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Pick] ‘라흐마니노프 탄생 150주년’

2023. 6. 30.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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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정열과 우수의 음악가’

라흐마니노프는 국내에서 꽤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음악가이다. 특히 그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 비발디의 사계 등과 함께 클래식 애호가들이 꼽는 명곡이다.
(사진 픽사베이)
#1 2011년, 호주의 매거진 『라임라이트』가 현존하는 유명 피아니스트 100인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다. 내용은 ‘자신이 우상으로 생각하는 피아니스트는 누구인가?’라는 것. 조사 대상자 100인의 피아니스트는 1위로 ‘라흐마니노프’를 꼽았다. 그리고 2위는 호로비츠, 3위는 리히터, 4위는 아르투르 루빈슈타인이고 5위가 에밀 길렉스였다. 사실 설문에서 1위로 뽑힌, 1943년 세상을 떠난 라흐마니노프는 생각보다 저평가받았던 인물이다. 하지만 21세기 들어와 그의 음악은 피아니스트뿐 아니라 대중들의 재평가와 사랑을 동시에 받기 시작했다.
#2 1996년 스콧 힉스 감독, 제프리 러쉬 주연의 영화 <샤인Shine>. 이 영화는 호주 출신의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헤일셋의 삶을 다룬 영화이다. 데이비드는 아버지의 엄격한 교육과 과도한 기대 속에 바이올리니스트로 성장한다. 아이작 스턴이 데이비드의 재능을 알아보고 미국으로 초청했지만 정작 아버지는 반대한다. 이에 데이비드는 홀로 영국 왕립음악원에 피아노로 입학을 추진한다.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영국으로 간 데이비드는 콩쿠르를 준비한다. 그가 준비한 곡은 연주자에게 ‘죽음의 곡’이라 불리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 데이비드가 준비한 곡을 들은 스승은 데이비드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곡은 불멸의 곡이야. 미치지 않고서야 이 곡을 연주할 수 없네!” 결국 콩쿠르에서 이 곡을 완주한 데이비드는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만다.
#3 2022년 6월19일,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 베이스퍼포먼스홀. 18세의 한국 청년 임윤찬이 반 클라이번 콩쿠르의 결선에 진출했다. 그는 두 곡을 연주했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3번과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이다. 임윤찬은 압도적인 테크닉, 오케스트라 연주를 뚫고 나오는 힘, 그리고 샘처럼 솟는 연주 지구력과 홀을 지배하는 풍부한 표현력으로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마린 앨솝의 감동과 함께 청중의 기립 박수를 이끌었다. 그리고 대회 역사 60년 만에 최연소 우승자가 된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냉전시대인 1958년 소련 모스크바에서 열린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한 미국인 반 클라이번을 기리는 콩쿠르로 4년마다 한 번씩 열리고 있다. 지난해 개최된 제16회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5년 만에 열렸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세계 3대 콩쿠르인 쇼팽 콩쿠르, 차이콥스키 콩쿠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 비견될 만큼 중요하고 권위 있는 콩쿠르이다.
#4 2022년 7월12일, 반 클라이번 재단은 “오늘이 반 클라이번(1934년 7월12일~2013년 2월27일)의 88번째 생일”이라고 전하며 “지난 콩쿠르의 우승자인 임윤찬의 결선 라흐마니노프 연주 영상이 지난 3주 동안 480만 건의 조회수를 올리며 이 곡을 연주한 유튜브 영상 중 가장 많이 시청된 작품이 됐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의 최다 조회 연주곡은 1978년 주빈 메타가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연주한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의 연주 영상이다. 이 영상은 2009년 유튜브에 올려져 417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의 임윤찬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 연주 영상 유튜브 조회수는 2023년 6월15일 기준, 1,160만 회를 기록하고 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입니다(사진 픽사베이)
한국인이 사랑하는 음악가
위 내용의 공통점은 바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라흐마니노프다. 그는 피아니스트들이 도전하고 싶은 곡의 작곡가이자 연주가이다. 그의 곡 중 특히 피아노 협주곡 3번은 ‘악마의 협주곡’, ‘파아니스트의 무덤’으로 불릴 정도로 극도의 테크닉과 집중력 그리고 이에 못지않는 표현력을 갖춰야 제대로 연주할 수 있는 곡으로 불린다.
