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중국 새 반간첩법 시행, 우리 국민 애먼 피해 없도록 해야
(서울=연합뉴스) 중국이 다음 달 1일부터 개정 반간첩법(방첩법)을 시행한다. 지난 4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를 통과한 새 반간첩법은 기존의 5개 장 40개 조항에서 6개 장 71개 조항으로 확대 개편됐다. 간첩행위의 정의와 법 적용 범위가 넓어졌고, 국가 안보 기관의 권한과 간첩행위 행정 처분은 강화됐다. 국가 안보를 위해 내·외국인의 스파이 행위를 엄격하게 단속하겠다는 취지다. 문제는 처벌 대상이 지나치게 광범위해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걸릴 수 있을 정도라는 것이다. 일례로 '기밀 정보 및 국가안보와 이익에 관한 문건·데이터 등에 대한 정탐·취득·매수·불법 제공'을 간첩행위로 규정했는데 국가안보와 이익에 관한 정보가 무엇인지 모호해 이현령비현령이 될 공산이 크다. 자의적 판단이 남발되면 지도나 사진, 통계자료 등을 인터넷으로 검색한 것만으로도 처벌받을 수 있다. 국가기관·기밀 관련 부처·핵심 정보 기반 시설 등에 대한 촬영을 간첩행위에 추가한 것 역시 독소조항이다. 무심코 기념사진을 찍은 관광객이 간첩으로 몰릴 수도 있는 상황이다. 시위 현장 방문, 시위대 촬영은 물론 포교, 야외 선교 등 중국 정부가 금지하는 종교 활동 역시 간첩행위로 분류됐다.
한 국가가 법령을 제정해 시행하는 것은 주권에 관한 사항으로 다른 나라가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전제는 인류 보편의 가치에 부합하고, 최소한의 인권과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주권이나 해당 국민의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해서도 안 된다. 이런 점에서 새 법은 우려스러운 부분이 한두곳이 아니다. 중국 거주 외국인이나 여행객의 일상적 행동까지 문제가 될 수 있는 데다 관련 당국의 수사·행정조치 권한은 거의 무한대로 커졌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이런 비판에 대해 "모든 국가는 국내 입법을 통해 국가 안전을 수호할 권리가 있다"면서 "개인과 조직의 합법적 권익은 보호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다. 중국은 새 법이 시행되기도 전인 올해 초 이미 기업 실사 업체 민츠그룹, 컨설팅 기업 베인앤드컴퍼니와 캡비전 등 미국 기업의 직원을 스파이 혐의로 체포하고 압수 수색까지 벌인 바 있다. 반간첩법 시행에 맞춰 일부 외국 기업, 컨설팅업체, 싱크탱크 등은 중국 출장을 중단하거나 중국 내 활동을 줄이는 등 '몸조심'을 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은 반간첩법과 함께 대외관계법도 같은 날 시행할 예정이다. 대외관계법은 다른 나라가 중국의 주권, 안보, 발전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했을 경우 상응하는 반격을 취할 권리를 명문화한 것이다. 국가기관, 정당, 기업 등의 조직과 국민은 대외 교류에서 국익을 수호할 책임이 있으며 이를 위반하면 법적 책임을 묻는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 같은 '공안몰이'는 내부 단속용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크게 보면 미·중 패권 경쟁을 염두에 둔 것이 분명하다. 경제에 악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점을 잘 알면서도 강공에 나선 것은 미국과의 힘겨루기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도이다. 일단 타깃은 미국이지만 그 과정에서 한국이 애먼 피해를 볼 가능성도 있다. 현지 진출 기업이 영업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고, 중국에서 활동 중인 종교 단체와 대북 관련 단체가 불법행위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 대외관계법 시행으로 2017년 사드 갈등 당시 비공식적으로 시행한 '한한령(限韓令)' 같은 보복 조치를 합법적으로, 대놓고 할 근거까지 마련됐다. 물론 2014년 반간첩법 제정 이후 우리 국민이 처벌받은 사례가 없다는 점에서 너무 위축될 필요는 없겠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 더구나 한중 관계는 최근 들어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우리 국민의 억울한 피해가 없도록 대책을 마련하고 중국과도 협의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강구해주길 바란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중국에 거주하는 24만여 명의 교민과 기업인, 그리고 여행객들도 적어도 당분간은 행동에 각별히 유의해주길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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