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치기엔 아까운 '귀공자' 김선호의 달콤살벌 보조개 미소

아이즈 ize 이설(칼럼니스트) 2023. 6. 30.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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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이설(칼럼니스트)

사진=NEW

5년 전 tvN 드라마 '백일의 낭군님'(극본 노지설, 연출 이종재)에서 김선호를 '발견'했을 때의 설렘과 기대를 잊을 수 없다. 기억을 잃은 왕세자 이율이 평민이나 다름없는 양반가의 처녀 홍심과 혼인하면서 벌어지는 퓨전 사극에서 주인공은 당연히 이율 역의 도경수와 홍심 역의 남지현. 아이돌 그룹 엑소 출신인 도경수가 군에 입대하기 전 마지막으로 출연한 드라마여서 더욱 두 청춘스타의 하모니에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다재다능한 서출 양반 정제윤 역의 김선호가 자꾸 시선을 끌었다. 하얗고 뽀얀 피부, 달콤한 표정에선 나올 것 같지 않은 반전 보이스, 보조개 뒤의 옅은 미소 속 절제미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동안 늘 그래 왔듯, 시청자의 심금을 울리는 중저음의 음성은 남자 배우의 가장 강력한 무기. 따뜻함과 친근함, 선함과 믿음 등을 한꺼번에 눌러 담은 듯한 김선호의 목소리는 그에 대한 호감도를 아무 이유 없이 한껏 끌어올렸다.

이후 김선호는 정말 승승장구했다. 2009년 연극 '뉴 보잉보잉'으로 데뷔해 2018년에 눈에 띄었다면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무명의 시간을 보상해주기라도 하듯 팬들의 관심과 애정이 급속도로 불어났다. '스타트업'(2020)의 키다리 아저씨 한지평, '갯마을 차차차'(2021)의 밉지 않은 백수 홍두식 등 어떤 캐릭터도 그와 잘 포개졌다. 다양한 변신이 가능한 배우임을 스스로 입증했다. 김선호는 심지어 예능도 '접수'했다. KBS 2TV 간판 예능인 '1박 2일' 네 번째 시즌에 합류해 엉뚱한 매력을 뽐냈다. 특유의 맑고 선한 분위기에 털털한 이미지를 더해 팬과의 거리를 더욱 좁혔다. 다양한 제품의 CF 모델로 발탁되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박훈정감독(왼쪽)과 김선호. 사진=NEW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하던가. 돌연 김선호에게 시련이 닥쳤다. 2021년 10월 사생활 폭로 논란의 당사자로 밝혀지면서 큰 위기를 맞았다. 자세한 내용은 굳이 꺼내지 않아도 다들 기억할 터. 뜻하지 않은 논란으로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난데없는 루머에 숨죽이고 있던 김선호는 파문이 커지자 사흘 만에 이를 시인하고 팬들에게 사과를 구한 뒤 활동을 멈췄다.

지난 21일 개봉한 영화 '귀공자'(감독 박훈정)는 그래서 김선호에겐 매우 의미 깊은 작품이다. 활동을 중단한 지 약 1년 만인 지난해 7월 연극으로 복귀 신고식을 치르긴 했으나 연극이라는 속성상 그때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따라서 많은 관객과 만나는 이번 영화가 본격적인 컴백이고 시험대인 셈이다.

'귀공자'는 한국인 아버지와 필리핀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마르코(강태주)가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한국으로 건너왔다가 정체불명의 귀공자(김선호)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자주 접하지 못했던 '코피노'(한국-필리핀 혼혈아)라는 인물 설정이 이색적이지만 재벌가의 파렴치한 음모와 폭력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액션 누아르와 크게 다를 게 없다. 마치 조직폭력배를 연상시키는 재벌가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얻고자 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 그야말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설령 그게 불법적인 협박과 살인일지라도.

사진=솔트엔터테인먼트

선혈이 낭자한 이번 작품에서 김선호는 그 이상의 광기 어린 모습을 보여준다. 귀공자는 돈이라면 어떠한 살인 청부 의뢰도 꺼리지 않는 최고의 킬러다. 스스로 "전문가"내지 "프로"라고 주장하며 무지막지한 상대를 가볍게 제압한다. 여전히 고운 얼굴에 명품 수트가 잘 들어맞는 비즈니스맨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어떤 킬러보다 냉혈한이다. 그가 한국으로 건너오는 비행기 안에서 마르코에게 다가가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경고하는 장면에서 그의 예리하고 서늘한 연기가 빛을 발한다. 부드럽게 속삭이는 듯하지만 하얗고 매끈한 이마 위로 툭 불거진 핏줄이 긴장과 불안을 고조시킨다. 입은 웃고 있지만 눈에는 살기가 등등하다. 아마도 감독이 김선호를 캐스팅한 이유일 것이다.

도망치는 마르코를 맹렬히 추격하는 장면에서도 섬뜩한 킬러 본능이 잘 배어난다. "한번 목표로 한 타깃은 절대로 놓치는 법이 없다"는 말처럼 지구 끝까지라도 갈 듯 따라붙는다. 마르코가 숲으로 숨어들어도, 다리에서 뛰어내려도, 한 대 치고 달아나도 틈을 주지 않는다. 스피드, 지구력, 판단력, 잔인함 등 누아르 속 킬러들의 속성을 다 지니고 있다. 

하지만 왠지 그 뒤에 뭔가 다른 게 숨어 있을 것 같다는 께름칙함을 지울 수 없다. 김선호의 이중적 표정 때문이다. 선의인지 아닌지, 웃는지 우는지 알 수 없는 얼굴로 등장인물과 관객을 헷갈리게 한다.

사진=NEW

시종일관 긴박한 상황에서 종종 터지는 유머도 이와 같은 상상을 촉진한다. 그렇게 수십 명의 상대를 해치우고도 자신의 허벅지에 난 조그만 상처 하나에 어린애처럼 "아프다"고 칭얼대는 모습이 작위적이거나 B급 코미디 감성 같지 않다. 앞서 출연했던 멜로물에서 분위기를 잡다가 어느 순간 빵 터지는 유머로 주위를 환기한 연기를 누아르에 영리하게 적용한 느낌이다. 빌런도 얼마든지 유치하지 않게 '러블리'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이게 김선호의 완벽한 캐릭터 이해와 표현에서 나오는지, 박훈정 감독의 섬세한 디렉션에서 비롯하는지는 모르겠다. 허나 박 감독이 김선호의 그런 야누스적 표정을 좋아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시도 때도 없이 김선호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그건 마치 멜로 드라마의 여주인공을 샅샅이 비추는 것과 같다. '늑대의 유혹'(2004)에서 강동원이 보여준 우산 속 백만불짜리 미소는 이제 김선호에게 그 자리를 내줘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선호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귀공자'의 흥행 성적은 그리 신통치 않다. 30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개봉 후 29일까지 누적 관객 수는 46만4,720명에 그치고 있다. 한국형 액션 시리즈로 인정받은 '범죄도시3'(약 989만 명)나 디즈니 픽사의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약 156만 명)에 훨씬 못 미친다. 하지만 김선호에겐 최소한의 의미로 남을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2년 전 그 악몽에서는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과거를 씻어낼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의 진심과 활약에 그의 보조개 미소의 유효 기간이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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