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한 우리 한민족은 없다···한반도 고인류는 그저 인류일 뿐”[책과 삶]

김종목 기자 2023. 6. 30.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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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 자연사 박물관의 네안데르탈인 아이 모형. 동아시아 제공

인류의 진화

이상희 지음 | 동아시아 | 276쪽 | 1만6000원

<인류의 진화> 부제는 ‘한 권으로 읽는 최신 고인류학 다이제스트’다. 들어간 참고문헌 목록만 38쪽이다. 방송으로 대중에게 친숙한 이상희(미국 캘리포니아대 리버사이드 캠퍼스 교수·사진)는 최신 논문과 정보를 이야기로 녹여 쉬운 입말로 풀어낸다.

최신 정보 중 하나가 2023년 이탈리아 학자들이 알타무라에서 아직 출토되지도 않은 고인류 화석을 흙 속에 묻힌 상태에서 스캔해 생김새를 파악한 일이다. 2022년에는 데니소바 동굴에서 발굴한 흙에서 데니소바인과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를 추출했다. 연구자들은 데니소바인이 동굴에 남긴 똥이나 오줌이 흙으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본다.

스캔하고 똥오줌 스민 흙 유전자 뽑고

책은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오늘의 모습으로 있는지”에 관한 새로운 문제, 새로운 접근 방식을 두루 안내한다. ‘사냥 가설’ ‘킬러 유인원’ ‘동아시아 기원 인류종’ 같은 가설이나 ‘네안데르탈인의 지능’ ‘거인족의 존재’ 같은 대중의 오랜 관심사도 정리한다.

거인족? 고인류 역사에 몸집이 큰 거인족이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현생인류의 어금니보다 더 큰 어금니를 가지고 있던 화석종이 있을 뿐이다. 큰 어금니도 큰 몸집보다는 나무껍질이라도 먹어야 하는 척박한 환경의 징표일 가능성이 있다.

‘킬러 유인원 가설’은? 고인류학자 C K 브레인은 남아프리카의 스와트크란스 동굴에서 발견된 파란트로푸스 로부스투스 머리뼈 뒤통수의 구멍이 고양잇과 동물의 송곳니가 남긴 흔적이라고 봤다. “인류의 조상은 막강한 포식자가 아니라 포식자의 먹잇감이었다는 발상의 전환을 가져왔습니다. 강자에서 약자로 일련의 연구 결과가 보여주는 인류 조상의 모습은 공격적이고 살상 무기를 휘두르는 킬러 유인원이 아니라, 맹수와 맹금에게 잡아먹히는 먹잇감입니다. 인류의 기원은 공격성을 지니고 태어나 무기를 휘두르며 돌진하는 포식자에게서 찾을 수 없습니다. 작은 몸집으로 두 발로 서서 걷다가 맹수를 만나면 나무 위로 도망가고, 미처 피하지 못해 먹이가 된 나약한 모습이 지금 지구 위를 뒤덮은 사람의 기원이었습니다.”

킬러 유인원? 최상위 포식자?

‘사냥 가설’은 “고인류가 고기를 즐겨 먹음으로써 몸과 머리가 커졌고, 최상위 사냥꾼이 될 수 있었으며, 먹잇감을 쫓아 아프리카에서 유라시아로 퍼져나갔다”는 것이다. 이상희는 근래 이 가설이 조금씩 무너진다고 말한다. 중국 저우커우뎬에서 호모 에렉투스 화석과 함께 발견된 동물 뼈에는 짐승 이빨 흔적이 난 다음에 고인류의 돌날 흔적이 새겨졌다. 이상희는 “뛰어난 사냥꾼이 되었지만 여전히 다른 짐승이 먹고 지나간 찌꺼기도 먹었다는 뜻”이라고 했다. “이는 사냥이라는 새로운 기술이 기존의 기술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더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왼쪽부터 호모 에르가스테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루시) ,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동아시아 제공

“인류가 곤충식을 통해 고칼로리를 확보했다”는 고인류학자 줄리 레스닉의 주장도 아울러 소개한다. 곤충식이나 나무껍질을 먹는 걸 두고 다른 제대로 된 먹거리가 없어 먹었다는 게 유럽 중심의 생각이다. 이상희는 “우리나라 문화에서도 불과 수세대 전까지 메뚜기를 잡아먹는 것은 평범한 일이었다. 지금도 곤충식을 하는 문화권이 적지 않다”고 했다.