라흐마니노프와 친분이 두텁고 서로 존경하는 피아니스트 요제프 호프만. 사실 라흐마니노프는 그를 위해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작곡하고 이 곡을 그에게 헌정했다. 하지만 요제프 호프만은 ‘이 곡이 나와는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유난히 손이 작은 요제프 호프만으로서는 한 손으로 건반 13개 이상을 지배해야 하는 이 ‘악마의 협주곡’을 연주할 수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요제프 호프만은 라흐마니노프가 세상을 떠난 2년 후 이렇게 라흐마니노프를 회상했다. ‘그는 강철의 팔과 황금의 심장으로 만들어진 사람이었다. 나는 눈물 없이는 전지전능한 그의 존재감을 생각할 수조차 없다. 왜냐하면 나는 그의 탁월한 예술성을 존경했을 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도 그를 사랑했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사진 픽사베이)
그리고 또 한 명의 불세출의 피아니스트 블라드미르 호로비츠를 떠올려 보자. 인간이 내는 소리가 아닌 듯한 초당 10번의 건반 연주와 너무나도 성숙하고 완벽한 표현력으로 생전 라흐마니노프도 그의 연주를 듣고 감동했다. 라흐마니노프는 “내 피아노 협주곡은 이렇게 연주되어야 한다고 항상 꿈꿔왔는데 살아서 이런 연주를 들을 줄은 기대치도 않았다”고 극찬하며, 자신의 모든 작품의 편집권을 호로비츠에게 맡겼다. 호로비츠는 우크라이나 키이우 출신이다. 미국에서 그는 1953년 미국 데뷔 25주년 연주, 1965년 카네기홀 리사이틀, 그리고 1978년 1월, 미국 데뷔 50주년 기념 카네기홀 연주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했다.
라흐마니노프는 국내에서 꽤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음악가이다. 특히 그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클래식 애호가들이 꼽는 곡에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 비발디의 사계 등과 함께 항상 상위권을 유지하는 명곡이다. 국내 팬들은 그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사랑한다. 이 곡은 우리에게는 그동안 드라마, 영화, CF 등에서 많이 귀에 익었고 특히 다단조 2악장은 미국의 팝가수 에릭 카먼의 곡 ‘All By Myself’에 차용되었다. 여담이지만 에릭 카먼은 이 곡의 저작권이 해제되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곳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미국에서만 해당되고 미국 밖에서는 저작권 보호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에릭 카먼은 자신의 곡에 라흐마니노프의 이름을 크레딧에 공동 기재했다. 또한 라흐마니노프 측에 곡의 수입 12%를 배분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또 다른 곡인 ‘Never Gonna Fall In Love Again’도 역시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 3악장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이처럼 현대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던 라흐마니노프가 요즘 더 각광을 받은 것은 아무래도 작년 임윤찬이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난 뒤이다. 특히 임윤찬이 결선에서 연주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은 본래 유명했던 피아노 협주곡 2번과 함께 부쩍 한국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더구나 올해는 라흐마니노프 탄생 150주년이다. 올해 초부터 국내를 비롯해 세계 각처에서 그의 탄생 150주년을 맞아 다채로운 행사가 많이 열리고 있다.
지난 5월10일부터 12일까지 임윤찬은 뉴욕 링컨센터 데이비드 게펜홀에서 지휘자 제임스 개피건이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연주회를 열었다. 40여 분간 폭풍처럼 몰아치는 연주가 끝나자 2,200여 명의 관객은 모두 기립 박수를 쳤다. 임윤찬은 연주회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했다. 이 연주회의 3회 공연 표는 일찍 매진되었고 공연 당일 서서 보는 ‘스탠딩 티켓’을 얻기 위해 아침부터 긴 줄이 이어졌다고 한다. 이 연주회의 포커스는 당연히 임윤찬이다. 그의 천재성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명연주를 듣고 싶은 욕망이 매진을 불렀다. 하지만 그가 무엇을 연주했는지도 매우 중요하다. 임윤찬의 공연에 대해 『뉴욕타임즈』는 ‘10대 피아노 스타 임윤찬, 뉴욕에 오다’라는 제목과 함께 “이 곡이 이렇게 재미있는 곳이었나? 임윤찬의 연주는 말 그대로 꿈같은 연주였다”며 극찬했다. 한마디로 천재 연주자가 천재 작곡가의 곡을 만나 그 화려한 꽃을 활짝 피운 것이다.
