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젊은 대장암' 1위?…"잘못됐다" 의료계가 내민 근거
전 세계적으로 젊은 암 환자가 증가하고 있다.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워싱턴대 건강평가연구소의 자료를 인용해 지난 1990년부터 주요 20개국(G20)의 20대 암 발병률이 다른 연령대보다 빠르게 증가한다고 보도했다. 그 중 특히 50대 미만에 나타나는 '조기 대장암'이 위협적이다. 1990~2019년 G20 국가의 15~39세 대장암 발병률은 70%나 급증해 이 연령대의 전체 암 평균 발병률(24%)을 크게 웃돌았다. 연구팀은 △설탕과 포화지방의 과다 섭취 △마이크로바이옴(장내 미생물 생태계)의 변화 △유전 등이 '젊은 대장암'의 증가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 '추정'했다.
우리나라는 50세 이전에 발병하는 조기 대장암의 발병률과 증가율이 가장 빠른 국가로 인식된다. G20 국가의 대장암 증가가 '남 일' 같지 않은 이유다. 두 가지 논문이 크게 작용했다. 지난해 국제학술지 란셋 소화기·간장학(Lancet Gastroenterology & Hepatology)에 실린 미국 연구팀의 논문에 따르면 우리나라 20~49세의 대장암 발생률은 인구 10만 명당 12.9명, 연평균 증가율은 4.2%로 두 항목 모두 조사 대상에 포함된 42개국 중 가장 높았다. 이보다 앞서 2019년 역시 저명한 학술지인 미국소화기학회지(The American Journal of Gastroenterology)에도 한국·일본·대만·홍콩 등 아시아 4개국을 대상으로 남성 직장암 증가율을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가 6%로 가장 높았다는 연구가 실렸다.
하지만, 사실 '젊은 대장암 세계 1위'라는 타이틀은 '추정치'에 불과하다는 게 국내 의학계의 입장이다. 이른 나이 대장암이 발병하는 사례가 과거보다 많긴 해도 '세계적인 수준'은 아니라는 의미다. 과도한 우려가 자칫 과잉 진료로 이어질 수 있어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30일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신애선 교수, 서울대병원 대장항문외과 정승용 교수, 국립암센터 암등록감시부 정규원 부장은 최근 대한암학회지에 투고한 논문을 통해 "우리나라의 조기 대장암은 2011년 정점을 찍고 이후 감소하고 있다"며 "한 때 발생률이 높았던 건 사실이지만, 현재 발생률과 증가율이 가장 높은 것은 아니다"고 발표했다.
논문에 따르면 란셋 계열지에 실린 연구는 2008~2012년, 미국소화기학회지의 논문은 1999~2014년 데이터를 기반으로 통계 작업을 진행했다. 보통 글로벌 연구는 다수의 나라를 포함하는 만큼 품질이 좋고, 가공이 가능한 데이터만 추려야 해 최신 자료를 반영하지 못한다.
우리나라는 2010년대 초반까지는 20~40대 대장암 환자가 많이 증가한 게 맞다. 하지만 남성은 2011년, 여성은 2012년을 기점으로 눈에 띄게 감소했고 2016년 이후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쳤다. 국립암센터 중앙암등록본부에 따르면 20~49세 대장암 연령 표준화 발생률은 2012년 10만명당 13.7명으로 정점을 찍었고 2019년 11.9명을 기록하고 있다. 대장암에 속하는 직장암·결장암 모두 비슷한 추세를 보인다.
즉, 가장 증가세가 높았던 시기의 데이터를 가지고 현재를 '추정'하다 보니 우리나라 젊은 층의 대장암 발생률이 전 세계 1위라는 불명예가 따랐다는 설명이다. 가장 최신(2008~2016년) 데이터를 반영한 세계보건기구 국제암연구소(IARC)의 글로보캔(GLOBOCAN, Global Cancer Observatory) 2020 암 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49세 대장암 발생률은 전 세계에서 남성은 8위, 여성은 17위, 남녀 통틀어 9위다.
지난해 유근영 중앙보훈병원장 등 32명의 전문가가 함께 암의 예방과 관리 등을 총망라해 담은 우리나라 첫 암 역학 교과서(한나래아카데미)에도 한국의 조기 대장암 증가는 사실이 아니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교과서에는 대장암에 대해 "연령군별로는 85세 이상과 25~29세를 제외한 모든 연령군에서 남녀 모두 2010년 이후 발생률이 감소했다"며 "전반적으로 대장암 발생률 감소에도 불구하고 50세 미만 대장암 환자의 증가는 미국, 캐나다, 호주, 대만, 일본, 홍콩 등에서 관찰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들 연구 결과와 다르게 50세 미만 연령군에서도 대장암의 발생률이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명시됐다.
국립암센터 정규원 부장은 "최근 발표된 연구라도 시작 시점은 과거라 예전의 글로보캔 등 글로벌 데이터를 활용했을 것"이라며 "한국은 대장암의 역학이 급격히 변화해왔기 때문에 과거 추세를 활용해 현재를 추정하는 것은 왜곡된 결과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젊은 층에게 대장암이 위협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강정현 강남세브란스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는 "어릴 수록 대장내시경 등 정기적인 검진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최근에는 코로나19로 병원 방문을 꺼리게 되면서 암이 악화한 상태에서 발견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늦게 암을 진단할수록 치료가 힘들다는 점을 명심하고 대장암 가족력이 있거나 복통·소화불량 등 이유 없는 소화기 증상이 지속하면 젊더라도 한 번쯤 정밀 검진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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