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과 용서가 부족한 사회… 알린의 방은 깨끗해질 수 있을까

2023. 6. 3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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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극단 연극 '겟팅아웃'
편집자주
공연 칼럼니스트인 박병성이 한국일보 객원기자로 뮤지컬 등 공연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연극 '겟팅아웃'. 세종문화회관 제공

인생에서 생각만 해도 끔찍한, 스스로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할 수만 있다면 깨끗이 도려내고 싶은 순간이 있을 것이다. 알린(이경미)에게는 그런 시간이 좀 길었다. 어린 시절 부모의 무관심과 학대 그리고 가난과 나쁜 환경 속에서 자란 그는 폭력과 일탈, 범죄에 죄의식이 없었고 그런 자신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교도소에서 극단적 분노와 일탈을 경험했다. 젊은 날의 열정과 광기는 이를 부채질했고 나락 속에 스스로를 방기하며 자신을 쓰레기 취급하는 주변에 송곳니를 세웠다. 연극 '겟팅아웃'은 어린 시절의 짐승 같은 삶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싶은 알린의 이야기다.

연극은 알린이 교도소에서 나와 새로운 출발을 위해 새로운 거처에 도착한 시점부터 시작한다. 무대는 두 개의 공간으로 구성된다. 동생이 물려준 새로운 거처인 알린의 공간은 쓰레기가 나뒹굴고 냉장고에는 썩은 음식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침대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방이다. 그 위로는 알리(유유진)로 불린 알린의 어린 시절 캐릭터가 송곳니를 세우고 닥치는 대로 물어뜯던 교도소 공간이 펼쳐진다.

알리는 알린이 지우고 싶은 과거다. 알리는 가족에게 학대받으면서 자라며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세상에 자신을 방기했고 임신을 하고 교도소에서 아이를 낳기도 한다. 자신을 부정적으로 대하는 동료 죄수를 폭행하고 탈옥하고 심지어 실수로 방아쇠를 당겨 상해를 입힌다. 그러던 중 교도소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인간으로 대해 준 신부님을 통해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정신이 든다. 알리는 짐승처럼 물고 뜯고 상처를 주며 함부로 생을 허비했던 과거를 할 수만 있다면 폐기하고 싶다. 그래서 자신 안의 짐승 같았던 알리를 죽이려고 자해를 한다. 알리의 이름을 버리고 알린이란 새 이름을 얻은 그는 아이의 옷을 뜨개질하며 모범수로 지내다 드디어 출소를 하게 된 것이다.

연극 '겟팅아웃'. 세종문화회관 제공

반성의 시간을 보내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는 알린, 그의 계획은 성공할 수 있을까. 새로운 삶을 살고 싶은 '알린의 시간'에, 가족에게 학대받고 친구인 칼(서우진)과 함께 함부로 생을 허비하며 교도소에서 방랑하던 어린 시절 ‘알리의 시간’이 수시로 침입한다. 새 삶을 살려는 알린의 발목을 잡는 것은 부정하고 폐기하고 싶었던 자신의 과거, 알리다. 동생에게 물려받은 방은 쓰레기가 나뒹굴고 더러운 자국이 군데군데 남아 있다. 알린은 쓰레기를 치우고 더러운 자국을 씻어 내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연극이 진행되는 내내 알린의 방은 깨끗해지지 않는다.

알린에게 치근대며 알린의 새로운 거처까지 따라온 교도관 베니(정원조)는 구둣발로 침대를 짓밟고 알린을 희롱한다. 끔찍하게도 베니는 자신의 행동을 폭력으로 여기지 않고 알린 또한 즐길 것이라고 확신한다. 젊은 시절 함께 방황했던 칼은 탈옥 후 문을 부수며 알린의 새 거처에 쳐들어와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알린의 방을 엉망으로 만든다. 수형 생활을 마치고 이름마저 지웠지만 알린을 여전히 인생 막장으로 살았던 알리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생긴 일들이다. 그는 알린에게 알리로 남을 것을 종용한다. 알린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하며 알록달록한 무늬의 침대보를 씌워 주려던 엄마(박윤정)는 알린이 남자(교도관)와 함께 왔다는 사실만으로 알린이 예전 그대로라며 증오를 퍼붓고 침대보를 회수한다. 알린의 노력에도 알리의 흔적은 그대로 남아서 방은 깨끗해지지 않는다.

연극 '겟팅아웃'. 세종문화회관 제공

알린이라는 새 이름에 알리라는 옛 이름이 그대로 남아 있듯, 그가 지우고 싶은 알리 시절 삶의 흔적은 포크로 찌르고 묻어 버리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다. 알린은 출소 후 폭풍 같은 갈등의 시간을 보내고 폐기하고픈 과거의 자신을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출발점을 찾는다. 알린은 과거의 잘못이자 상처인 알리를 지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알린은 학대받고 상처받아 함부로 세상을 향해 이빨을 드러냈던 알리와 포옹하며 자신을 받아들이는 일부터 시작한다.

연극 '겟팅아웃'은 일상으로 돌아오고픈 알린을 통해 포용과 용서를 이야기한다. 사회가 좀 더 포용력을 갖길 바라는 메시지는 유효하지만, 지금 세대에게 알린의 일탈과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강압적 폭력은 불편하게 다가온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문명화된 것일까. '겟팅아웃'은 7월 9일까지 세종M씨어터에서 공연한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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