약 260만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가르히 화석종과 함께 발견된 동물 뼈에 칼날 자국이 남았다. 이때 돌을 깨서 날을 세운 찍개는 산짐승을 잡는 사냥 도구라기보다는 사체 처리 도구였다. “상위 포식자가 한 차례 먹고 난 다음 하이에나와 같은 사체 처리반과 경쟁하여 두꺼운 뼈를 깨고 그 안에 있는 골수 혹은 두뇌를 먹은 것”이다.

네안데르탈인이 그린 것으로 확인된 파시에가 동굴 벽화. ⓒ C.D Standish, A.W.G. Pike and D.L. Hoffmann
지극히 사람다운 고인류 네안데르탈인

이상희는 유럽 중심, 현생인류 중심의 생각이나 고인류에 대한 ‘단선적인 해설’과 고정관념을 깨려 한다. 예를 들어 네안데르탈인은 인지 능력이 뒤떨어졌다고 가정하는 연구가 많다. 네안데르탈인은 벽화를 그리고, 사슴 발가락뼈에 기하학적인 문양을 새겼다. 사냥한 맹금류 발톱으로 장신구를 만들어 몸에 걸쳤다. 꽃잎을 뿌리면서 죽은 이를 애도했다. 시베리아의 오클라드니코프 동굴과 차기르스카야 동굴에서 확인한, ‘네안데르탈인의 첫 가족’에 관한 2022년 논문 내용도 소개한다. 이상희는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연구가 점점 진행되면서 우리가 바라보는 네안데르탈인의 모습도 그에 따라 변화해왔다. 단순히 이랬다저랬다 하는 게 아니라 단편적으로 해석할 수 없는 다양하고 입체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네안데르탈인은 지극히 ‘사람다운, 고인류종’”이라고 했다.

이상희는 네안데르탈인 화석에서 추출한 유전체를 분석한 결과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 사이에 유전자 교류가 있었다는 발견도 다룬다. 1990년대까지 네안데르탈인이 현생인류에게 아무런 유전자를 남기지 않은 채 멸종한 화석종이라는 입장이 강력한 가설로 지지받았다.

아프리카에서 180만년 전에 기원한 호모 에렉투스가 100만년을 지나고서야 아프리카 밖 지역으로 확산했다는 가설도 깨졌다. 이상희는 “호모 에렉투스가 유라시아에서 기원했다는 아시아 기원론이 일말의 고려할 가치도 없는 가설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했다.

동남아시아 살던 뇌용량 작은 고인류가 그린 벽화?

동굴 벽화가 유럽인의 전유물이 아님을 보여주는 논문도 나왔다.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에서 발견된 4만4000년 전의 벽화에는 동물과 사람이 혼합된 형태인 반인반수가 그려졌다. 호모 사피엔스였다면 4만~5만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동남아시아까지 확산했다는 놀라운 결론이 나오게 된다. 다른 고인류였다면? 이상희는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일 가능성도 생각해본다. 1m 내외의 작은 키에 두뇌 용량은 호모 사피엔스의 4분의 1이고, 침팬지보다 용량이 작은 고인류다. 이상희는 “호모 플로레시엔시스가 벽화를 그렸다면 추상적인 예술에도 큰 머리가 꼭 필요했던 것은 아니라는 충격적인 결론이 가능하다”고 했다.

이상희는 세계 최초의 벽화가 나온 곳이 프랑스든 인도네시아든 중요하지도 흥미롭지도 않다고 말한다. “현생인류가 아닌 고인류가 아시아에서 만든 문화요소라는 사실은 사람다움이 어느 특정 지역, 특정 시대에서 시작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했다. 그는 “21세기 우리가 이제 주목해야 할 것은 호모속이 보여주는 두뇌 용량의 증가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라고도 했다.

이상희는 “인류의 진화는 한 줄로 나란히 서서앞으로 행진하는 모습도, 곁가지와 본가지로 갈라져서 울창한 아름드리나무가 되어 뻗어가는 모습도 아닙니다. 차라리 갈라졌다가 다시 만나고 다시 갈라지는 강줄기의 모습에 가깝습니다”라고 말한다. 사진은 시베리아 레나강의 삼각주를 촬영한 항공사진. 출처: NASA Goddard Space Flight Center. 동아시아 제공
‘나무식 진화’는 부족한 은유, 다양한 집단, 다양한 기원이 호모 사피엔스 만들어

