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북한과 중동의 시골 마을에는 비슷한 것들이 있다

안정식 북한전문기자 2023. 6. 30.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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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코리아정식] 17년 전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

2006년 4월의 일입니다. 방북 취재를 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평양 같이 많이 알려진 곳이 아니라 북한의 시골 지역이었습니다.
 
당시 대한광업진흥공사가 북한 측 파트너와 황해남도의 정촌 흑연광산을 공동개발하고 있었는데 준공식을 취재하는 일정이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시기인 당시까지만 해도 남북 회담이나 민간단체의 남북 교류 등을 통해 방북 취재할 기회가 종종 있었지만, 대체로 가볼 수 있는 지역은 평양과 개성, 금강산, 백두산 등 북한이 정책적으로 공개하는 곳에 한정됐습니다. 광산이면 시골 지역일 테니, 좀처럼 보기 힘든 북한의 시골 모습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보다 관심이 갔습니다.

2006년 4월 열린 황해도 정촌 흑연광산 준공식

 

황해도 가기 위해 1박 2일 이동

북한 방문은 일단 비행기로 이뤄졌습니다. 서울에서 방북단을 실은 전세기를 타고 서해 직항로를 통해 평양에 갔습니다. 평양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다음날 아침 황해도 정촌 흑연광산으로 출발했습니다.
 
정촌 광산은 평양에서 개성으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한참 타고 내려가다 시골길로 빠져 들어간 곳에 있었습니다. 평양에서 개성이 남쪽 방향이니 남한 쪽을 향해 한참 차를 타고 가다 옆길로 빠진 셈인데, 육로를 이용했다면 판문점에서 몇십 km 정도만 북쪽으로 올라가면 되는 거리였습니다.

남한에서 불과 몇십 km 떨어진 곳을 가기 위해 1박 2일에 걸쳐 서울에서 평양까지 비행기로, 또 평양에서 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한참을 달렸으니 참 소모적인 이동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양-개성 고속도로는 북한의 대표적인 고속도로입니다. 하지만, 남한의 고속도로처럼 생각하면 안 됩니다. 고속도로라고 하지만 곳곳이 패어있고 노면도 고르지 못합니다. 북한 운전사들도 조심조심 노면을 살펴가며 달리는데, 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속도를 내다가는 자칫 사고가 날 수 있습니다.

평양과 개성을 연결하는 북한 고속도로

 

북한 땅에서 갑자기 생각난 중동

평양-개성 고속도로에서 빠져 시골길로 접어들었습니다. 흙으로 된 비포장도로였습니다. 비포장도로에 진입하고도 한참을 갔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거리가 그만큼 멀었던 것인지 흙길이라서 속도가 나지 않았던 탓인지 확실치 않습니다.
 
북한에 올라가면 대개 이동 중에도 졸지 않습니다. 창 밖으로 보이는 북한 풍경을 관찰하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정촌 광산으로 가는 길은 좀처럼 보기 힘든 북한 시골 지역을 볼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에 눈을 크게 뜨고 창문 밖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중동 지역에 온 것 같다는 느낌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북한 땅에 와 있는데 왜 뜬금없이 중동이 생각났던 것일까요?
 

북한과 중동의 시골 마을에는 비슷한 것들이 있다

SBS 입사 이후 이런저런 이유로 중동 지역 출장을 많이 다녀왔습니다. 아랍에미리트, 요르단, 이라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역, 터키 등입니다. 2003년 제2차 걸프전 당시에는 종군기자로 이라크 바그다드를 취재하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중동의 분위기가 머릿속에 남아있는데, 북한의 시골 지역에 중동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중동에서 도시 외곽지역으로 나가게 되면 대부분 사막입니다. 사하라 같은 모래사막은 아니지만 돌과 자갈로 돼 있는 사막들이 길 옆으로 끝없이 펼쳐집니다. 사막 길을 가다 보면 중간중간 마을이 나타나는데, 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대개는 큰 초상화입니다.

중동 국가들 중에는 권위주의 국가가 많기 때문에 최고지도자의 권력이 절대적인 곳이 많은데, 마을마다 최고지도자의 대형 초상화를 입구에 걸어놓은 것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중동의 도심 외곽지역 특징은 굉장히 한가하다는 느낌입니다. 제가 타고 있던 취재차량이 마을에 들어서면 여기저기서 한가롭게 있던 주민들이 무슨 구경거리가 생겼나 하는 표정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오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중동의 시골 지역에서 동양 사람 보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닐 테니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고, 무엇보다 중동의 낮 기온은 30∼40도를 넘나들 정도로 매우 높아서 활기차게 움직이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 전반적으로 한적하면서 한가로운 모습, 이것이 중동의 시골 마을 이미지라고 할까요.
 
그런데, 북한의 시골 마을에서도 비슷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먼저, 북한의 시골 지역에는 산에 나무가 없었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겨울철 난방을 위해 나무를 베어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나무 없이 훤히 벗겨진 산의 모습들은 마치 사막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줬습니다.
 
길을 가다 중간중간 마을이 나오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김일성의 대형 초상화였습니다. 김일성이 신처럼 떠받들어지는 나라다 보니, 시골 마을에서 가장 높은 건물에 김일성의 초상화가 커다랗게 걸려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저를 포함해 광산 준공식 참석자들이 탄 차량 행렬이 연이어 지나가자, 협동농장에서 일하는 것처럼 보이던 주민들이 구경하느라 하나둘씩 일손을 놓기 시작했습니다. 활기차게 무엇인가가 돌아간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습니다. 평양에서 내려오는 차량들을 시골 마을에서 대규모로 볼 일이 별로 없을 테니 큰 구경거리가 생긴 것임에는 틀림없었겠지만 말입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안정식 북한전문기자 cs7922@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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