(사진 픽사베이)
낭만, 우수, 우울을 음악적 감성으로 표현
세르게이 바실리예비치 라흐마니노프, 그는 1873년 러시아의 노브고르드 스타로루스키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1943년 3월28일, 69세에 미국 캘리포니아 베벌리힐스에서 숨을 거두었다. 태어날 당시 그의 집은 유복했다. 아버지는 지역 귀족이었고 어머니 역시 군 고위장교의 딸이었다.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적 재능은 일찍 시작되어, 4살 때 피아노를 연주하고 10세 이후 작곡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집안이 기울기 시작하며 불행이 찾아온다. 아버지의 파산, 부모의 이혼 그리고 형제의 죽음이 그의 성장기를 지배했다.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공부하던 그는 18세에 피아노과를, 19세에는 작곡과를 수석으로 마쳤다. 당시 라흐마니노프는 연주가보다는 작곡가가 되고 싶어 했다.
1897년, 24살의 라흐마니노프는 교향곡 1번을 발표한다. 하지만 이 초연은 대실패로 끝났다.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준비 부족도 원인이었지만 어쨌든 라흐마니노프에게는 처음 찾아오는 음악적 시련이었다. ‘모세가 이집트에 내린 7개의 재앙 중 하나 같은 곡’이라는 혹평에 충격을 받은 라흐마니노프는 우울증과 극도의 신경쇠약에 시달린다. 게다가 사촌동생 나탈리아와의 사랑도 나탈리아 부모의 반대에 부딪혀 문제가 생긴다. 라흐마니노프는 정신과 의사를 찾는다. 그의 이름은 니콜라이 달. 달과 만나면서 라흐마니노프는 조금씩 치유된다. 그리고 음악에 대한 열정도 살아난다.
1901년 라흐마니노프는 ‘크렘린의 종소리’라는 별칭을 얻은 도입부의 피아노 터치가 유명한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발표한다. 이 곡은 평단은 물론 많은 음악 팬들의 사랑을 받는다. 라흐마니노프는 이 곡을 자신의 재활을 위해 애써준 니콜라이 달에게 헌정한다. 그리고 1902년 라흐마니노프는 나탈리아와 결혼, 볼쇼이 극장에서 지휘자로 활동했다. 1909년에 미국을 여행하던 그는 문제의 곡이자 극악의 연주곡이라는 피아노 협주곡 3번을 발표했다. 그러나 그의 행복한 시간도 그리 길지 못했다. 지휘와 연주 활동을 이어가던 라흐마니노프 앞에 1917년 러시아 혁명이 닥쳤다. 귀족 출신이었던 그에게도 이 혁명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라흐마니노프는 노르웨이로 거처를 옮긴다. 그리고 요제프 호프만의 도움으로 1918년 미국으로 망명한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입니다(사진 픽사베이)
미국에서 연주자로 활동하던 그는 1926년 피아노 협주곡 4번을, 1931년에는 스위스에서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를 작곡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으로 스위스를 떠난 라흐마니노프는 미국에서 그의 마지막 작품인 ‘교향적 무곡’을 남겼다. 그리고 1942년 캘리포니아 베벌리힐스로 이주한 그는 이듬해 자택에서 사망했다. 그는 평생을 고국 러시아에서 연주하고 지휘하기를 원했고 자신도 모스크바에 묻히기를 원했지만 그의 유해는 뉴욕 켄시코 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
극악의 연주곡, 피아노 협주곡 3번
그의 피아노 협주곡은 연주가 대단히 어려운 곡으로 유명하다. 이처럼 대부분의 피아니스트들은 그의 협주곡 연주를 힘들어하지만 정작 그는 이 곡을 쉽게 연주했다고 한다. 물론 자신이 작곡한 곡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이런 극악의 연주가 가능했던 것은 그의 신체적 조건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라흐마니노프의 신장은 198cm로 장신이고 더구나 그의 손은 손가락을 펼치면 무려 30cm에 달했다고 한다. 해서 일부에서는 그가 긴 손가락, 장신의 특징을 지니는 마르판 증후군이라는 자신의 신체적 특성을 알고 있고, 거기에 그의 타고난 천재적 연주 실력을 더해 부러 이런 극악의 곡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이는 아니다. 그의 성격 자체가 과시욕이 있거나 거만한 성격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대표곡인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장중하다. 속주와 클라이맥스로 가득한 이 곡은 피아노 협주곡이 갖춰야 할 고도의 테크닉과 듣는 이의 마음을 파고드는 깊이 있는 감성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곡은 모데라토, 아다지오 소스테누토 그리고 알레그로 스케르초도의 3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웅장하고도 풍성하고 더구나 이를 감당해야 할 연주자의 감성적 이해력과 기술적 완성을 함께 보여주는 곡으로 낭만주의 시대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사진 픽사베이)
피아노 협주곡 3번, 이 곡에는 별칭이 많다. 극악의 난도, 악마의 곡 등등. 오죽하면 라흐마니노프 자신이 ‘코끼리를 위해 작곡했다’고 말할 정도였을까. 이 곡은 ‘피아노의, 피아노를 위한, 피아노에 의한 협주곡’으로 불린다. 심지어 이 곡을 완주하면 석탄 3톤을 혼자서 옮기는 힘이 든다고도 한다. 이 곡은 1909년 12월28일 월터 담로슈 지휘, 뉴욕 필하모닉 연주로 라흐마니노프가 직접 연주했고 7주 후에는 구스타브 밀러 지휘로 또 한 번 연주했다. 라흐마니노프의 1939년 연주 녹음 음반을 들어보면 당시 노령임에도 오케스트라를 압도하는 힘과 여전히 완벽한 기교를 보여준다.
