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월드에 교도소를 짓는다고? ‘리틀 트럼프’ 디샌티스의 돌격 행보

이승원 칼럼니스트 2023. 6. 30.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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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있는 트럼프’로 불리는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문화전쟁’ 최전선에 서 있다. 2024년 대선을 앞둔 상황에 당내 경선에서 트럼프를 꺾고 마침내 백악관에 가기 위한 전초전이다.

지난 5월 18일 월트디즈니는 플로리다주에 지을 예정이었던 사옥 건설 계획을 전면 백지화했다. 2021년 7월부터 추진했던 무려 10억 달러(약 1조3000억 원) 규모의 프로젝트로, 특히 직원 2000여 명을 캘리포니아 등에서 이 캠퍼스로 이주시킬 계획까지 밝힌 상태였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조시 디마로 디즈니파크 회장은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새로운 리더십과 변화하는 사업 조건을 포함, 이 계획 발표 이후 엄청난 변화를 고려해 사옥 건설을 철회하기로 했다"며 "쉬운 결정은 아니었으나 옳은 결정이라 믿는다"고 밝혔다. 디마로 회장이 언급한 '변화하는 사업 조건(changing business conditions)’은 무슨 의미일까. 바로 공화당 유력 대선후보인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와의 오래된 갈등을 겨냥한 것이다.

디즈니를 자극한 디샌티스

2023년 6월 3일 미국 플로리다주 디즈니랜드 신데렐라 성.
‘리틀 트럼프’ '뇌가 있는 트럼프’로 불리는 디샌티스 주지사와 디즈니의 심각한 갈등은 지난해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디샌티스는 공화당 대선후보로 나서기 위해 보수층을 겨냥한 정책과 발언 등을 수년간 줄기차게 이어왔다. 그 가운데 나온 법안이 'Don’t Say Gay(게이 언급 금지)’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동성애 관련 교육을 하지 못하도록 한 이 법안의 '명분’은 학교 교사들이 아닌 부모가 자녀에게 성소수자의 정체성 등에 대해 교육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학교라는 공적 기관, 공공장소에서 성정체성과 관련해 언급조차 하지 말라는 얘기다.

즉각 진보 진영과 성소수자들은 반발했고, 조 바이든 대통령도 직접 나서 "플로리다주와 전국에 걸쳐서 모든 학부모와 학생의 존엄과 평등한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싸워나가겠다"고 선언했다. 이때 가장 명확한 메시지를 보낸 곳이 바로 디즈니다. 8만 명에 가까운 직원을 고용하며 플로리다주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 거대 기업(디즈니가 2021년에 낸 세금만 7억8000만 달러(약 1조3800만 원))은 주 의회가 법을 개정하거나 법원이 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디즈니는 디샌티스가 법안에 서명하자 즉각 성명을 내고 "우리는 이 법이 연방의회나 법원에서 퇴출당하는 것을 목표로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발 더 나아가 디즈니는 주정부에 정치자금 기부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디샌티스는 콧방귀를 뀌며 반격에 나섰다. 각종 세금 혜택과 개발권 등을 부여해왔던 100k㎡ 규모의 디즈니 특별자치구(Reedy Creek Improvement District)에 대한 권한을 박탈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디샌티스가 태어나기도 전인 1967년 플로리다주는 디즈니에 '지방정부에 준하는 권한’을 부여했다. 디샌티스는 자체적으로 세금을 부과하고 주정부 승인 없이 개발할 수 있는 그 권한을 박탈하겠다며 실제 행동에 나선 것이다. 나아가 테마파크 내 유휴 부지에 주립 교도소를 세울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날렸다. 막장 정치드라마의 한 장면 같다.

이 모든 조치는 디즈니에게는 전쟁 선포나 다름없다. 디즈니는 "표적화된 정치 보복"이라며 4월 결국 소송을 제기했다. 소장을 접수하면서 "미국에서는 정부가 자신의 생각을 말한 사람을 처벌할 수 없다"며 디샌티스가 "정부 권력을 무기화"하려 한다고 비난했다.

‘리틀 트럼프’의 보수층 결집 행보

2023년 9월 13일 뉴욕타임스에 실린 ‘론 디샌티스는 공화당의 미래인가?’ 기사.
디샌티스가 다크호스로 급부상한 건 2022년 11월 중간선거에서다. 그는 주지사 선거에서 무려 19%p, 150만 표 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는 플로리다 주지사 선거 사상 40년 만에 최대 표 차였다. 격차 자체도 큰 의미가 있지만 불과 4년 전인 2018년 선거에서 디샌티스가 재검표 끝에 0.4%p, 3만2000표 차로 겨우 승리했던 것과 비교하면 의미 있는 승리임이 틀림없었다. 대표적인 '스윙 보터’ 지역으로 유명한 플로리다를 재임 4년 만에 '붉은 물결’로 가득 채웠다는 것은 공화당에 벅찬 일이기도 했다. 당시 주 의회 상·하원에서도 공화당이 압도적 다수가 됐다.

