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기세포 배양 인간배아 '14일 이상 금지' 논란 '가속도'
14일까지 성장하는 인간배아 모델이 나와 윤리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인간 배아를 14일 이상 실험실에서 배양하는 것을 금지하는 이른바 ‘14일 룰’은 한국과 영국 등 최소 12개국에 적용되고 있다. 14일은 척추의 기원이 되는 원시선이 형성되는 등 배아가 인체로 본격 발달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시점이어서 생명윤리에 문제가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줄기세포를 활용한 인공 인간배아 배양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같은 규제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과학계는 임신 초기 유산의 원인이나 태아의 발달과정을 자세히 연구하기 위해선 14일 이상 배양된 인간배아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 줄기세포 유전자 활용 인간배아 모델 제시
마그달레나 저니카고에츠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 연구팀은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27일(현지시간) 발표한 두 편의 논문을 통해 최대 14일까지 발달하는 인간배아 모델을 제시했다. 이 모델에 따라 배양된 인간배아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배아와 유사한 구조를 지녔다. 발달 단계에 따라 태반과 탯줄을 생산하는 세포를 형성하는 것이 확인됐다. 대뇌피질을 형성하는 기능은 없어 다음 발달 단계로 넘어가진 않는다. 저니카고에츠 교수 연구팀은 앞서 지난해 쥐의 줄기세포를 이용해 14일 이상 성장하는 인공 배아를 배양하는 데 성공한 바 있다.
연구팀이 제시한 인간배아 모델의 특징은 줄기세포 유전자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배아와 동일하게 난자와 정자를 합성하는 방식으로 인간배아를 만들었다. 연구팀의 모델은 유전자의 발현 속도를 조절하는 단백질을 극도로 활성화시키도록 조작된 줄기세포 2개를 결합하는 방식을 취했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배아에서 이 시기에 관찰되는 활동을 재현하기 위해 특정 유전자의 능력을 극대화했다는 것이다.
난자와 정자가 아닌 줄기세포를 사용한 이유는 ‘14일 룰’을 피해가기 위해서다. 각국의 인간배아 관련법은 정자와 난자의 수정을 통해 만들어진 인간배아가 14일 이상 발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줄기세포를 사용한 인간배아 모델은 이 규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게 연구팀의 주장이다.
● 인공배아 연구 허용 어디까지...윤리 논란 재점화
관련법을 피가는 인간배아 모델이 나오면서 인공배아 연구의 허용범위에 관한 논란에도 다시 불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과학계는 인간의 초기 발달, 선천적 질병의 원인, 임신 초기 안전한 약물 연구를 위해 14일 이상 성장하는 인간 배아 연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저니카-고에츠 교수 연구팀 또한 이번에 발표한 인공배아 모델을 활용하면 배아 세포의 발달과정을 살피고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요소를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21년 국제줄기세포학회(ISSCR)가 이같은 목소리를 반영해 인간배아를 14일 이상 배양하는 것을 허용하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지만 실제 연구 현장에 적용되진 못했다. 현행 한국생명윤리법도 원시선이 나타나기 전까지 발달한 인간배아만을 연구에 활용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 줄기세포 기반 인간배아는 자연생성 배아와 다르다는 지적도
생명윤리 논쟁과는 별개로 줄기세포 기반 인간배아 모델이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배아와 동일한 구조를 지닐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알폰소 마르티네즈아리아스 스페인 폼페우파브라대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에 대해 “배아가 지닌 세포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일부 유전자를 과잉 발현하는 구조에 불과할 뿐, 실제로 14일간 발달한 자연 배아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 아무것도 없다”며 비판적인 견해를 드러냈다.
연구팀은 이러한 지적을 인정하면서도 이번에 제시된 모델이 연구 현장에서 충분히 활용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연구팀은 “이번에 발표한 인간배아 모델의 목적은 자연 배아의 모든 구조를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배아 발달의 주요 단계 동안 특정한 세포의 변화를 연구하는 보완적인 도구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연구는 인간배아 연구와 관련한 윤리적 문제를 극복하는 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후속 연구를 통해 줄기세포 기반 인간배아 모델의 단점을 보완할 계획이다. 유전자의 발현 속도를 조절하는 단백질인 전사인자가 과하게 발현하면 세포 발달에 결함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배양법을 보완 및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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