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둔 개들은 짖지 않았다…‘한 달간의 추적’ 도살장 적발기

한겨레 2023. 6. 30.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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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원 칼럼][애니멀피플] 통신원 칼럼
그물장에 욱여넣어져 ‘죽음의 길’ 오가는 개들
동물권행동 카라가 지난 12일 경기도 시흥시의 한 개 도살장을 찾았다.

‘죽음의 트럭’은 조용하다. 개 농장주, 개고기 유통업자가 트럭 앞에 모여든다. 개 농장주가 집게로 거칠게 개의 목을 잡아끌어 준비된 철망에 개들을 욱여넣었다. 버둥거리는 개는 저항할 새도 없이 그물장 안에 넣어진다. 어떤 개들은 도망치려 노력하기도 하지만 여지없이 끌려와 갇힌다. 그물장은 그렇게 십여 마리의 개들로 꽉 찼다.

(※ 동물의 학대, 죽음과 관련한 잔인한 묘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도살장을 ‘급습’하는 이유

육견 경매장과 도살장을 오가는 트럭은 이런 그물장을 가득 싣고 수도권 소도시를 바삐 오간다. 그물장을 가득 실은 트럭은 경기도 안산, 시흥, 수원 그리고 성남의 모란 시장을 돌며 개들을 ‘공급’했다. 땀이 뻘뻘 나는 초여름의 날씨, 바람 한 점 통하지 않는 트럭 위에서 개들은 이렇게 몇 시간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운반됐다.

동물권행동 카라는 지난달부터 불법적인 개 도살 현장을 적발하기 위해 유통업자의 경로를 추적했다. 개들은 좁은 철망에 구겨 넣어져 수도권 여러 도시로 ‘공급’됐다.

동물권행동 카라는 지난달부터 불법적인 개 도살 현장을 적발하기 위해 유통업자의 경로를 추적했다. 이 과정에서 시흥의 한 개 도살장을 발견하게 됐다. 6월12일 카라 활동가들이 시흥 도살장 현장을 급습했다.

우리나라 법은 개를 가축으로 보지만, 축산물로 정하고 있지 않다. 개를 도살하기 위한 방법이나 시설에 대한 기준이 없다. 도살도 도살장도 모두 불법적이다. 그러나 도살이 이뤄지는 현장을 포착하지 않으면 불법적 도살을 입증하기 어려워 활동가들은 현장에 잠복하고 있다가 도살이 이뤄지는 그 순간에 덮쳐 증거를 수집한다.

이날도 도살장으로 진입하는 트럭을 확인하고 현장에 진입했다. 그러나 도살장으로 불법적으로 개조된 비닐하우스 안쪽에는 이미 살해 당한 백구의 사체 세 구가 늘어져 있었다. 백구들의 하얀 털은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개들은 이렇게 죽어간다

도살장의 개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죽어가는지 말하는 건 쉽지 않다. 있는 그대로 묘사하면 너무 잔혹하기 때문이다. 대략의 과정은 이렇다. 도살자들은 개를 때려 죽이거나, 목을 매달아 죽이거나, 전기 쇠꼬챙이로 감전시켜 죽인다. 이후 ‘고기’가 되기 위한 작업들이 이뤄지는데 도살장의 설비들은 개들이 어떤 과정을 겪게 되는지 말해준다. 뜨겁게 데운 물이 가득 든 ‘탕지’, 탈모기, 커다란 칼 그리고 전기쇠꼬챙이다.

살해당하는 개들이 처참한 고통을 겪는 한편, 함께 끌려간 개들은 눈앞에서 그 과정을 온전히 목격하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사진 속 어미 개 ‘치아’(가운데)는 구조 뒤 새끼 7마리를 낳았다.

이 도살장은 여러 군데에서 개를 ‘납품’ 받는 모양새였다. 거의 매일 같이 50리터 짜리 쓰레기봉투 여러 개에 털과 목줄이 가득 담겨 버려졌다. 얼마나 많은 개들이 죽어야 그렇게 많은 털들이 나오는 건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였다.

살해당하는 개들이 처참한 고통을 겪는 한편, 함께 끌려간 개들은 눈앞에서 그 과정을 온전히 목격하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린다. 때문에 도살장의 개들은 눈을 마주치거나 짖지 않는다. 눈에 띄면 안 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 시흥 도살장의 개들도 그물장 안에 꼼짝없이 포개져 너무도 조용히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 누구도 낑낑거리는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좁은 철망 속 개들은 낑낑거리는 소리도 내지 않았다. 눈에 띄면 안 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았다.
24마리의 개들은 구조 뒤 일차적인 건강 체크, 개체 분류가 이뤄졌다. 구조 작업은 새벽 4시까지 이어졌다.

