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이 ‘반려’ 되기까지… 식물의 실내 이주 400년史 [북리뷰]
마이크 몬더 지음│신봉아 옮김│교유서가
영국 정원 관리 지침서 기록따라
실내식물 시작을 17세기로 봐
“당시 열대식물 집으로 들이면
세련된 분위기 풍긴다고 생각”
품종 개량· ‘이종교배’ 기술 등
오늘날의 식물 등장 배경 조명
“유리병에서 키우는 ‘테라리움’
연구용 도구가 그 시초” 소개도
자연으로부터 분리된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지만,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자연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으며, 더욱 친해지길 원한다. 집에서 기르는 화분을 ‘반려식물’이라 부르고, 돌보는 이를 ‘식물 집사’라 칭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만, 주위만 둘러봐도 그렇다. 사무실 책상마다 놓인 작은 화분, 온실 속에 들어간 듯 나무가 가득한 카페, 그리고 멀리 고향인 열대우림을 떠나와 어느 집 거실과 방 안에서 타향살이 중인 식물들 말이다. 반려식물 선호 인구는 코로나19를 겪으며 급증했고, 식물이 인테리어 주요 요소인 ‘플랜테리어’도 흔해졌다. 그뿐인가. 식물을 보며 생각을 비운다는 ‘식물멍’이 여가 활동으로 떠올랐으며, 현대인의 ‘식물 사랑’은 그에 못지않은 ‘돈 사랑’과 결합해, 희귀한 식물을 키워 수익을 내는 ‘식(植) 테크’ 열풍까지 일으켰다.
이쯤에서 이 책을 만난 건 반갑고, 또 시의적절하다. 장식의 목적이든, 가족의 지위에 있든, 아니면 재물로서의 가치든, 핵심은 인류의 대부분이 식물을 가까이 두는 것이 유익하다 여겼고, 그래서 가까이 두고자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아프리카나 지중해, 열대우림이나 사막에서 서식하던 비인간 존재들이 왜, 언제부터, 어떻게 우리와 한 공간에서 숨을 쉬게 됐는지 한번은 살펴볼 일이다. 호흡처럼 익숙하지만, 우리의 공간으로 초대된 실내식물들은 문화와 기술의 발전, 유전학과 식물생리학 등 과학의 발달을 기반으로 하는 ‘혁명적’ 사연을 품고 있으니까. 다시 말해 실내식물은 우리의 생활방식과 우리에게 자연이 필요한 이유 그 자체이며, 인간이 야생식물을 채집하고 재배한 그 결과다. 그리고 책은 이 ‘복잡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식물의 본격적인 실내 이주가 시작된 400년 전부터, 건축과 디자인의 핵심에 식물이 자리한 지금에 이르기까지, 쉽고 간명하고 빠르게 전개하는 일종의 “탐험서”다.
책이 ‘실내식물’의 시작으로 보는 건 17세기 초, 약 400년 전이다. 당시 영국의 정원 관리 지침서 ‘식물 낙원’에 남아있는 기록은 ‘실내 정원’에 대해 “깔끔한 갤러리, 훌륭한 실내 공간, 혹은 그 밖의 숙소를(…) 향긋한 허브와 꽃, 그리고 가능하다면 열매로 장식하는 건 기분 좋은 일”이라고 설명한다. 당시 런던 시민들은 열대식물을 ‘이국적인 것’으로 여겼고, 이를 집 안으로 들이면 “풍부한 세상을 경험한 세련된 사람이라는 분위기”를 풍긴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또한 그로부터 약 반세기 후, 최초의 교잡종 관상식물을 만들어낸 것으로 알려진 토마스 페어차일드는 ‘도시 정원사’(1722)라는 책에서 “방이나 실내 공간을 꽃 화분과 화병으로 장식하는” 유행에 대해 묘사한다.
우리가 오늘날 기르는 식물 대부분은 19세기에 대거 등장한 양묘장에서 이종교배 등의 기술을 통해 재배화 수순을 밟은 것들이다. 여기에도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하나는 다른 식물의 개량과 달리 실내식물의 육종(품종개량)엔 육종하는 사람의 개인적 시각, 안목, 가치판단이 관여된다는 것이고 종교적 교리로 인해 ‘이종교배’라는 것 자체가 19세기 말까지도 큰 논란거리 중 하나였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오늘 아침에 보고 나온 우리 집 베고니아와 알로카시아 등은 과거 어느 교배 전문가의 고민과 감각의 집합체이고, 논란을 딛고 완성된 과학이자 예술 작품인 셈이다.
실내식물이 품은 사연은 매혹적이면서도, 고통스러운 지점이 있다. 대중적인 실내식물의 상당수가 ‘식민지 산업’의 기운을 풍긴다는 것. ‘식물 집사’들에게 인기인 아프리칸바이올렛은 20세기 초 탄자니아의 산간지대에서 독일 식민지 행정관에 의해 채집됐고, 다양한 신품종이 개발돼 오늘에 이른다. 또 수많은 ‘덕후’를 거느린 다육식물 무늬알로에는 케이프 식민지에서 1680년대에 처음 채집됐고, 이후 유럽에서 재배되기 시작했다. 1690년대 서아프리카에서 네덜란드로 옮겨져 150여 년간 실내식물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드라세나도 마찬가지다.
유리병 속에 다양한 식물 종을 심어 장식하는 것으로 최근 인기인 ‘테라리움’도 사실은 식물 연구용 도구였다. 일찌감치 빅토리아시대의 응접실을 장식하는 등 현재의 실내조경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무엇보다 책은 인류가 점점 도시 종(種)이 되어가는 오늘날, 한때는 중년과 노년에 발현되는 ‘바이오필리아’, 즉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추구하는 다른 생명체와의 유대’가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를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저자는 ‘반려식물’이 최근 SNS 등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는 것을 언급하며, ‘식물과 인류의 공진화’까지 이야기를 밀고 나간다. 세계 도시들의 개성 있고 실험적인 건축물들을 예로 들며, 지금은 “실내식물의 르네상스”라고, 또 유전학과 건축학이 절묘하게 만나고 있다고 강조한다.
다만, 저자는 점차 실내 식물 무역과 투자가 값싼 노동력과 따듯한 생육환경을 기반으로 하는 글로벌 생산 시스템화하는 것에 우려를 표한다. 그러니까 자연이 좋아 자연을 가까이하고 그로부터 몸과 마음의 치유를 받는 우리의 ‘반려식물’ 문화가 사실, 그리고 결국 그 재배와 이동, 생산과 판매에 있어서 화석연료 기반의 경제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고 나면 나의 공간에 들어온 식물들이 보다 애틋하고 복잡 미묘하게 보일 것이다. 240쪽, 2만2000원.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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