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 삭힌 KBS 예능, 출구가 안 보인다?

아이즈 ize 윤준호(칼럼니스트) 2023. 6. 30.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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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윤준호(칼럼니스트)

사진='1박2일' 방송영상 캡처

KBS 간판 예능은 무엇일까? 시청률로 따지자면 단연 '1박2일'이다. 7∼10% 정도의 전국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다. 탈(脫) TV 시대에 괄목할 만한 성과다.

그럼 질문을 바꿔 보자. 이는 긍정적인 신호일까? 부정적인 신호일까? '1박2일'은 지난 2007년 첫 방송됐다. 이후 16년의 세월을 거치며 시즌4까지 왔다. 한 프로그램이 이처럼 장수하는 건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그 긴 시간 동안 '1박2일'을 넘을 수 있는 KBS 예능이 등장하지 않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지상파의 현주소다.

KBS는 '1박2일' 외에도 장수 예능이 즐비하다.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전국노래자랑', '가요무대'와 같은 1TV 예능은 차지하더라도, '1박2일'과 더불어 KBS를 대표하는 또 다른 예능인 '불후의 명곡' 또한 2012년 첫 방송을 시작한 이후 11년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이 외에도 '살림하는 남자들'(7년), '옥탑방의 문제아들'(5년), '개는 훌륭하다'(4년) 등이 긴 생명력을 자랑한다. 

요즘 예능은 시즌제가 대세다. 12회 혹은 8회 정도로 편성된다. 대중의 반응이 괜찮으면 다음 시즌으로 돌입한다. 재미없으면 여지없이 사라진다. 시즌제 예능은 굳이 '폐지'라는 꼬리표가 붙지 않는 것도 장점이다. '시즌 종료' 정도로 순화된다. 다음 시즌이 나오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대중의 뇌리에서 잊힌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레거시 미디어인 지상파가 장수 예능을 고집하는 건 태생적 한계이기도 하다. 안정적 편성표를 채우기 위해 특정 프로그램을 띠편성하고 이를 단단하게 유지한다. '편성=시청자와의 약속'이라는 신념 하에 프로그램을 이유없이 휴방하거나 폐지하는 일을 극도로 꺼렸다. 이런 안정성은 광고주에게도 믿음을 주는 대목이었고, 시청률과 시청자 반응이 광고 판매를 가늠하는 지표가 됐다.

사진='홍김동전' 방송영상 캡처

하지만 지난 10년 사이 방송가는 격변의 시기를 맞았다. 시청률은 전성기 때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현재는 10% 미만인 '1박2일'가 최고의 주가를 누리던 시기 시청률은 30%가 넘었다. 게다가 시청률은 더 이상 화제성의 지표가 되지 못한다. TV 앞에서 콘텐츠를 즐기는 이들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KBS를 비롯한 지상파들은 이런 흐름에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조금 더 따갑게 이야기하자면, 이명한·나영석 PD가 떠난 이후 좀처럼 발전이 없다. '1박2일'은 이명한 PD가 일구고 나영석 PD가 꽃피운 프로그램이다. 당시 예능가는 '리얼 버라이어티'의 시대였다. KBS에 '1박2일'이 있었다면, MBC에는 '무한도전', SBS에는 '패밀리가 떴다'라는 대항마가 존재했다. 이후에도 예능 트렌드는 수차례 바뀌었다. 육아 예능의 시대를 거쳐 먹방의 시대, 관찰 예능의 시대, 트로트 오디션의 시대가 이어졌다. KBS는 '슈퍼맨이 돌아왔다'로 육아 예능의 시대에는 대처했으나 그 이후에는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현재 육아 예능은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유일하다. 다른 채널은 일찌감치 폐지했다. 경쟁자가 없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두각을 보이지 못한다. 2013년 막을 올린 후 현재 1∼3% 시청률을 오가는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고집하는 KBS의 속내가 궁금하다. 

KBS를 떠난 후 나영석 PD의 행보를 찬찬히 훑어보면, KBS의 제자리걸음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나 PD는 '꽃보다 할배', '삼시세끼', '윤식당' 등 다양한 신규 프로그램과 여기에 파생되는 스핀오프 프로그램으로 예능 트렌드를 주도했다. 이와 동시에 '신서유기' 시리즈로 기존 리얼 버라이어티의 명맥을 이었다. '채널 십오야'로 유튜브 시대에 발맞췄고, 최근 제작하고 있는 '지구오락실'은 방송가에서 가장 '핫'한 프로그램으로 손꼽힌다. 여기에 다시 한번 묻게 된다. 나 PD가 KBS를 퇴사하지 않았다면, 과연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었을까?

사진='최정훈의 밤의 공원' 방송 영상 캡처

물론 이를 나 PD 개인의 역량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지난 14일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은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코이'라는 물고기가 있다. 환경에 따라 성장의 크기가 달라진다는 '코이의 법칙'으로도 알려져 있다. 작은 어항 속에서는 10㎝를 넘지 않지만 수족관에서는 30㎝까지, 그리고 강물에서는 1m가 넘게 자라나는 그런 고기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게 더 많은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이 발언에 비유하자면, 나 PD는 KBS라는 환경에서 벗어나면서 더 크게 자랐다고 볼 수 있다. 결국 KBS라는 채널 자체의 체질이 개선돼야 소속 PD들의 역량도 끌어올리고 콘텐츠도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나름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홍김동전'의 경우 시청률은 1%대지만, 젊은 시청자들 사이에서 비교적 화제성이 높다. 또한 '더 시즌즈-박재범의 드라이브'에 이어 '더 시즌즈-최정훈의 밤의 공원' 등 보다 젊은 감각의 음악 프로그램을 시도하고 있다. 

이제는 결과물로 보여줘야 한다. KBS는 최근 수신료 분리 징수 방안이 추진되며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이런 흐름을 거부할 수 없다면, KBS는 수신료 없이 승부하는 타 채널과 마찬가지로 콘텐츠의 힘으로 어깨를 견줘야 한다. 더 이상 익숙함과 안정감만 추구해서는 콘텐츠 춘추전국시대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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