그는 2018년 주지자 자리에 오른 이후 민주당 지지층 혹은 진보 세력을 경악시킬 법안과 발언들을 이어왔다. 하지만 정확히 그만큼 보수층은 자극받아 움직였고 디샌티스를 지지하는 '붉은 표’들이 쌓여갔다. 대표적인 게 코로나 정책이다. 다른 주정부가 봉쇄·폐쇄 조치를 취할 때 플로리다는 '개인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영업 제한, 마스크 착용, 백신 접종과 같은 조처를 시행하지 않았다. 이런 '자유’로 인해 플로리다에서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만 8만7000명이 넘는다(2023년 3월 기준).

디샌티스는 인종, 성별 등 이른바 '문화전쟁(culture wars)’에 집중하며 보수층을 겨냥하는 궤적을 그리고 있다. 'Don’t Say Gay’ 법안이 통과된 다음 달인 지난해 4월 그는 '여성’을 겨냥했다. 성폭행 여부와 상관없이 임신 15주(기존 24주) 이후 낙태를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이어 '인종’도 표적으로 삼았다. 같은 달 그는 '비판적 인종 이론(critical race theory)’ 교육을 제한하는 법안에 서명한다. '게이 언급 금지법’과 같이 학교와 직장에서 인종 관련 토론을 제한하는 내용이다. 비판적 인종 이론은 1970~1980년대 학자들을 중심으로 백인 남성 중심이 아닌 인종주의 렌즈로 미국의 역사를 보자는 이론이다.

디샌티스는 "여러분이 낸 세금을 우리 아이들에게 이 나라를 미워하거나 서로를 미워하도록 가르치는 데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 법안에 서명한다. 교사들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역사를 가르치는 데 압박감을 느끼고, 교육 내용에 불만을 가진 학부모에 의해 소송을 당할 가능성까지 생겼다. '뉴욕타임스’는 디샌티스가 플로리다주를 낙태와 동성애, 다문화주의, 인종주의 등을 둘러싼 이념 갈등, 즉, 문화전쟁의 최전선으로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총기 보유, 이민자 정책 등 보수 색채 정책을 추진해오던 그는 중간선거 압승을 계기로 더욱 거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관련 정책을 공개적으로 반대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기업가들을 청문회에 소환해서 윽박지르는 식이다. 지난 5월 미국 인권 단체들은 급기야 "유색인종과 성소수자에 적대적"이란 이유로 플로리다주에 여행 주의보를 발령하기도 했다.

지난해 말만 해도 디샌티스는 트럼프를 뛰어넘는 인기를 누렸다. 중간선거 직후 여론조사 업체 '유고브’가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공화당 지지 성향의 유권자층에서 디샌티스는 42%의 지지를 얻으면 트럼프(35%)를 눌렀다.

‘뉴욕타임스’ 기자 매트 플레겐하이머는 지난해 9월 '진화론적 트럼프, 2.0 후보’라는 제목의 디샌티스 분석 기사에서 "트럼프지만 목표에 대해 더 전략적이고, 트럼프지만 트위터 계정이 정지되지 않을 정도로 절제돼 있으며, 트럼프지만 연방 조사라는 위기가 없는 점"을 그의 전략으로 꼬집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뒷심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5월 24일 '훨씬 젊은’ 세대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트위터를 통해 대선 출마 선언을 했지만, 전현직 대통령을 통틀어 처음으로 형사 기소된 트럼프에게 밀리고 있다. 같은 날 발표된 'CNN’ 여론조사에 따르면 공화당원의 53%는 트럼프를, 26%는 디샌티스를 선택하겠다고 답했다. 로이터통신이 6월 12일 공개한 최근 결과에 따르면 공화당 지지층의 43%는 트럼프가 대선후보로 나서는 것을 지지했고, 디샌티스는 22%로 나타났다.

공화당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트럼프의 인기는 여전하지만 이미 4년을 경험한 트럼프는 '불안’ 그 자체다. 특히 바이든, 트럼프라는 고령의 후보들과 차별성을 부각해야 하는 상황에서 디샌티스를 대안으로 삼아야 한다는 흐름도 여전하다. 트럼프 2.0 디샌티스. 그는 과연 트럼프를 누르고 공화당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디샌티스 #디즈니 #플로리다 #트럼프 #여성동아

사진 AP뉴시스 
사진출처 뉴욕타임스캡처

이승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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