저녁 8시 급습 이후 활동가들과 도살자는 3~4시간 동안 대치했다. 현장에 경찰이 출동하고, 지자체 담당자가 나오기까지 도살자는 증거물을 감추거나 축소하려고 노력했다. 당시 도살 현장에는 2명의 도살자가 있었는데 활동가들이 이들의 활동을 지켜보는 가운데에서도 어디선가 계속 매캐한 탄 냄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알고 보니 도살자 한 명이 작업을 거의 마친 개들을 가지고 화장실에 몇 시간이나 숨어 있었던 것이다.

구조 뒤 태어난 7마리 새 생명

이렇게 활동가들과 도살자들의 대치가 길어지면, 개들은 얼굴이 익은 활동가에게 마음을 풀고 다가오곤 한다. 이번 현장에서는 몇몇 어린 개들이 활동가들에게 다가와 내민 손에 얼굴을 기댔다.

활동가들이 찬찬히 쓰다듬어주자, 개들은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그제서야 긴장을 풀었다. 깨끗한 물을 넣어주자 개들은 갈증이 심했다는 듯 허겁지겁 물을 마셨다. 더위에 짐짝처럼 실려 저녁 늦게까지 물 한 모금 못 마신 탓이었다.

도살장 안에서 수거한 불법적 도살 도구들. 전기쇠꼬챙이의 끝은 개들이 마지막 순간 남긴 이빨 자국으로 가득했다.

경찰과 지자체 공무원이 도착하면서 현장 급습은 정리됐다. 죽은 개 13마리는 범죄 현장의 증거물로 수집됐고, 카라는 24마리의 개들을 인계 받았다. 며칠 뒤 도살장이 철거됐다.

도살자는 원래 용접공이었으나 나이가 들어 아무도 자신을 찾지 않게 되어 이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경제적 약자일지라도 폭력과 불법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카라는 도살자들을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다만 우리는 개 식용 산업의 구조적 문제를 이런 점에서 발견한다. 생계를 위해 불법을 저지르게 되는 상황은 정부가 현행법을 엄정히 집행하면 막을 수 있는 일이다.

어미 개 ‘치아’는 구조 뒤 7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구조 뒤 살펴본 개들의 건강 상태는 처참했다. 24마리 개들 중 11마리가 파보바이러스에 전염되어 투병하고 있었다. 개농장, 유통, 도살장에 이르기까지 각종 바이러스가 유입되고 섞이면서 퍼진 탓이었다. 투병하던 개 ‘실바’는 끝내 세상을 떠났다. 슬픈 죽음 며칠 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일도 있었다. 만삭의 어미 개 ‘치아’가 일곱 마리의 새끼를 출산한 것이다. 만약 구조되지 못했다면 이 생명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제는 때가 됐다

살아남은 개들은 구조 당일 바로 위탁보호소로 갔다. 평지를 밟고, 물을 마시고, 대소변을 본 개들은 곧장 킁킁거리며 공간을 탐색했다. 그제서야 활동가들에게 관심을 가졌고, 인사를 나눈 활동가들을 향해 낑낑거리거나 짖었다. 긴 울음소리가 보호소에 울려 퍼졌다. 도살장에서 아무 소리도 못 내던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었다.

어쩌면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는 작은 생명들. 만삭의 어미 개가 구조되며 새 삶의 기회를 얻게 됐다.

오늘도 개들은 그물장에 구겨 넣어졌을까. 오늘은 몇 마리의 개들이 팔렸고, 죽었을까. 시흥 도살장에서 구조한 개들을 보면, 우리가 구하지 못한 개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혀를 길게 내밀고 헉헉거리던 흰 개, 짓눌려서 아무런 반항하지 못하던 누렁이, 공포에 질려 있던 검은 개…. 가족이 있건 없건, 개농장에서 태어났건 번식장에서 태어났건, 그들 모두는 고통과 행복을 아는 존재다.

개 식용 산업은 전 과정이 불법과 위법으로 점철되어 있다. 높아진 동물권 의식으로 이미 이 산업은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러나 오늘도 죽어가고 있는 생명을 생각하면 그 걸음은 더디기만 하다. 이제는 죽음의 길을 끊어낼 때가 됐다.

글 동물권행동 카라 김나연 활동가, 사진 동물권행동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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