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이젠 안녕" 눈물의 마침표 찍은 화순탄광

종업식 마지막으로 폐광…"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 다짐도

(화순=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이제는 정말 작별이네요. 많이 생각날 것 같아요"

수십년간 석탄을 캐던 거친 손으로 눈시울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던 60대 광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30일 전남 화순군 동면 화순탄광(대한석탄공사 화순광업소)에서 열린 종업식을 마지막으로 화순탄광은 118년 역사에 마침표를 찍었다.

종업식에 참석한 광부들은 삼삼오오 모여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대화를 나눴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드러내지 못한 아쉬움과 섭섭함이 가득해 보였다.

누군가는 행사장 창밖으로 보이는 탄광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작별을 건넸고, 누군가는 사물함에 남아있던 옷가지들을 정리하며 마지막 순간을 정리했다.

탄광을 바라보던 김종민(60) 씨는 "여기에서 40년간 일하면서 야간 대학도 다니고, 결혼도 하고, 자녀들 출가시키고 탄광은 저에게 정말 많은 것을 줬다"며 "정말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이어 "평생을 바쳤던 일터가 사라진다니 마음이 좋지 않다"며 "예상보다 더 일찍 폐광되는 것이어서 섭섭하다"고 덧붙였다.

종업식이 시작되자 장내는 순식간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종사자 대표로 고별사에 나선 김병희 씨는 "우리는 오랜 세월 세상의 무관심과 홀대에도 최선을 다해 제 역할을 다해왔다"며 "우리는 우리를 충분히 자랑스러워해도 된다"고 말했다.

이어 "폐광으로 문 닫는 화순광업소의 마지막 광부가 아니라 깊은 어둠 속 막장에서 나와 붉은 태양이 떠오르는 희망의 문을 여는 첫 광부"라며 "새로운 내일을 향해 힘차게 나가자"고 강조했다.

또 "땀에 흠뻑 젖은 작업복을 입고 석탄 가루에 새카매진 얼굴로 눈과 치아만 드러낸 채 서로 웃고 담소를 나누던 동료들을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라며 울먹이기도 했다.

그의 절절한 고별사에 여성 종사자들은 굵은 눈물을 쉴 새 없이 흘렸고, 우직한 모습의 남성 종사자들도 고개를 숙이거나 천장을 바라보며 눈물을 삼켰다.

종사자들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하려는 가족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가족을 위해 수십년간 험한 곳을 마다하지 않고 헌신한 남편, 부모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은 꽃다발을 건네주거나 응원의 마음을 담은 현수막을 펼쳐 보였다.

가족들이 안겨준 꽃다발을 든 광부 박연(65) 씨는 "오래전부터 폐광 얘기가 나왔지만, 막상 현실이 되니 매우 안타깝다"며 "앞으로는 탄광이 있는 동면 지역의 발전을 위해 역할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구복규 화순군수는 격려사를 통해 "폐광 대체 산업 발굴과 종사자 일자리 마련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1905년 한국인 박현경이 광업권을 등록해 문을 연 화순탄광은 118년 동안 남부권 최대 석탄 생산지였다.

산업전사로 불리며 '국민 연료'였던 연탄의 수급 안정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산업구조와 시대환경이 변하면서 정부는 1988년 석탄 산업 합리화 정책(축소 정책)으로 석탄 산업의 종말을 예고했다.

이어 정부는 2021년 12월 장기계획에 따라 화순탄광과 강원 2곳의 탄광(장성·도계)을 조기 폐광하기로 결정했다.

화순탄광은 이날 부로 모든 종사자들이 퇴사하는 것으로 폐광됐고, 2024년 강원 장성탄광, 2025년 도계탄광 순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i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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