이 곡의 완주 시간은 40분. 특히 1악장의 ‘카덴차Cadenza’(악곡이나 악장이 끝난 뒤 오케스트라 반주 없이 연주자가 독주를 하는 것)는 두 가지 버전이 있어 두 유명하다. 오리지널 버전은 빠르고 투명하며 가벼운 느낌이고 두 번째는 ‘오시아ossia’ 버전이다. 이 버전은 오리지널 버전에 비해 무겁고 장중하며 화음 위주라고 한다. 대개의 연주자들은 이 오시아 버전을 더 선호한다. 지난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임윤찬은 결선에서 피아노 협주곡 3번의 카덴차를 오리지널 버전으로 연주했고, 얼마 전 뉴욕 공연에서는 오시아 버전으로 연주했다.
이 피아노 협주곡 3번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블라디미르 호르비츠이다. 그는 1928년 토머스 비첨 지휘, 뉴욕 필하모닉 협연의 카네기홀 미국 데뷔 무대에서는 차이콥스키를 연주하고, 이후 담로슈 지휘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했는데 당시 이 연주는 ‘호르비츠가 이 작품을 통째로 삼켰다’라고 할 정도로 화제가 됐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의 1978년 뉴욕 링컨센터 연주도 유튜브에 올라와 있다.
라흐마니노프의 곡이 유독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음악에는 관통하는 주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종교, 우울증 그리고 고국 러시아다. 그의 음악에는 러시아정교회의 엄숙함과 종소리가 묻어 있으며, 우울증과 죽음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아버지로 인한 파산, 누나의 죽음, 형의 가출 등등 그의 어린 시절은 너무나 힘들었고 또한 사촌과의 결혼에 대한 정교회의 비난, 게다가 교향곡 발표 후 그는 음악가로서는 물론 한 인간으로서 다시 설 수 없을 만큼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니콜라이 달을 만나 우울증을 치유했지만 그에게 닥친 마지막 시련은 러시아였다. 혁명으로 고국을 떠난 그는 평생 고국을 그리워했지만 다시 갈 수 없었다. 이러한 라흐마니노프의 삶을 지배했던 3가지 키워드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음악적 치유를 얻는다.
(사진 픽사베이)
음악가와 평론가들은 라흐마니노프의 곡에서 우리가 얻는 음악적 감성을 ‘힐링’이라고 말한다. ‘격정적인 곡인데 무슨 힐링?’이라며 반문할 수도 있지만, 가슴을 파고드는 진한 감성과 켜켜이 마음에 쌓이는 슬픔으로 채운 채 그의 곡은 마지막 정점을 향해 치닫는다. 그리고 폭발,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힐링을 얻는다고 말한다. “한번 울고 나면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아마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청중들이 몰입해서 들었을 때 그런 감정의 정화가 일어나는 게 아닐까 합니다.”(조은나, 피아니스트,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한 번 들어보자. 유튜브에선 젊은 한국의 청년 임윤찬이 연주하는 50분가량의 연주를 볼 수 있다. 이것이 라흐마니노프 탄생 150주년, 이 불세출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에 대한 나름의 예의와 추모가 아닐까 싶다.
[글 권이현(칼럼니스트) 사진 픽사베이]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86호(23.7.4)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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