이상희가 새로운 발견과 이론에서 강조하는 건 쾌도난마로 정리할 수 없는 인류 진화의 역사다. 그는 “단일한 인류 계통이 존재했던 시기는 결코 길지 않았다. 반대로 수백만년의 인류 진화 역사를 거치면서 여러 인류 계통이 동시에 존재했던 적이 많았다”고 말한다. 20세기 전반 사람들 생각을 지배한 ‘계단식 진화’나 20세기 후반의 ‘나무식 진화’는 “실제로 일어난 일을 표현하기에는 모자라는 은유”라고 했다. “인류의 진화는 한 줄로 나란히 서서 앞으로 행진하는 모습도, 곁가지와 본가지로 갈라져서 울창한 아름드리나무가 되어 뻗어가는 모습도 아닙니다. 차라리 갈라졌다가 다시 만나고 다시 갈라지는 강줄기의 모습에 가깝습니다.” 그는 “호모 사피엔스는 다양한 집단의 다양한 기원이 만들어낸 모습”이라고 했다. “새로운 발견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그림을 바라보는 프레임의 전환”도 강조한다.

아울러 “지구상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에 속한다”는 명제가 한때 성립하지 못한 사실도 다룬다. 유럽인이 각 대륙에 진출할 때 원주민 사이에서 생식이 일어나고 아이까지 낳아 길렀는데도 “나와 같은 호모 사피엔스에 속할까?”라는 질문이 나왔다. 이상희는 “생물학적인 관심이라기보다는 신대륙을 식민지로, 원주민을 노예이자 착취 대상으로 삼고자 했던 의도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생물학, 인류학에서 ‘단일한 우리 한민족’은 없다

이상희는 책 마지막에 ‘검은모루 고인류 유적’ ‘력포 사람’ 등 한반도의 고인류 문제를 2장에 걸쳐 다룬다. 그는 고인류를 두고 ‘한민족’ ‘한핏줄’의 기원을 찾으려는 시도를 경계한다. 이건 산수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금 시대를 사는 개개인은 저마다 2명의 부모가 있다. 3대째 걸러 올라가면 조부모는 4명, 4대째 증조부모는 8명이다. 10대째 조상은 512명이다. 그 위로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20대째 조상은 104만8576명이 된다. 한 세대당 20년이라고 치면 20대째의 조상이 살던 시기는 약 380년 전 조선 중기다. 단군이 5000년 전 조상이면 200~250대째 조상이다. 200대 조상까지만 올라가도 60자리의 수가 된다. 그는 “1000년을 넘으면 더는 조상의 의미가 없게 된다”고 말한다.

동북아시아의 지형도와 고인류, 고고학 유적 지도다. 2만 년 전 150센티미터 낮아진 해안선을 기준으로 만들었다. 서해가 사라지고 한반도는 육로로 서해안과 아시아 대륙에 연결된다. 지도에 숫자로 표시된 유적은 다음과 같다. 1. 데니소바 2.살크히트 3. 진뉴샨 4.티엔위엔 5.저우커우뎬 6.쉬지아야오 7.란티안 8.슈창 9.따리 10.난징 11.허시엔 12.후앙롱 13. 원시엔 14마바 15.따동 16. 지렌동 17.라이빈 18. 만달 19. 룡곡 20. 력포 21. 두루봉 22. 미나토가와 23. 야마시타-초 24. 시라호-사오네타바루. 동아시아 제공

이상희는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 등을 인용하며 “애초에 한민족이 단일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 자체가 허황된 이야기”라고 했다. “현대 인류의 서식지는 지구 전역이고, 인류 사이에는 넘어설 수 없는 벽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 민족’이라는 개념은 그 한순간에만 존재할 뿐 언제든지 허물어지고 구성원이 바뀔 수 있는 취약한 개념입니다.” ‘한민족’은 생물학적인 실체가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개념일 뿐이다. “누가 한민족에 속하는지는 생물학으로 연결된 조상과 자손의 관계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생물학적 조상 중 특정한 사람을 조상으로 인정하고 다른 사람은 조상에서 제외하는 사회적 관계에서 결정된다”고 했다. 결론은 다음과 같다. “한반도의 고인류를 찾고 연구하는 일은 단일 민족의 기원을 찾는 일이라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국경이 없던 시절, 바다가 땅이었던 시절에 지금의 한반도에서 살고 있던 고인류는 한민족이 아니라 인류였다는 사실을 다시 살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상희 미국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대학교 인류학과 교수. 동아시아 제공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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