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 나엘에 총 쏴 살해한 佛 경찰 기소…어머니 “정의의 심판을”
프랑스 파리 외곽 낭테르에서 교통 검문을 피해 달아나던 10대에게 총을 쏴 숨지게 만든 경찰관이 살인 혐의로 예비 기소돼 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받게 된다고 검찰이 29일(현지시간) 밝혔다.
올해 38세인 이 경찰관은 지난 27일 오전 8시 30분쯤 낭테르의 한 도로에서 교통 법규를 위반한 나엘 M(17)의 차를 멈춰 세웠다가, 나엘이 차를 몰고 출발하자 총을 쏴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열어 경찰관 둘을 조사하고, 영상을 분석해보니 해당 경찰관이 총기를 사용할 법적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부검 결과 나엘의 사인은 왼팔과 흉부를 관통한 총알 한 발이었으며,나엘이 운전한 차 안에서는 마약이나 위험한 물건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고 일간 르파리지앵, BFM 방송 등이 전했다. 당시 나엘의 차 안에는 둘이 더 있었는데 한 명은 달아났고, 다른 미성년자는 불잡혀 조사를 받은 뒤 곧 풀려났다.
경찰관 둘은 나엘이 위험하게 운전했기 때문에 길 한쪽으로 불러세웠고, 운전자가 달아나려는 것을 막으려고 총을 쐈으며, 당시 위협을 느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온 영상을 보면 경찰관 한 명이 운전석을 향해 총구를 겨눈 채 대화하던 중 차가 진행 방향으로 급히 출발하자 방아쇠를 당기는 장면만 담겼다. 총성 한 발이 울린 뒤 나엘이 몰던 차는 수십m 이동했고 기둥에 부딪힌 뒤 멈춰섰다. 현장에 출동한 구급대원이 처치를 시도했으나, 나엘은 숨을 거뒀다.
경찰의 고질적인 인종차별 행태를 보여준다며 프랑스 전역에 분노가 확산, 낭테르를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경찰을 규탄하는 시위가 사흘째 이어졌다. 나엘이 알제리계란 점도 아프리카 출신 이민사회를 격분케 했다.
나엘을 위한 정의를 외치며 검정색 옷을 입고 길거리로 나온 시위대는 전날 밤 경찰서와 시청 등 공공기관에 돌 등을 던졌고, 거리에 주차된 자동차와 쓰레기통, 트램 등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경찰 조직을 관장하는 제랄드 다르마냉 내무부 장관은 이틀째 밤과 사흘째 새벽 사이에 툴루즈, 디종, 리옹 등에서 180여명을 체포했고 경찰 170명이 다쳤다며 폭력은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사흘째 오후에도 낭테르에서 나엘을 추모하는 행진이 있었다. 나엘의 어머니는 ‘나엘을 위한 정의 27/06/23’이라고 새긴 흰색 티셔츠를 입고 행진을 이끌었다.
나엘의 어머니는 프랑스 5 방송과 인터뷰에서 “저는 오직 제 아들을 죽인 남자, 단 한 사람에게만 화가 나 있다”며 “그 남자가 문제이지 경찰 시스템 자체를 비난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녀는 경찰이 아들을 차에서 나오게 만드는 다른 방법이 분명히 있었지만 경찰관은 가슴 가까이에 총을 쐈다며 “아이들을 그렇게 죽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규탄했다.
경찰 추산 6200명이 참여한 행진은 평화롭게 시작됐지만 시위대 일부가 경찰을 향해 발사체를 던졌고, 경찰은 최루가스를 분사하면서 대치하는 등 긴장이 고조됐다고 AFP 통신이 전했다. 사흘째 시위 도중 체포된 사람은 421명이라고 르 피가로는 전했다.
파리 등 수도권을 품고 있는 일드프랑스 광역주는 이날 밤 9시 이후 트램과 버스 운행을 중지했고, 파리 15구와 가까운 클라마르는 밤 9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통행을 금지했다. 콩피에뉴도 이날 밤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16세 미만 미성년자는 부모나 법적 대리인을 동반하지 않은 외출을 제한했고, 뇌이쉬르마른도 일부 지역에서 야간 통금을 시행했다.
다르마냉 장관은 사흘째 시위가 열린 이날 파리에만 5000명, 프랑스 전역에 4만명의 경찰과 군경찰을 배치해 폭력 사태에 대비하겠다고 밝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오전 긴급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국가 기관에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정당화할 수 없다”며 나엘을 추모하는 행사가 “배려와 존중” 속에서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나엘의 참변은 지난 2005년 흑인 10대 소년 둘이 파리 외곽에서 경찰 검문을 피해 달아나다 감전사한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도 인종차별과 빈곤에 시달려 불만이 쌓인 이민자 사회에 분노를 확산시켜 폭동이 두 달이나 이어지며 6000명이 체포됐다.
우파 공화당의 에리크 시오티 대표는 시위가 벌어지는 지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는 아직 검토할 단계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주프랑스 한국대사관은 홈페이지와 SNS에 올린 공지문을 통해 이 같은 시위 상황을 알리고 프랑스에 체류하거나 방문 중인 국민들에게 신변 안전에 각별히 유의할 것을 당부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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