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등 소수인종 美 대입 어려워지나…한국인 영향은(종합)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미국 대학 입학시 소수 인종을 우대하는 정책인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에 대해 연방대법원이 위헌 판결을 내렸다. 소수 인종에게 입학 가산점을 주는 것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최대 수혜자였던 흑인과 히스패닉계는 직접적인 악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한인사회 역시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美 대법 “소수인종 가산점 위헌”
미국 연방대법원은 29일(현지시간) 학생 단체인 ‘공정한 입학을 위한 학생들’(Students for Fair Admissions·SFA)이 “소수 인종 우대 입학 제도로 백인과 아시아계 지원자를 차별했다”며 노스캐롤라이나대와 하버드대를 상대로 각각 제기한 헌법소원을 각각 6대3 및 6대2로 위헌 결정했다. 이번 판결은 대법원이 지난 1978년 이후 40여년간 유지한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이에 따라 1960년대 민권 운동의 성과 중 하나로 꼽힌 소수 인종 우대 입학 정책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이번 판결은 지난해 낙태권 폐지에 이어 보수 성향의 대법관이 다수를 차지한다는 점과 연관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당시 대법원은 현재 6대3의 보수 우위 구조로 바뀌었다.
대법원장인 존 로버츠 대법관은 다수 의견에서 “오랫동안 대학들은 개인의 정체성을 가늠하는 기준으로 기술, 학습 등이 아니라 피부색이라는 잘못된 결론을 내려 왔다”며 “헌정사는 그런 선택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학생들은 인종이 아니라 개인의 경험에 따라 대우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최초의 흑인 여성 대법관인 커탄지 브라운 잭슨을 비롯해 소니아 소토마요르, 엘레나 케이건 등 진보 성향의 대법관 세 명은 반대 의견을 냈다.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소수 의견을 통해 “수십년 선례와 중대한 진전에 대한 후퇴”라고 비판했다.
어퍼머티브 액션은 1961년 당시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정부 기관들은 지원자의 인종, 신념, 피부색, 출신 국가와 무관하게 고용하도록 적극적인(affirmative)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행정명령으로 각 대학들이 소수 인종 우대 입학정책을 도입했다. 그 이후 흑인 등의 입학이 늘어나는 성과를 거뒀으나, 인종에 따라 가산점을 주는 정책이 역차별을 야기한다는 주장 역시 적지 않았다. 실제 미국 50개주 가운데 현재 캘리포니아주, 미시건주, 플로리다주, 워싱턴주, 애리조나주, 내브래스카주, 오클라호마주, 뉴햄프셔주, 아이다호주 등 9개주는 공립대에서 인종에 따른 입학 우대 정책을 금지한 상태다.
낙태 이슈 이상 가는 파장 예고
이번 판결로 주요 수혜자였던 흑인과 히스패닉계 학생들은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계 역시 대학 입학 불확실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한인 사회는 흑인과 히스패닉계 등에게 주는 인종 우대 점수가 사라지면 반사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온다. 다만 이번 판결의 본질은 백인을 위한 것이어서 결국 백인들의 ‘들러리’에 그칠 것이라는 냉정한 시각 역시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대학 입시 제도가 전면 재검토에 들어가면 큰 혼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소송의 당사자인 하버드대는 판결 직후 성명을 통해 “대법원의 결정을 확실히 따를 것”이라면서도 “우리는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계속 추구하겠다”고 했다. 클로딘 게이 차기 하버드대 총장 지명자는 영상 메시지를 통해 “대법원의 결정을 따를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가치를 바꾸지는 못한다”고 밝혔다. 게이 지명자는 공교롭게도 흑인 여성이다. 이번 위헌 결정 이후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는 인종은 흑인이다.
또 다른 당사자인 노스캐롤라이나대의 케빈 거스키에비치 총장 역시 “우리가 바랐던 결과는 아니다”며 “다른 인생 경험을 가진 재능 있는 학생들을 모으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판결은 미국 교육계를 넘어 사회 전반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킬 조짐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판결 직후 백악관 기자회견을 통해 “이번 결정을 강력히 반대한다”고 성토했다. 그는 “대법원이 판결할 수는 있지만 미국이 상징하는 것을 바꿀 수는 없다”며 “대학들은 판결에 위배되지 않으면서도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공화당 소속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미국을 위해 훌륭한 날”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는 완전히 능력에 기반을 둔 제도로 돌아가는 것”이라며 “이게 옳은 길”이라고 강조했다. 공화당 소속인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 역시 “학생들이 더 공정하게 경쟁하게 됐다”며 환영했다.
상황이 이렇자 이번 판결은 내년 대선에서 주요 화두 중 하나로 부상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해 낙태권 폐기 판결 이상 가는 파장을 몰고 올 것이라는 얘기다.
김정남 (jungkim@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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