 적이 없었다. 모친은 출생신고 당시 몸이 안 좋아 신고를 못했고 그 뒤로는 절차가 복잡해 하지 않았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출생 미신고 아동은 아동학대 피해자일 가능성도 크다. 2021년 5월 강원도 원주에서 자녀 2명을 살해한 20대 부부가 경찰에 붙잡혔는데, 희생자 두 명 중 한 명이 출생신고가 안 된 자녀였다. 정부는 출생신고된 자녀의 행방을 확인하다 우연히 출생신고가 안 된 자녀가 더 있음을 알게 됐다. 만약 출생신고 안 된 아이 혼자였다면 조사가 안 됐을 가능성이 크다.
부모는 아이의 출생을 왜 신고하지 않을까. ‘보편적 출생신고 네트워크’의 2021년 실태조사를 보면 246개 아동복지시설의 응답 가운데 ‘베이비박스’(유기)가 75.9%로 가장 많았고, 63개 아동학대보호시설(아동보호전문기관) 응답 가운데는 ‘혼인 외 출생’이 45.0%로 가장 많았다. 자녀를 책임지지 않으려거나 혼인 외 관계를 알리지 않으려는 이가 많다는 뜻이다. 이 외에 이혼 뒤 300일 이내 출생한 자녀는 전남편의 아이로 추정한다는 민법의 ‘친생자 추정 조항’ 때문에 가정폭력 피해자가 출생신고를 미루는 경우도 적잖다.
부모 의사와 무관하게 아이들의 출생신고가 보장되도록 겹겹이 장치를 둘 수 있다. 아기가 태어난 즉시 출생을 알릴 의무를 의료기관에도 부여해 부모가 누락한 신고를 찾아내자는 ‘출생통보제’가 대표적이다. 미국, 독일, 영국 등에서 시행 중이다. 한국은 의료기관 쪽에서 행정 부담을 들어 반대하고 있다. 의료기관이 아이의 출생증명서를 지자체에 통보하도록 정한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이 2022년 3월 정부안으로 국회에 발의됐으나 소위원회에서 단 한 번도 논의되지 않고 1년3개월 동안 계류돼 있었다. 여야는 뒤늦게 부랴부랴 ‘개정안을 조속히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을 냈다.
독일, ‘신뢰출산제’로 보완하고 ‘임신 갈등 상담센터’ 운영
출산통보제 도입으로 출산을 알리기 꺼리는 이들의 병원 기피가 심해질 거란 우려도 있다. 이 때문에 익명으로 출산하는 ‘보호출산제’도 거론된다. 다만 자녀의 알 권리가 박탈되고 부모가 양육을 쉽게 포기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독일에선 익명으로 아이를 낳은 뒤 아이가 16살이 되면 부모 정보를 열람할 수 있도록 하는 ‘신뢰출산제’도 보완책으로 활용하고 있다.
산모가 임신·출산에 관해 갈등할 때부터 정부가 밀착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독일은 아이를 낳을지 고민하는 임신부에게 상담을 제공하고 각종 지원책과 생활시설을 안내하는 ‘임신 갈등 상담센터’를 운영한다. 한국은 현재 주사랑교회 등 일부 민간단체가 베이비박스를 찾는 부모를 알음알음 상담하는 정도다.
조경애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법률구조1부장은 “독일의 경우 임신 갈등 상담을 받은 부모들이 아이를 키우겠다고 마음을 돌리는 경우가 상당하다. 출생신고를 의무화하는 것만큼이나 국가가 부모와 꾸준히 대화해 아이를 양육하도록 돕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외에 부모의 의사에 반할 위험이 있는 친생자 추정 조항을 손질하고 현행법에 없는 외국 국적 아동의 출생신고 제도를 구축하는 것도 함께 가야 할 과제다. 조 부장은 “출생통보제를 도입해도 다 포섭되지 않는 아동들이 있다. 그들을 위한 제도를 함께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Copyright © 한겨레2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