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법, 대학입학 소수인종 우대정책 위헌 판결… 둘로 갈라진 미국

서필웅 2023. 6. 30.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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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학이 입학시 소수 인종을 우대하는 정책인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에 대해 연방 대법원이 위헌 판결을 내리며 미국 사회가 또다시 둘로 갈라졌다. 보수 진영은 판결을 환영했지만 진보 진영은 크게 반발하며 최근 보수화된 판결을 연이어 내놓고 있는 대법원에까지 비판의 화살을 날리고 있다.

뉴욕타임스(NYT) 등 현지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미 대법원은 29일(현지시간) ‘공정한 입학을 위한 학생들’(Students for Fair Admissions·이하 SFA)이 소수인종 우대 입학 제도로 백인과 아시아계 지원자를 차별했다며 노스캐롤라이나대를 상대로 제기한 헌법소원을 각각 6대 3으로 위헌으로 결정했다. 이어 하버드대를 상대로 제기한 헌법소원도 6 대 2로 위헌 판결했다. 하버드대 판결에서는 9명의 대법관 가운데 커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이 해당 대학과 관련성을 이유로 결정에 참여하지 않았다.

29일(현지시각) 워싱턴 대법원 밖에서 시위대가 대법원의 '소수인종 우대입학 위헌' 결정에 항의하고 있다. 워싱턴=AP뉴시스
SFA는 대학 신입생을 선발할 때 소수인종을 우대하는 정책을 적용해 백인과 아시아계 지원자를 차별했다면서 공립대인 노스캐롤라이나대와 사립대인 하버드대 등 두 명문대를 상대로 2014년 각각 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과 2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당시 법원은 대학이 인종별로 정원을 할당하거나 수학 공식에 따라 인종 분포를 결정할 수는 없지만 여러 요인 중 하나로 인종을 고려할 수 있다고 한 기존 대법 판례를 이유로 두 대학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이날 헌법소원은 기존 대법 판례를 완전히 뒤집었다. 대법원장인 존 로버츠 대법관은 다수 의견에서 “너무 오랫동안 대학들은 개인의 정체성을 가늠하는 기준으로 기술이나 학습 등이 아니라 피부색이라는 잘못된 결론을 내려왔다”면서 “우리 헌정사는 그런 선택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학생들은 인종이 아니라 개개인의 경험에 따라 대우해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소수 의견에서 “수십 년 선례와 중대한 진전에 대한 후퇴”라고 비판했다.

이에 따라 1960년대 민권운동의 성과 가운데 하나로 꼽힌 소수인종 우대 입학 정책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입학제도뿐 아니라 최근 미국 사회에 점점 확산하고 있는 인종적 다양성을 고려하는 다른 정책도 이번 판결로 도전을 받게 됐다.

최근 미국 사회는 ‘정치적 올바름(PC)’를 위해 사회·문화적 제도와 상품 등에 인종적 다양성을 고려하는 21세기 이후의 흐름에 반발하는 보수적 움직임이 크게 확산해왔다. PC주의를 조롱하던 용어인 ‘워크(woke·깨어있음)’는 어느새 보수진영의 주요 정치 구호가 됐고, 내년 대선을 준비하는 공화담 잠룡들조차 이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미국 진보와 보수진영은 인종 문제를 중심으로 둘로 갈라졌다.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입시 문제와 결부된 이번 미 대법원 판결은 이런 극심한 갈등에 기름을 부을 만한 결정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곧바로 “강력히 반대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는 위헌 결정 이후 기자회견에서 대법원 결정이 “수십 년의 판례와 중대한 진보를 되돌리는 것”이라는 소수 의견에 동의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우리 대학은 인종적으로 다양할 때 더 튼튼하다”면서 여러 인종의 광범위한 재능을 활용해야 국력이 강화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는 이 결정이 최종 결정이 되도록 둘 수 없다”면서 미국은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를 준다는 이상을 가진 나라로 “대법원이 판결할 수는 있지만 미국이 상징하는 것을 바꿀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흑인 정치인들도 강하게 반발했다. 흑인 상원의원 3명 중 1명인 코리 부커 의원(뉴저지)은 성명에서 “소수인종 우대입학은 제도적인 장벽을 허무는 도구였으며 우리는 계속해서 모두를 위한 포용성과 기회라는 우리의 이상을 진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행크 존슨 하원의원(조지아)도 “모두에게 평등하고 접근 가능한 교육에 치명적인 타격"이라면서 "대학 입학에서 인종을 평가 요소로 고려하지 않은 것은 평등을 추구하지 못한 학계의 제도적인 실패를 눈감아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성명을 내고 “(소수 인종 우대 정책이) 모든 정책과 마찬가지로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여러 세대에서 나랑 (아내) 미셸 같은 학생들이 우리도 (대학에) 속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게 했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을 소수 인종 우대 정책의 수혜자라고 꾸준히 밝혀왔었다.

반면 공화당 소속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눈)에 “미국을 위해 훌륭한 날”이라며 “우리는 완전히 능력에 기반을 둔 제도로 돌아가는 것이며 이게 옳은 길”이라고 밝혔다. 

이날 위헌 결정에 찬성한 대법관 6명 중 3명은 전임 트럼프 행정부 때 임명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번 위헌 판결이 나올 수 있는 정치적·사법적 환경을 만든 셈으로 최근 대법원이 보수적 판결을 연이어 내놓으며 진보 진영이 크게 우려했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공화당 잠룡 마이크 펜스는 이들 대법관 3명을 임명하는 데 역할을 해 “영광”이라며 “대통령이 되면 워크와 진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법을 비틀지 않고 엄격히 적용하는 대법관들을 계속 임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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